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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미술과 지역사회의 매개자-일본 문화예술 NPO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2012-05-21


문화예술 NPO? 아직까지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문화예술 NPO가 없진 않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인식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해외의 경우 비영리 문화예술단체임에도 매우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활동으로 지역문화 활성화 운동을 이끌어간다. 지난달 언급했던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나 요코하마의 뱅크아트1929, 나카노죠 비엔날레, 교토아트센터 등 문화예술 NPO가 벌이는 일본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사례를 통해 아직까지 낯선 그들의 정체와 활동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들은 현재 한국 공공미술이 추구하는 목표와 매우 닮아 있다. 이들이 한국 문화예술계, 공공미술, 더 확대하여 ‘기금제’에 어떤 이상향과 시사점을 제시하는지, 기사를 통해 살펴본다.

글,기획│이정헌 기자
기사제공│퍼블릭아트

중앙정부를 비롯해 지자체, 문화재단, 예술단체 등이 주최, 주관하는 공공미술은 더 이상 상징물 세우기에 그치지 않고 지역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며 더욱 활성화되는 추세다. 프로젝트의 운영비는 대부분 사업 선정공모에 의해 진행되는데, 이때 보다 우수한 기획으로이 프로젝트가 운영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기금제에 의해서든, 국비와 지방비, 혹은 기업 메세나를 통해서든 사업 추진비를 운영하는 주체는 꽤나 부담스러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조그만 사안에 의해 문제가 커지는 경우도 있으며, 공정성의 문제, 또 이를 넘어 프로젝트의 존립 문제까지 거론되곤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각 지역에서 진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대부분 문화예술 NPO가 진행한다. 이들은 비영리단체이나 세금이나 기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운용하여 프로젝트의 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낸다. 지난달 살펴본 것처럼, 국내에는 국가차원이나 지자체의 세금만을 가지고 진행되는 지역문화재생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거의 대부분이다. 모순적이지만, 이런 국내 프로젝트들이 지향하는 일본의 성공사례들은 사업추진비 조달부터 운용방식이 서로 많이 다르다. 공공미술 기획자들이 말하듯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단체의 재정적 자립은, 곧 자주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요소로써 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기본 본바탕이 된다. 한국 입장에서 보자면 뜬구름 잡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국내 프로젝트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일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운영자들은 현실적인 재정적 자립을 이뤄낸다. 그들의 사업추진비 획득 방법, 운용 방식을 대표적인 사례로 살펴보자.

문화예술 NPO의 성격

NPO(Non Profit Organization)는 일종의 사명감과 자발적인 동조로 인해 이루어진다. 본인의 확고한 사회적 목적과 공동체 의식 아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성원들로 조직된 게 NPO의 특징이다. 흔히 자원봉사나 재능기부 정도로 오해하거나 ‘사회적 기업’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무상으로 일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경제 수익을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지만, 지난 4월호에 설명했듯 재정적 자립을 위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한다. 이를 테면 일반 서비스사업이나, 정보 수집 및 분석, 컨설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거나,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기금이나 후원금을 타내어 단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운영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NPO의 이러한 ‘투잡’은 일반화 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지닌 견고한 전문성과 (추상적이지만)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NPO와 사회적 기업은 여러 부분에서 구별된다. 사회적 기업은 고객 지향적이고 수익창출에 활동목적이 있는 반면, NPO는 오직 ‘사회적 기여’가 전부다. 사업 자금의 획득 부분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기업은 지원금과 사업수익에 의존하고, NPO는 지원금, 사업수익 외에도 기부 및 회비 등으로 운영된다.

NPO와 사회적 기업은 여러 부분에서 구별된다. 사회적 기업은 고객 지향적이고 수익창출에 활동목적이 있는 반면, NPO는 오직 ‘사회적 기여’가 전부다. 사업 자금의 획득 부분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사회적 기업은 지원금과 사업수익에 의존하고, NPO는 지원금, 사업수익 외에도 기부 및 회비 등으로 운영된다.

일본의 NPO는 성격상 의료, 복지, 환경, 인권, 교육, 학술 문화예술 등 총 17개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단체수는 무려 3만4,000여 개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특정비영리촉진법’에 의해 법인으로 등록된 단체는 500개, 문화예술 분야는 66개(2010년 말 기준)다. 이들의 문화예술행정 사항을 연구한 전시기획자 엄광현(일본 타마대 예술학 박사)은 이를 두고 “아이러니컬한 수치다. 민간기업과 중앙정부, 지방지자체의 지원과 후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NPO가 정부에 등록하여 세제 혜택과 지원을 받고자 하는 한국과 대조적인 집계결과”라는 것이다.

NPO와 공공미술

문화예술 NPO가 운영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본지 4월호 참고)와 같은 성공작은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한국이 벤치마킹하려는 일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이들 단체가 위탁운영하며 꾸려나간다. 먼저 일본의 공공미술 전개 과정에서 NPO들이 어떻게 개입하게 됐을까.

일본의 공공미술은 1960년대에 ‘야외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시작됐다. 당시 고베시는 <야외조각전> 을 개최하고, 전시 작품을 구입, “시민의 문화적 계몽”을 위해 조각을 도심과 거리에 설치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지자 이러한 형식은 곧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공공미술 붐을 만들어갔다. 이후 버블경제로 호황기를 맞은 일본의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메세나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인다. 일본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활동으로 인식됐기에 버블경제가 무너지고도 예술가와 문화예술 관련 단체 및 예술 프로그램 지원은 액수가 조금 줄었을 뿐,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현재 일본기업의 70퍼센트가 메세나 활동 중이며, 이들은 각각 연간 평균 8,500만 엔(한약 12억 원)을 지원한다. 기업 메세나와 국비, 지방비로 운영되는 공공미술 분야에 과분하게 투자된 금액을 운용할 사람들이 필요해졌다. 문화행정 전문가의 수도 많지는 않았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사고를 해내는 기획자와 활동가들을 필요로 했으며, 이 지점에서 문화예술 NPO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문화예술 NPO 단체의 구성원은 불과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비영리 조직의 구성원 중에는 대학 교수나 20년 이상 실무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 껴 있기도 해 모두가 문화행정, 프로젝트 기획의 전문가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NPO란 그야말로 자발적 비영리단체임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NPO의 사명감은 곧 신용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와 더불어 ‘뱅크아트1929’는 문화예술 NPO가 지방비와 공간을 위탁경영하며 이뤄낸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다. 뱅크아트1929는 요코하마 시정부가 NPO단체와 협력 하에 항구 근처 근대 건축물과 산업시설을 문화적으로 재활용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이자 문화예술 NPO 단체명이다. 2004년 3곳의 기업으로부터 건물을 기증 받은 요코하마시는 공개입찰을 통해 위탁운영 할 NPO 단체를 선별하고, ‘뱅크아트1929’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이들은 매년 전시와 공연, 아트 레지던스, 출판 등 연간 600여건의 행사를 진행하는데, 요코하마시는 장소운영비, 운영 위탁비, 사업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한화로 2억8,000만 원(2008년 기준)의 지원금(지방비)을 낸다. 헌데 재밌는 점이 있다. NPO들은 이 사업을 자체 기획하고 운영하며 약 12억 원(2009년 기준)의 순수익금을 창출하는데, 이를 요코하마 시에 일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익금은 고스란히 사업운용자금으로 재투자 되어 더 나은 프로그램 기획을 만드는 데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단체와 시정부의 공무원들은 서로 “완벽한 파트너십”을 이뤄가고 있다고 자평한다. 한국으로서는 쉽게 납득이 안 가는 ‘광경’이지만, 뱅크아트1929가 만든 아트스페이스 ‘Bank Art Studio NYK’는 요코하마트리엔날레라는 거대 행사의 메인전시장 역할을 하고, 정기적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지역활성화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사업운영비를 두고 위탁운영단체와 시정부가 의심할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불과 두어 명의 인원들이 운영하는 금액은 한국의 소기업이 1년간 운용하는 자금과 맞먹는데도, “운영을 맡긴 이상 믿고 기다릴 것”이라는 원칙이 잘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NPO에 위탁사업을 시행한 지자체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지자체 문화사업 담당자들은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력’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2008 요코하마트리엔날레 도록)

NPO가 경영하는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나, 아직까지 사회적 기업의 불모지라고 볼 수 있는 한국에서 눈여겨 볼만한 사례가 많다. 다만 에치고츠마리 트리엔날레는 총 4년의 준비기간과 리서치가, 뱅크아트1929는 3년의 기간과 적극적인 정관의 협조(매 3개월마다 요코하마 시와 뱅크아트1929측은 운영회의를 갖는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집고 넘어가야 할 테다. 또한 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NPO 단체는 거의 바뀌지 않고 운영된다. 그 이유는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단체가 대부분 사업지역 출신의 NPO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정부와 주민, 작가와 주민을 연결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담당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조율해낸다.

일본에는 NPO가 참여하지 않고도 지역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여러 곳이 존재한다. 공공미술 추진위원회가 설립되고, 공익법인 등의 법적 조직이 재정을 담당하는 단체나 기관이 별도로 설립되어 정부로부터 지역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 사업을 위탁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건축물미술작품제도에 의거, 민간기업이 출연한 기금의 운용으로 진행될 국내 공공미술 사업과 흡사하다. 물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익법인이나 독립법인이 아니다. 그러나 재정을 담당하고, 지역문화활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에는 나카노죠비엔날레와 교토예술센터 등이 있다.

일본 쿤마현에 있는 나카노죠는 인구 1만 7,000명이 사는 시골마을이다. 그곳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나카노죠 비엔날레가 열린다. 2011년 3회를 맞은 행사에는 불과 한 달 사이 36만 명이 다녀갔다. “지역 문화 및 경제 재생”을 목적으로 삼은 나카노죠 일련의 행사들 덕분이다.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행사 전부터 현지에 오랜 기간 체류하며 지속적인 리서치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작품제작과 설치, 장소를 스스로 선택한다. 교토시로부터 경영위탁을 받은 독립법인이 운영하는 교토예술센터는 폐교를 활용한 종합문화예술센터다. 순수미술 작품을 전시하는가 하면, 무용,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이 개최되며, 레지던스와 도서관 등의 기능 또한 같이 하고 있다. 교토시만의 지역성을 살린 각종 교육 프로그램은 항시 진행되며, 지역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교토 예술가 융자제도’ ‘교토 예술가 장려제도’ 등이 운영된다. 교토예술센터는 현재 일본의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건축물미술작품제도를 통해 모인 기금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쓰일 예정이다. 국내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벤치마킹하는 일본의 경우가 그렇듯, 지역문화를 살리는 프로젝트 또한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점은 지난 연재에서 언급한 바 있다. 국내에는 ‘사회적 기업’ 형태의 ‘공공미술 프리즘’이라는 전문 단체가 꾸준히 지역성을 담보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나 보다 많은 인적 자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의 성공사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프로젝트의 겉모습이 아닌 그 밑바탕에 깔린 전문 문화예술 NPO라는 존재 자체와 그들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엄광현, 「세상과 지역을 바꾸는 일본의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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