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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오프사이트 뮤지엄, 먼 옛날로 돌아간 현대미술

2012-08-20


아일랜드 모던아트뮤지엄(The Irish Museum of Modern Art, 이하 IMMA)은 국내외 모던 및 컨템포러리아트를 컬렉션하고, 미술 담론을 생산하는 동시에 공공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해오고 있는 아일랜드의 대표적 미술관이다.필자가 더블린에 도착하자마자 아일랜드 현대미술 컬렉션을 살펴볼 기대를 품고 방문했던 IMMA는 올해 말까지 일 년간의 대대적인 내부공사 중이라 안타깝게도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이마는 미술관 소장품의 일부를 더블린 시내 중심가로 옮겨 선보일 야심 찬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번에 소개하는 ‘IMMA at NCH(5.31~9.02)가 바로 미술관 재개관 이전에 한시적으로 컬렉션을 공개하는 이마의 오프 사이트(Off-Site) 뮤지엄이다.

글│심소미 아일랜드 통신원
기사제공│퍼블릭아트

더블린 시내에서 외곽에 위치한 이마의 본 건물인 로얄병원 킬메인햄(the Royal Hospital Kilmainham)이 리노베이션하는 동안 이마가 이사한 곳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내셔널 콘서트홀(the National Concert Hall)의 1층 공간이다. 미술관과 콘서트홀의 만남, 서울의 예술의 전당처럼 이상할 것 없는 구성이지만 각각 개별적 장르의 성격이 독립적이기에 음악회 한 켠에 부수적으로 미술 전시가 조성되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입지였다. 내셔널 콘서트홀에 도착하자 우측으로 디자인된 임시벽의 강렬한 타이포그래피가 시선을 사로잡으며 관람객의 동선을 직접 전시장으로 유도했다. 건물에 새로 입주한 이마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통로를 지나 도착한 전시 공간은 예상 밖으로 복도를 사이에 둔 낡은 방들이 연이은, 마치 오래된 병원 혹은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구조였다. 이곳은 실제로 19세기 후반에 의과 대학으로 사용됐던 역사적 장소로, 당시의 구조를 건물 중앙의 콘서트 홀로부터 분리시켜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로비의 안내를 받아 전시장으로 가는 복도에 들어서자 ‘공공보건 의학과 전염병 분과’라 쓰인 문구가 관람객을 맞으며, 현재의 시간대를 아득한 옛날로 되돌리는 듯 했다. 다름이 아닐까. 장소로부터 감지된 분위기는 본 소장품전의 제목인 ‘먼 옛날(Time out of Mind)’이었다.

다소 노스텔지어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전시 제목은 감성적인 접근보다는 역사, 시간, 공간, 문화, 과학적 맥락에 대한 복합적 이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시 서문을 참고해보면, 책임 큐레이터인 크리스티나 케네디(Christina Kennedy)는 전시의 주제에 대해 “기억의 영역을 넘어선 시간에 대한 오래된 격언인 ‘먼 옛날부터(since time out of mind)’에서 비롯한다”며 시간성에 대한 해석으로서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낡은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의 말을 부연하였다. 역사적 시공간과 현대미술의 만남이 기대하고 있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전시의 또 다른 맥락 ‘과학’과도 연관되는 지점이다. 전시에서 반영하고 있는 과학적 맥락은 더블린이 2012년 유럽의 과학도시로 선정 돼 각종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 시대적 혁신을 논하게 된 도시적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전시는 1900년 이후 이마의 컬렌션 중 시공간과 관련한 기억, 그리고 과학적 지각 방식을 탐구하고 있는 작품을 선정해 카를로스 아모레스(Carlos Amorales), 린다 벤글리스(Lynda Benglis),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아이삭 줄리앙(Issac Julien), 마르쉘 뒤샹(Marcel Duchamp), 마크 멘더스(Mark Manders), 한국출신의 정은모 등 총 28명의 국내외 작가의 35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가운데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전에 의과대학의 실험실이었을 16개의 방은 각각 상이한 시대간의 현대미술 작품과 만나며 개성적인 분위기를 독립적으로 형성하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의 다수가 영상과 설치 작업이어서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공감각적인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모습이었다. 각 방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관람객은 낯설고 기이하게 오버랩 된 시간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삭 줄리앙의 영상 작품 ‘파라다이스 오메로스(Paradise Omeros)는 이주민의 시공간적 이동, 전치된 상황을 작가 특유의 영상 병치 형식으로 선보이며, 복도 중앙의 로비를 장악한 데픈 라이트(Daphne Wright)의 은박의 설치 작업은 영화 셋트장과 같은 초현실적 분위기로 공간을 해석해 낸다. 마리 폴리(Marie Foley)의 박물관 캐비닛 속 작업은 알려지지 않은 고고학적 실체를 가정해 내며, 도로시 크로스(Dorothy Cross)가 해양학자와 공동 작업한 해파리 영상 작업은 미적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담아 내며, 타시카 딘(Tacita Dean)이 촬영한 카톨릭 커뮤니티 자매의 일상은 카메라가 응시한 공간, 빛, 그림자, 사물 등 찰나적 순간을 통해 묘사된다. 이 외에도 전시된 작품들은 각기 생물학, 화학, 수학, 물리학, 천문학, 연금술학, 심리학, 신경과학, 해양학, 음향학 등 과학의 다양한 장르를 연상시키며 과학적 효과를 통한 예술가들의 아이디어 실현 방식을 살펴보게 한다. 하지만 과학과 상호작용하는 테크놀로지적 예술작품을 전시에서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본 전시는 몇몇 영상 작품을 제외하고는 기술적 측면에서 주로 아날로그적 형식을 띄며, 반테크놀로지적 구조로서 과학적 사고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본 전시의 큰 주제인 ‘시간’으로 되돌아가 접근해 볼 수 있다.

기술, 혁신, 발명, 창조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긍정적 입장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 도시로서의 더블린의 기대는 지역과 국가에 걸친 집단적 소망과도 관계된다. 그 미래를 향한 낙관적 시선과 기대로부터 시선을 돌려 멋 옛날의 시간으로 돌아간 이마의 소장품들, 즉 현대미술은 이 도시의 역사를 발굴하여 새로운 의미작용을 일으키고자 해 보였다. 본 전시가 주목하고 있는 멋 옛날의 재발견은 폐허로부터 근대적 혁신을 발견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역사관을 연상시키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마가 미술관 소장품을 내셔널 콘서트홀로 옮기며 주목한 이 도시의 역사와 시간은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사적 시간으로 존재했었던 작품들 각각과 조응하며 작품에 다른 시공간적 맥락을 형성해 낸다. 이는 미술관이 소장품을 보존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사회적, 공간적 맥락을 통한 의미의 재해석과 시대적 교류를 시도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조우로부터 이마의 소장품들은 새로운 시공간적 맥락과 새로운 의미로 재발견될 준비를 채비한 것이다. 이마가 경유하고 있는 복합적인 시공간성은 본 소장품 전시관 바로 옆 아넥스(Annex) 홀에서 열리는 알바니아 출신 작가 안리 살라(Anri Sala)의 전시를 통해 또 다른 사회, 문화적 배경으로 증폭되어 진다. 그의 영상 ‘붉은색 없는 1395일(1395 Days without Red)’는 사라예보가 포위됐던 역사적 상흔, 저격수를 피해 거리를 돌진했던 시민들의 도시적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라예보 거리를 쫓기듯 행보하는 여성의 콧노래, 그 흥얼거림은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지는 어떤 음악보다도 강렬했다.


글쓴이 심소미는 건축학 이후 예술학을 공부하고 2003년부터 큐레이터로 활동해왔다. 갤러리 스케이프, 갤러리 킹,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에서 큐레이팅을 해왔으며 젊은 작가 발굴 및 기획 전시에 주력해왔다. 현재 독립 큐레이터로 더블린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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