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5
로즈마리 트로켈이 ‘코스모스’라는 뉴뮤지엄 회고전에 선보인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것만이 아니다. 한 작가의 회고전이 그룹전 형식을 띄는 괴상한 전시 연출을 했다. 애초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최초로 선보인 이 전시는 당시 수석 큐레이터였던 린 쿡(Lynne Cooke)과 작가가 공동 기획했다. 대중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수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나 책, 자연사 박물관 등의 자료 등에서 트로켈의 시각 언어와 공통점을 갖는 작품들을 추려내 회고전에 힘을 보태고자 했던 것이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관객들에겐 도리어 어느 것이 작가의 작품이고 아닌지 가려내느라 힘을 쏙 빼는 다소 고단한 전시가 돼 버렸다. 뉴뮤지엄 전시를 중개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의 표현을 따르면 "합창하는 개인전"이 돼 버렸으니, 화려한 소프라노의 솔로를 들으러 간 관객에겐 맥 빠지는 공연 아니겠는가.
글│이나연 미국 통신원
기사 제공│퍼블릭아트
모든 것이 뒤섞인 가운데 굳이 트로켈의 작품을 가려내 보려는 괜한 노력만 하지 않는다면 이 전시에선 반대 효과로 보물이 숨겨진 광물처럼 완전히 묻힌 작가들을 찾아보는 맛이 있다. 한 작가의 회고전이 무명작가들을 소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니 신선하고 의미 있어 보인다. 다소 실례겠지만 트로켈의 작품을 얘기하기에 앞서 어떤 작가들이 유난히 흥미로웠는지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우선, 상업 사진가였던 모톤 바틀렛(Morton Bartlett, 1901-1992)의 작품
'무제 (Ballerina)'(1950/60)는 석고 인형이 사랑스런 발레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각과 사진작품이다. 3미터와 1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세 개의 유리관이 전시장 한복판에 설치 된 뒤에 바틀렛의 '무제'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트로켈의 작품이 함께 디스플레이 되며 선보였다. 유리관 하나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도록 한 조화로운 연출이다. 바틀렛의 인형을 이용한 롤리타 취향은 사후에야 드러났다. 헨리 다저의 신화를 이어가며 일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바 있으나, 다저처럼 슈퍼스타로 떠오르진 못했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중간지점같은 작품을 선보였다는 평을 듣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도 유리관 안에서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던 작가 제임스 캐슬(James Castle)의 재미난 조형물이다. 작가는 거리에서 발견한 폐지에 실을 엮거나 색을 칠하며 다양한 모양의 새 모형을 만드는 데 골몰했다. 정식으로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해, 1977년 아이다호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전시가 열린 해에 목숨을 잃어 추후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주디스 스캇(Judith Scott)도 예사 작가는 아니다. 색색의 끈과 실 등을 집요하게 감고 엮어서 탄탄한 외견의 가구와 예술사이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엔 1989년에 만든
<무제(둥지)>
를 비롯, 여섯 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트로켈의 타피스트리나 뜨개질을 이용한 작업과 비슷하게 읽히며 여성적인 작업을 거론할 때 적합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베스티 베이하(Betsy Bayha)감독이 다큐멘터리도 제작했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능력 있는 작가다. 이 밖에도 마누엘 몬탈보(Manuel Montalvo)가 손수 제작한 각종 일러스트가 꼼꼼히 그려진 신기한 공책도 전시됐다. 지금껏 모르고 지낸 세상의 비밀의 숨겨져 있을 듯한 암호 같은 그림들이 면면을 꾸미고 있다. 마리아 시빌라 메리안(Maria Sybilla Merian, 1647-1717)이라는 17세기의 유럽 일러스트레이터의 삽화도 볼 만하다. 식물과 꽃 등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렸던 메리안은 각종 소재를 여성적 정체성과 연관지어 작업했던 트로켈의 작업과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전시된 대형 화집은 무려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빌려왔다.
무제(둥지)>
흥미로운 작업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뉴욕스쿨에 속하는 작가군의 한 명이 그린 게 아닐까 싶은 힘찬 붓질과 섬세한 색깔의 추상회화 세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말년의 드 쿠닝 작품처럼도 보이고, 최근 경매시장에서 주가를 올리는 크리스토퍼 울의 페인팅도 떠오른다. 작가가 누굴까 하고 미간을 세우고 월텍스트를 보면 놀랍게도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오랑우탄 틸다(Tilda)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틸다의 작품에 '다른 이들보단 덜 야생적인(Less Sauvage than others)'(2012)이란 제목을 붙이니 트로켈의 개념미술로 재탄생했다. 오랑우탄의 붓질만큼 작가의 아이디어도 재미있어지는 부분이다. 이렇게 이 전시의 묘미는 수수께끼를 풀 듯 하나하나의 작품의 알 수 없는 의미와 연관관계를 풀어가는 것.
끝없는 게임에 조금 지치려 할 때 등장하는 게 바로, 실물 랍스터 박제다. 믿거나 말거나 정말 요리돼 미국인의 식탁에 오른 역사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름하여, “아메리칸 랍스터.” 1964년 5월 13일 27.5파운드의 무게로 요리가 된 이 랍스터는 O. 이아톤(Yeaton)이 기증한 것이다. 델라웨어 자연사 박물관에서 모셔온 귀한 몸 되시겠다. 드디어 이 전시는 미술품이라곤 도저히 여길 수 없는 것까지 아우르고 말았다. 현대미술의, 아니 이 회고전의 신기한 점은 이런 비미술품이 미술품과 함께 전시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랍스터는 트로켈의 '행운의 악마(Lucky Devil)'(2012)에 분명한 영감을 준 듯 보인다. 커다란 대게의 박제를 천 더미위에 턱하고 올려놓은 작품말이다.
컴컴하고 복잡한 미로를 빠져나오는 길에 새하얀 세라믹 타일과 그 타일을 부각시켜주는 형광등을 설치해 화사하게 꾸며진 작품 '세라믹 방(Ceramic Room)'(2012)을 마주치게 된다. 굉장히 위생적일 것 같은 하얀 방에 플라스틱 인조 야자수 '무제'(2012)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세라믹은 천, 실, 책 등과 함께 트로켈이 주요 소재로 활용하는 재료다. 그릇을 만들거나 집 인테리어에 주로 사용되는 까닭에 여성적인 재료로 읽히기도 한다. '이정표(Touchstone)'(2012)같은 트로켈의 대표작들도 대부분 세라믹을 소재로 한다. 대체로 음침한 자연사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대부분의 전시 공간을 지나 이렇게 화사한 공간으로 들어오니 기분전환이 되는 듯했다. 의도한 것일까?
많은 작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거장의 걸작과 배치하며 본인의 레벨을 마스터급으로 은근슬쩍 '올려놓는' 전법을 취할 때, 트로켈은 무명작가, 혹은 작가가 아닌 이들의 작품과 병치시키면서 본인의 가치를 '내려놓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연출은 작가로서의 트로켈의 여정을 압축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전후 독일에서 안젤름 키퍼,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 폴케 같은 남성 현대미술 작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때, 비슷한 강도로 전위적인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던 작가의 과거를 은유하는 것으로 읽힌다. 트로켈은 1952년생이다. 키퍼는 1945년생으로 1998년 이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경력이 있다. 리히터는 1932년생으로 2002년 모마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명실상부 생존 작가 최고 몸값을 과시한다. 트로켈의 경우 1988년 모마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순조로운 출발을 했으나 그 후에도 이십년간 위에서 거론한 남성 작가들처럼 높은 인지도를 얻는 데는 실패했었다. 최근 5년 사이 미술사적으로 그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되거나 이런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오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거장으로 분류될 자질을 가지고도 인지도를 얻지 못하는 가련한 운명을 살아내야 했다. 물론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삶이지만, 작가가 체감하는 무명도는 은둔형 아웃사이더 작가들과 다를 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전시는 1월 20일까지 열렸다.
글쓴이 이나연은 사실 회화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수료할 수 있는 기간 정도, 미술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 후 뉴욕으로 유학을 와 미술 비평 전공으로 석사 학위 까지 땄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고도 누구에게도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을 사랑한다. 주로 최대의 노력을 쏟아 붓고 최소의 결과를 얻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자본주의 최전선에서 마르크스를 읽는 쾌감이 좋아서 뉴욕 체류 중이다. 누가 뭐래도 즐겁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