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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짧은 생, 깊은 흔적

2013-03-08


문득 누군가에게 그림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그림 좋아하세요? 그럼 어떤 그림이 좋으세요? 특별한 대답을 기다리며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림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다. 여기 그림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작품이 있다.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할 정도로 화면이 어지럽다. 혹자는 이것도 그림이 될 수 있냐는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러운 화면의 주인공은 낙서화(Graffiti)라는 그림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미셸 바스키아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지난 2월 14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서는 미국 미술의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전이 개최되고 있다. 1988년 8월 27세의 나이로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바스키아는 8년이라는 길지 않은 작품활동을 했지만 미국미술의 큰 의미를 남겼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06년에 이은 두 번째 국제갤러리 개인전으로 80년대 미국 팝 아트의 문화적 부흥에 따른 당시의 사회상을 돌아본다.

약관의 나이로 80년대 뉴욕 미술계의 스타덤에 오른 바스키아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들의 구성과 조합으로 당시 뉴욕미술의 주요 평론가 및 화랑가 에서 인정 받았다. 그러한 그의 명성은 현재까지 이어져 이름있는 명화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경매가로 거래되고 있다.
물론 가격이 높다고 좋은 작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비주류였던 바스키아가 작품으로 주류인정 받고 있다는 증거는 될 수 있다. 또한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이 설 정도로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바스키아의 작품은 다양한 의미의 희망으로 다기오기도 한다.

1960년 미국 뉴욕주의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이민자로 회계사였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8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기손상을 입어 비장(脾臟) 제거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의 어머니는 해부학 책 '그레이의 해부학'을 선물 했다. 사람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해부한 그림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데, 이러한 그림은 어린 바스키아에게 굉장히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훗날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된다. 어린 시절 만화가와 시인을 꿈꿨던 그는 15세에 집을 나와 진보적인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뉴욕 소호 거리의 벽면에 저항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접어든다.

바스키아는 1977년부터 1979년에는 SAMO라는 이름으로, 1980년부터 왕관기호와 저작권의 의미를 뜻하는 ⓒ라는 공증의 기호를 사용한다. 이 왕관이 상징하는 의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존경과 찬미를 나타내기 도하고, 후에 바스키아만의 고유의 기호 즉 날인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 예로 이번 전시작품 중 자동차와 비행기가 그려진 1981년 작 ‘무제 Untitled’는 붉은 십자가의 구급차와 비행기들이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묘사되어 그의 유년시절 교통사고에 대한 암시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고향인 브룩클린에 위치한 라구아디아 공항과 케네디 국제 공항에서 착륙을 암시하는 비행기 역시 단순하게 표현되었고, ‘AAAAA’라는 반복적인 이니셜은 구급차의 사이렌소리와 바스키아의 첫 번째 영웅인 흑인야구선수 행크 애런의 성 ‘Aaron’의 첫 글자의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나아가 이미지 중심에 위치한 망치는 당시 전설적인 야구선수 행크 애런이 홈런을 치는 모습에서 비롯된 별명, ‘망치질하는 행크(Hammering Hank)’를 암시한다.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기호들은 여러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특히 바스키아 개인의 경험이나 흑인으로서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흑인으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인종 차별을 받았던 야구 선수 행크 애런,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 같은 영웅적 아이콘을 강렬한 터치로 그린 그림도 다수 포함됐다. 금전적 가치, 삶과 죽음 등의 주제는 그만의 시적 문구로 형상화했다. 의미가 불분명한 기호를 나열한 모호함과 자유로운 터치감, 그리고 강렬한 색감 표현은 바스키아 만의 개성적인 조형언어와 색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바른 자세를 하고 있지도 않다. 어딘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우며 심지어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는 듯한 분위기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미술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을 누구보다 뜨겁게 불태우며 예술로 승화시킨 숭고함 때문일 것이다.
과연 바스키아가 흑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괜한 호기심을 가져본다.

참고자료
www.kukj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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