2013-12-04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히든싱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진짜 가수를 '숨겨'놓고, 그 가수와 똑같은 창법을 구사하는 이른바 '모창'가수를 내세워 그중에 진짜 목소리를 찾아내도록 합니다.
다양한 가수들이 출연하여 좋은 노래를 듣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진짜 가수와 똑같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인데요. 자기가 예상했던 목소리가 모창 가수라는 깜짝 놀랄 반전이 종종 벌어지곤 하죠.
글 | 류임상 미디어아트 에이젼시 LAB 16.9 크리에이티브 디렉터(director@lab169.com)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흥미로운 건, 전성기가 조금 지난 가수가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진짜 가수보다 모창 가수를 '진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입니다(이 지점이 이 프로그램의 진짜 재미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 새로운 깊이를 가지게 된 진짜 가수의 목소리 보다, 레코딩 된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사람을 '진짜'로 믿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질 때, 재미있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들더군요.
언젠가부터 '진짜'라는 개념이 모호해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선명도를 자랑하는 4k 해상도의 텔레비전이 대중화되었지만,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은 저해상도의 CCTV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3D의 생생한 현장감보다도 '누군가'가 직접 찍은 스마트폰 동영상이 더 생생한 현장감을 살려주곤 하니 말이지요.
복제와 그 기술을 기반으로 무한히 변형, 발전이 가능한 특성을 지닌 미디어아트 역시 이러한 '진짜'와 '가짜'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영상’이라는 것 자체가 원본이 아니면서 원본의 기억을 가지고 생성되는 도구이니 말이지요.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진짜인 것처럼’ 작품에 몰입하고, 동일시하기도 하죠. (이는 예술을 감상하는 기본적인 알고리즘이기도 합니다)
김태은 작가의 2011년도 작업 '공동감시구역 JSA Visiting Joint Surveillance Area’은 두 개의 화면으로 이루어진 비디오아트 작업입니다. 영상 한쪽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흐르고 있고, 또 다른 화면에는 옆의 영화와 동일한 장소, 동일한 카메라 앵글로 촬영된 현장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한쪽의 화면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여러 가지 상황과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흘러간다면, 반대쪽 영상에선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 속 장면의 현실감 있게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치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일상의, 주변의 풍경처럼 말이지요.
진짜와 가짜. 사람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이 ‘거짓말’에 왜 이렇게 매력을 느낄까요? '공동감시구역’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이러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허구의 예술인 영화도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 속에 배우와 여러 가지 카메라 기법, 조명등으로 꾸며진, 우리 주위의 풍경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예술을 보며 감동하고, 곱씹게 되는 건 결국 이 작업들이 우리의 현실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모창 가수의 가창력에 감탄하게 되는 건 결국 진짜 가수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예술은 그 발을 우리와 함께 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작의 영감을 얻고자 밤새워 고민하고 있을 많은 창작자 여러분. 여러분의 상상을 잠시 이 땅에 내려놓아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기발하다 생각하게 된 많은 결과물(예술작품)은 대부분 우리의 ‘경험’에 그 출발선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와 우리, 그리고 주변에서 ‘진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게 역설적으로 ‘가짜’ 이야기를 가장 ‘진짜’처럼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예술’이라는 마법과 ‘창작’이라는 도구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