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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예술을 발언하는 샤먼의 상상력

2012-06-18


이스라엘 홀론 시장의 집무실에 들어선 한 사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범상치 않다. 아니,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동네 형들도 잘 입지 않는 형광파란색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기사님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머리에는 오소리 박제를 뒤집어쓰고, 가슴팍에는 토끼 두상 박제를 앙증맞게 품고 있다.

글│이정헌 기자
자료제공│퍼블릭아트

이 사내의 이름은 마커스 코츠(Marcus Coates). 영국의 (유사)샤먼이다. 코츠는 홀론 시장 모티 사순에게 근엄하게 말한다. “내게 묻고 싶은 게 없소?” 시장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홀론 시의 청소년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끼끽끽끽끽……끼끽끽끽끽!” 그의 고민을 들은 코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괴음을 내지르며 죽은 토끼의 정령과 스컹크 정령을 이 세상에 부르는 의식을 시작한다.

이는 제의적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작가의 2008년작 의 내용이다.

커스 코츠의 작품은 2004년 전후로 양상이 바뀐다. 초기작은 자연주의 혹은 자연회귀적 성향을 띠었다. 1999년 작 는 ‘매의 눈’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적송나무의 높은 위치에 매달아 놓는 퍼포먼스였다. (2000)에서는 땅에 자신을 파묻고 야생 동물소리를 연마하며 ‘득음’을 시도하는가 하면, (1999)를 통해 땅위에 있는 담비의 발자국을 불편한 ‘나막신’을 신고 좇아가며 동물의 ‘움직임’을 터득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초기작을 두고 그는 “자연계의 구조 안에 나를 포섭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초기작들은 2004년 이후 나타나는 샤먼의 제의적 퍼포먼스를 위한 준비단계로 보인다. 실제로 샤먼은 ‘동물화 되기’를 시도하며 죽음도 불사하는 고단한 수행을 오랜 기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작이 그 실제 수행내용과 무척 흡사하다.

준비가 됐다고 느꼈던 걸까. 수행으로 단련된 작가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슈와 생태문제에 대한 ‘제의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특히 (2004)는 마커스 코츠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자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비디오와 사진으로 기록된 이 작품은 리버풀 변두리 강제철거지역의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벌였던 퍼포먼스다. 작가는 이제 곧 재개발에 의해 쫓겨나야 하는 주민들을 철거예정지인 아파트로 불러 모은 후, 그들에게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들의 질문이란 당연히 걱정스런 고민거리였다. “누가 우릴 지켜주나요?” 외모부터 예의바르게 생긴 이 청년은 질문을 경청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사슴 가죽을 뒤집어 쓴 채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는 엉거주춤한 포즈로 잠드는 시늉을 하며 트랜스(Trance, 의식의 황홀 상태) 상태에 빠져든다. 작가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낮지만 큰 소리로 사슴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새의 울음소리인지, 개가 짖는 소리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괴기스런 소리다. 그런 코츠의 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주민들은, 결국 하나둘씩 웃음을 터트린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다시금 예의바른 청년으로 돌아온 코츠는 자신이 트랜스 상태일 때 보았던 광경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는 컴컴한 동굴과 삼림을 떠돌았고, 결국 황조롱이(Sparrow Hawk)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가 내게 해답을 줬습니다.” 주민들은 궁금해 했다. “그게 뭔가요?” 작가는 트랜스 상태에서 목격한 황조롱이의 깃털 패턴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며, 주민들에게 스스로 단결할 것(Stick Together)을 당부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트랜스 상태가 정직하게 보여서일까. 이러한 상투적인 대답을 들은 주민들 가운데 실제로 화를 낸 이는 없었다. 이 괴상한 사내의 퍼포먼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샤먼’이라는 개념을 살피는 게 좋겠다.

마커스 코츠를 일본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일본의 인류학자이자 종교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다마대 예술학과장)는 샤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샤먼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무의식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우주의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성스러운 동물의 영을 만나, 거기서 우주의 비밀을 접하고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농작물을 풍성하게 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다.” 트랜스에 빠져들어 동물화 되거나, 동물령(動物靈)으로부터 형이상학적 계시를 받는 일은, “진화의 과정을 거꾸로 더듬어 ‘퇴행’”을 의미한다. 샤먼은 퇴행으로 이 세계를 정화하는 힘을 얻게 되면서 족장이나 왕의 권력과도 맞먹는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전통 형이상학과 단절된 현대. 과학과 논리만이 세계의 유일한 작동 원리로 인정되는 와중에, 마커스 코츠는 과학과 논리와는 거리가 먼, 옛 샤먼의 제의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가 진짜 샤먼들이 그랬던 것처럼, 곤경에 빠진 이들과 대화를 하고, 생태문제를 건들며 ‘문제해결사’ 노릇을 하는 건 어떤 정당성을 지니고 있을까.

나카자와 신이치와 하세가와 유코(도쿄도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가 함께 기획한 전(도쿄도현대미술관, 2010)은 “글로벌 경제,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해 종래의 사회에 속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해 다양성을 띠게 된 양상”을 설명하는 전시했다. 메튜 바니, 얀 파브르 등과 함께 전시를 갖은 마커스 코츠는, 이 전시에서 근대부터 현대가 규정하는 육신의 개념을 벗어던지고, 퇴행한 ‘동물화 되기’를 시도한 현대인(작가)로 인식된다. 그의 작업이 전반적으로 ‘동물화 되기’라는 샤먼의 ‘기본’에 충실하지만, 특히 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3년에 걸쳐 진행된 이 작품은, 실제 각 종 조류의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19명의 인원이 이를 모사하는 광경을 촬영한 영상을 빠르게 재생한다. 최종 출력된 영상은 놀랍게도 실제 새소리와 무척 흡사하다. 요컨대 이 작품은 누구든 동물화 되기가 가능하다는 실험결과보고서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관계적 미학’을 주창한 니콜라 부리오가 기획했던 2009 테이트트리엔날레(전시명은 얼터모던(Alter Modern))에도 초대되었다. 이 전시는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결별을 알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으나, 반대로 ‘모더니즘으로의 회귀’를 초래한 셈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곤 했다. 기획자가 의도한 바대로 마커스 코츠의 작업세계는 사회참여와 관객참여, 이행성이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자연으로의 회귀나 동물화 되기, 퇴행 등의 성향은, 모더니티로의 회귀라는 지적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작가의 일부 작품이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사회정치적 요소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요셉 보이스의 작품세계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좀 더 생태적 문제를 화두로 삼고, 진짜 샤먼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가져와 선보인다는 점이 다르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그는 요셉 보이스의 이야길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커스 코츠의 우습고, 괴팍스런 보이는 제의는 최근, 프로젝트밴드 크롬후프(Chrome Hoof)와 협업으로 무대 위에서 힙합공연처럼 화려하게 선보여진다. 자연회기적, 치유적 속성의 예술부터 사회부조리 고발까지 넘나드는 이 샤먼은, 과학자도 작가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약력)
마커스 코츠는 196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로얄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디어, 사운드,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사용해 작업 활동을 해왔다. 작가는, 52회 베니스비엔날레(2007), 2008 테이트트리엔날레 <얼터모던> , <마니페스타7> (2008, 이태리 트랜토), (2009, 발틱현대미술센터), <트렌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도쿄도현대미술관, 2010) 등 다수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유럽, 미주, 일본 등지에서 활발하게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는 <예술가의 신체> (2008, 코리아나미술관)전, <신화의 전시> (2009, 백남준아트센터)전에서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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