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8
‘이게 뭐야?’하는 작품을 보고 힌트를 얻기 위해 작품의 제목을 찾는다. 그런데 ‘무제’라고 쓰여있다. 이 무슨 무책임한 행동인가? 만든 사람도 알 수 없는 것을 왜 만들지? 예술이란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즈음 어떤 작가의 작업노트에서 답을 찾았다. 작품은 작가의 손에서 완성 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보고 그에 대한 반응을 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작품에 대한 해석의 기회를 주고 저마다의 예술이 완성됨을 넘어서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대 작가들의 노릇이다. 흰 벽에 반듯한 그림들이 걸려있는 곳이 미술관이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작가들은 더욱 바빠졌다. 시각적인 자극 만으로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부족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은 다양한 접목이라는 시도로 이어졌고, 서로 다른 표현방법으로 자신만의 예술언어를 구축하는 작가들의 협업을 통해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임민욱, 김성환 등의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권병준은 뮤지션이자 사운드 아티스트이다. 90년대 초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원리와 도구를 연구하면서 사운드 작업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권병준이 퍼포머로 등장하는 ‘포터블 키퍼’는 작가 임민욱의 작품이다. 버려진 필기도구 묶음과 새 깃털, 인조모피, 선풍기 팬으로 구성된 포터블 키퍼라는 제목의 오브제를 들고 뉴타운 거리를 돌아다닌다. 새로운 계획에 의해 폐쇄된 공간에서 여전히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 사이를 오가며 묘한 이질감을 보여준다.
2011년 LIG 아트센터에서 음악가 달파란과 함께 작업한 공연으로, 큰 인형에게 제어 당하는 작은 인형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섯 개의 마네킹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각자의 색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유행 따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잘못된 사회현상은 심지어 얼굴까지 똑같아 지고 있다. 강남거리에 우뚝우뚝 솟은 저 많은 성형외과에서 누구처럼 되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는 구조주의적인 음악 조화로 다양한 사운드, 시각이미지 작업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특히 작가 김성환의 ‘In the room’ 시리즈를 통해 협업을 이어가고 있고, 이번 전시에 소개되고 있는 이주요의 ‘한강에 누워’의 음악작업을 맡았다. 한강의 누워는 돈을 벌지 않는 남녀가 한강 주변에서 연애를 하다가 겨울이 오자 갈 곳이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작곡으로 이어졌고 음악으로 완성 되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인 장영규는 공연 예술 및 영화 그리고 시각예술 퍼포먼스의 음악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까지 수많은 영화의 음악에 참여해왔고, 안무가 안은미의 대표작들의 무용 음악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불교음악 및 궁중음악 등 국악의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탐색 중이다.
‘안성철’은 피자배달부 안성철 씨의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형 소설작업이다. 묘한 중독성이 있는 독특한 음악을 추구하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의 나래이션으로 전개되는 작업은 실제화된 영상이 없이 하얀 벽에 음악과 함께 텍스트가 이어진다. 사운드에 따라 자유롭게 안성철씨의 하루와 심리의 변화까지 자연스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전통음악 작업의 연장선인 ‘사다라니•향화게’는 스님의 바라춤•나비춤에 장영규가 사운드 작업을 입히고, 임민욱이 열 카메라로 촬영하고 완성하였다.
몸이 지닌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안무가 정영두는 구조적으로 탄탄한 작업을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음악, 건축, 제례 등 형식과 구조를 가진 것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실험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단순한 차용이 아닌 변주를 통한 협업은 관심사가 다른 이들의 흥미까지 유발한다.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음악에 집중하면 되고, 무용가는 몸짓에 집중하면 된다. 혹은 그 반대로 한다면 장르간의 경계에서 또 다른 영감을 받는 시너지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협업의 탁월한 가치가 발견되는 것이다.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서 시각미술 작가들과 공공미술분야를 디자인하고, 큐레이터들과 전시디자인을 협업하는 최춘웅은 유연성 넘치는 건축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한 설계 안’, ‘제 7회 광주 비엔날레 전시 디자인’, ‘상하 농장을 위한 마스터 플랜’등이 소개된다.
우리의 삶은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이어진다. 하나의 주체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장르에 따라 주된 역할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융합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다. 그러한 변화가 다소 침체되어 있는 예술시장의 활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 될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8월 25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이어진다.
참고자료
www.ilmi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