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3
세상이 첨단을 향해 나아갈수록 시대의 미덕도 변하는 것일까. 예전 같으면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 성실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요즘은 ‘손가락의 지문이 닳도록’ 일하는 사람을 더 반기는 듯하다. 갤러리와 미술관 역시 손이 발을 대체한 ‘스마트한’ 시대에 맞춰 온라인 버추얼 뮤지엄, 온라인 갤러리, 뮤지엄 뷰, 디지털도록 등 새로운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근성과 소통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전세계를 상대로 작가와 작품을 알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글│현정아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확장된 구글아트프로젝트, 한국 작가도 소개
아무리 온라인이라도 고흐의 붓 터치만큼은 직접 보는 것이 예의라고 단정 짓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글아트프로젝트는 작년 2월, 무려 17기가 픽셀의 초고해상도 작품을 온라인에 띄우며 전세계인을 경악케 했다. 미술품 복원 전문가들이나 보는 정밀한 초고해상도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뉴욕 현대미술관 등 17개 주요 미술관의 1천여점 작품들을 선보이며 최첨단 온라인 버추얼 뮤지엄으로 군림하던 구글은 올해 전세계로 영역을 확장해 아시아, 북미, 유럽 등 모두 40여개 국가의 151개 미술관을 추가했다. 모두 6천여명 작가의 3만2천여점의 작품이 구글아트프로젝트에 추가된 것.
한국에서는 90여개 사립미술관이 회원으로 있는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아래 협회)가 구글과 손을 맞잡았다. 대부분 각국을 대표하는 주요 미술관이 참여한 것과 달리 협회 단위로 참여한 것에 대해 협회의 김소정 큐레이터는 “협회는 지난 2011년 ‘Korean Artist Project’(아래 KAP)를 오픈하면서 온라인을 통해 한국의 주요 현대미술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하는 등 온라인 프로젝트를 이미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글아트프로젝트의 모든 준비과정과 신속하게 부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판 구글아트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에 소개되는 한국 작가들은 모두 98명으로 작품은 모두 5천여점에 달한다. 사진가로는 강홍구, 김준, 민병헌, 박대조, 원성원, 유현미, 이갑철, 임택, 정연두, 주도양 등이 참가했다. 98명 모두 회원 미술관들이 추천하고 외부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었다.
전세계 주요 미술관을 망라하는 구글아트프로젝트는 스트리트뷰 기술을 이용해 전시룸을 실제로 돌아다니듯 감상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전시룸 스트리트뷰가 지원되는 곳은 전체 미술관 중 51곳에 한정된다. 작가들에게 원본파일을 받아 구글측에 전달한 한국은 3천픽셀 이상의 고화질로 작품을 볼 수 있다.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려면 구글아트프로젝트(www.googleartproject.com) 페이지의 ‘Collections’를 클릭하면 된다. 알파벳순으로 나열된 전세계 미술관 중 ‘Korean Art Museum Association’으로 들어가면 김범수와 유현미의 작품을 시작으로 5천여점의 작품들이 모두 나열된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찾으려면 검색창에 영문으로 성 또는 이름을 입력하면 되고, 그중 한점을 골라 확대하여 볼 수 있다. ‘Details’를 클릭하면 작가소개, 비평 등 보다 자세한 설명을 얻을 수 있다. 이중 따로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로그인 후 ‘내 갤러리’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내 갤러리’는 개편을 통해 새롭게 강화된 기능으로 작품 아래 직접 코멘트를 달아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 SNS는 내 갤러리를 활용하지 않고도 따로 공유가 가능하다. 이밖에도 ‘탐색하고 발견하기’ 기능이 개편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 협회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글로벌 온라인 프로젝트 KAP(www.koreanartistproject.com)를 통해서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작년 12월부터 매년 20여명의 한국 작가들을 각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를 통해 해외 미술계에 소개하고 있다. 협회 홍장미 실장은 “2011년 KAP 선정 작가 중 손봉채, 정연두, 강현욱, 강형구 등은 해외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으며 특히 손봉채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중국 젠다이미술관에서 최대 규모의 개인전에 초대되어 2012년 10월경 오픈을 앞두고 있다”며 “협회는 앞으로도 각국의 큐레이터와 미술관 디렉터, 컬렉터뿐만 아니라 E-Flux, Agenda와 같은 온라인 매체, Art in America 등과 같은 저널을 통해서도 홍보를 준비하고 있다”고 계획을 밝혔다.
뮤지엄뷰, 디지털도록 선보인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지난 2월부터 네이버와 제휴해 온라인 뮤지엄뷰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국립현대미술관’을 검색하거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뮤지엄뷰를 실행시키면 미술관의 전시실 및 야외조각장을 3차원 파노라마 영상으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 1995-2010>
전을 담은 디지털도록 ‘국립현대미술관 디지털 퍼블리싱 캠페인’으로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The Internationalist Awards for Innovation in Media’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이는 The Internationalist 매거진’의 주최로 지난해 혁신적인 기획에게 수여하는 시상으로 미술관으로는 유일하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디지털도록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주)디폴리오(www.dfolio.co.kr)가 작년 말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로, 아이패드를 활용하여 작가와 작품, 작품평, 인터뷰 등을 영어와 한국어로 수록한 것이다. (주)디폴리오의 권기정 부장은 “호주와 아일랜드 등에서 현대미술과 관련한 디지털도록을 제작한 사례가 있지만 분량이나 내용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본격적으로 디지털도록을 만든 사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최초”라고 밝혔다. 아이패드 전용인 도록은 앱스토어(App Store)에서 ‘Nmoca’를 검색하면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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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술을 응용한 각종 채널을 통해 대가들의 작품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신진작가들이나 비주류 장르의 작가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들을 위한 대안적 공간으로 온라인 갤러리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비록 최첨단 기술도, 거장의 작품도 없지만 무엇보다 현대미술을 지탱시키는 다양성과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그중 지난 3월 성희진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문을 연 ‘갤러리 블랭크’와 2007년 오픈한 이후 지속적으로 활발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쎄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갤러리 블랭크는 남사라, 박연우, 초록산 등 수년간 갤러리와 전시프로젝트에 참여한 큐레이터와 작가로 활동한 구성원들이 모여 만든 온라인 갤러리이다. 현장 실무를 통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들이 처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나아가 작가 발굴과 재조명을 통해 미술계에 풍요로움을 불어넣고자 한다.
http://www.galleryblank.blog.me
1. 왜 만들게 되었는가?
갤러리가 자본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보니 메이저급이 아닌 작가들은 갤러리로부터 착취당하거나 부당한 일을 겪는 등 개운치 않게 전시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일에 대한 회의, 무력감 같은 것으로 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밖에도 관객들과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없는 부분도 문제였다.
2. 온라인 갤러리의 장점은?
규모가 큰 갤러리에서 전시하기 위해서는 대관료, 운송비, 인쇄물, 홍보비 등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신진작가들이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에 상업갤러리는 대기업을 등에 업지 않는 한 비용충당이 가능한 메이저급 작가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하드웨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시간, 공간적 제약을 덜 받기 때문에 남는 에너지로 소프트웨어를 키울 수 있다.
3. 신진작가들의 프로모션에 중점을 두는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작가층은 다양하다. 비단 신진작가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지만 갤러리를 통해 특별히 조명 받지 못했던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4. 홈페이지가 아닌 네이버 블로그에 갤러리를 만든 이유는?
소통면에서 홈페이지가 블로그를 대신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람객들 또한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보다 블로그의 맵에 더 익숙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5. 비평, 작가인터뷰, 에피소드, 작가노트 등 게시판 구성이 유익하다.
일반 관람객들이 오프라인 갤러리를 방문하면 리플릿 하나에 의존해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요즘엔 그나마도 없는 갤러리가 많다. 우리는 관람객에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전체를 들려주고 그들의 생각을 다시 듣고 싶었다. 아마 이 부분은 작가 자신에게도 절실한 부분일 것이다. 거기다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전시 외의 재미, 즉 에피소드가 필요했다.
6. 새로 시작하는 공간인 만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짜임새 있는 구성을 위해 석달 혹은 두달을 묶어 하나의 테마로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전시를 많이 열기보다 일정 기간 내에 작가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또한 온라인의 강점을 활용하여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들도 종종 소개할 계획이다. 그리고 작업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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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 프로젝트는 아트 디렉터 와이피(YP)와 에디터 박가영, 강수민, 이민진, 박정현, 김수연으로 구성된 온라인 갤러리이자 독립 출판사이다. 2007년 7월 웹사이트를 오픈한 이래 매달 한 작가를 선정하여 온라인 전시를 열고 전시된 작품들은 ‘SSE Zine’으로 출판하고 있다.
http://www.sse-p.com
1. ‘쎄 프로젝트’(SSE Project)는 어떤 공간인가?
‘쎄’로 발음되는 ‘SSE’는 한국 방언으로 ‘혀’를 뜻하고 영어는 ‘Special Solo Exhibition’의 이니셜이다. 즉, 개성 강한 ‘쎈’ 작업을 작가 스스로 직접 말하거나 보여준다는 의미의 온라인 갤러리이자 독립 출판사이다. 주로 한국의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데 주력하며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스트리트 아트 등 기존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탈 장르화를 시도하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2. ‘쎄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쎄 프로젝트를 만들기 전 2001년부터 아티스트 작품 모음집 ‘게릴라 프로젝트’를 무크지 형식으로 제작해왔다. 여기에 내용을 좀더 보완해 ‘쎄 프로젝트’를 만들게 됐다. 어떤 형식이 좋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홍대에 위치한 대안공간의 일일방문객 통계를 보게 되었는데 많게는 하루에 20명, 적게는 5명만 방문하는 갤러리의 현실을 본 후, 온라인 공간을 생각하게 됐다. 온라인 갤러리는 오프라인보다 접근성이 좋아 손쉽게 들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마우스 클릭으로 관람하다보니 작품들이 의도치 않게 가벼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시와 동일한 구성의 ‘SSE Zine’을 매달 출판하고 있다. ‘‘SSE Zine’은 현재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불가리아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판매되며 지난 10월부터 해외 작가의 전시도 진행하고 있다. ‘쎄 프로젝트’ 자체가 아카이브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해외 작가의 전시를 통해 해외 방문자들이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기존 전시 작가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3. 현재까지 몇 번의 전시를 했고 방문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지금까지 34번의 온라인 전시와 4번의 오프라인 전시를 진행했다. 새로운 전시가 오픈되는 매달 초에는 매일 300~500명 정도 방문하고 평상시에도 최소 200명 이상은 방문하는 것 같다.
4. 온라인 외에도 오프라인 전시도 진행하나?
비정기적으로 ‘트러블메이커’라는 이름의 그룹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홍대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종말을 주제로 한 그룹전 ‘트러블메이커 2010 The End of the World’를 개최했다. 이 외에도 기업들과 쎄 프로젝트 작가들을 기반으로 한 콜라보레이션 전시기획을 맡아서 진행하기도 한다.
5. 온라인 갤러리의 전망은?
‘쎄 프로젝트’를 오픈할 당시에도 알게 모르게 온라인 갤러리가 여럿 있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온라인 갤러리 자체가 소수의 기술력과 적은 자본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매체이니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유령사이트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자신들만의 개성을 두루 갖춘 온라인 매체가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독자보다는 운영자의 몫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