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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동화나라 초콜릿이야기

2011-12-28


‘Chocolate The Exhibition_ 동화나라 초콜릿이야기’展이 지난 12월 12일부터 2012년 3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V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국 전역을 성공적으로 투어 전시 중인 ‘시카고 필드 뮤지엄(The Field Museum)’의 ‘초콜릿’이라는 소재의 컨텐츠로, 초콜릿이 탄생한 마야, 아스텍, 유럽 등 초콜릿의 역사와 현대의 초콜릿 생산유통 과정 등을 알기 쉽게 교육적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막대사탕, 밀크셰이크, 쿠키, 향긋한 커피, 심지어 곡식과 약품 등 초콜릿에 들어가는 핵심성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초콜릿은 대다수 세계인이 좋아하는 먹을거리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 인기 있는 즐거움의 독특한 기원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기사제공 | 디자인DB(www.designdb.com)


초콜릿은 현대에 만들어진 달콤한 사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실, 초콜릿의 기원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초콜릿을 쓴 맛이 나는 음료로 마셨던 중미의 고대인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람들에게 초콜릿은 단순히 애호 식품이 아니었다. 초콜릿은 그들의 종교 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낼 만큼 밀접한 관계였다.

열대우림에서 ‘초콜릿’의 시발점은 씨앗이 맺히는 독특한 카카오나무로부터 시작한다. 숲이 우거진 열대우림(Rainforest)에 들어가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씨앗 꼬투리가 달린 모형 카카오나무를 보고, 이 대단한 식물의 건강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복잡한 생태계를 인지한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Maya) 문명에서는 거의 1,500년 전에 초콜릿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어떻게 초콜릿 소비의 기원을 찾아 고대 마야까지 거슬러 올라갔는지를 알 수 있다. 마야인은 쓴맛이 나는 씨앗을 왕궁의 의식과 종교 의식에 쓰이는 향긋한 음료로 바꾸었다고 알려진 최초의 민족이다. 카카오 씨앗이 돈으로 쓰일 만큼 귀중했던 16세기 멕시코(Mexico)의 아스텍(Aztec) 문명에서도 왕실 및 종교 행사에서 특별하게 여겨, 사제는 카카오 씨앗을 신에게 공물로 바쳤고 거룩한 의식을 거행했다. 에스파냐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초콜릿을 유럽(Europe)의 상류계급에 소개했고, 대량생산되면서 세계적인 상품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이번 초콜릿전시는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며, 평소 ‘초콜릿’을 생각하는 화려함 속 이면에 내재된 역사와 교육적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소재인 ‘초콜릿’을 통하여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움과 감동을 제공하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달콤한 경험이 되고 있다.

‘초콜릿’의 시발점은 열대우림에서 씨앗이 맺히는 독특한 카카오나무로부터 시작됐다. 카카오는 중앙아메리카의 열대 우림에서 시작되고, 번성하여 동물과 곤충, 다른 유기체와 공생하여 서식지와 먹이를 제공했다. 썩어가는 우림 식물의 부스러기에서 사는 ‘날벌레’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파리는 카카오나무의 꽃에 가루받이를 해서 꼬투리가 자라도록 했다.

고대 마야인은 카카오를 재배하고 그것을 음료로 만들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Maya) 문명에서 거의 1,500년 전의 초콜릿은 달콤한 사탕이기 전에 향긋한 음료였다. 카카오의 비밀을 발견하고, 초콜릿을 최초로 마셨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중남미의 고대 마야인이었다. 마야인은 쓴맛이 나는 씨앗을 왕궁의 의식과 종교 의식에 쓰이는 향긋한 음료로 바꾸었다고 알려진 최초의 민족이다.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문화를 공유, 교역하여, 서기 250년과 900년(고전기) 사이에 마야 국가의 통치자는 높은 지위와 큰 권력을 성취했다.

또한 고대 마야인은 그들의 뒤뜰에서 카카오를 키웠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과 그들의 조상은 열대우림에서 카카오나 무를 가져와서 자신의 집 뒤뜰에서 키웠고 그 씨앗을 수확하고, 발효한 후 볶고, 빻아서 반죽을 만들었다. 이 반죽은 물, 칠레 고추, 옥수수 가루와 다른 성분과 섞으면 거품이 나는 향긋한 초콜릿음료가 됐다. 마야인은 이러한 방법 덕분에 초콜릿음료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성분을 모으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됐다.

카카오 씨앗이 돈으로 쓰일 만큼 귀중했던 16세기 멕시코(Mexico)의 아스텍(Aztec) 문명에서도 왕실 및 종교 행사에서 특별하게 사제는 카카오 씨앗을 신에게 공물로 바쳤고 거룩한 의식을 거행했다. 1400년대 무렵까지 카카오는 중앙아메리카 곳곳에 퍼져서 이용되었다. 카카오는 사치스러운 음료, 화폐,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 통치자에게 바치는 공물로써 아스텍인의 거대한 교역 제국에 핵심적인 물품이었다. 남쪽의 마야 땅에서 아스텍 상인들은 실로 짠 배낭에 귀중한 카카오를 가득 채워 넣은 후, 걸어서 오늘날의 멕시코시티가 들어서 있는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까지 갔다. 또한 초기의 마야인처럼 아스텍인도 설탕은 당시 구할 수 없는 농산물이었기 때문에 향신료를 첨가한 달지 않은 초콜릿음료를 많이 소비했다.

1521년 멕시코를 점령함으로써 유럽은 처음 초콜릿을 만났다. 에스파냐인은 카카오가 지닌 가치를 깨달았고 초콜릿을 마시는 아스텍의 풍습을 관찰했다. 곧바로 에스파냐인은 카카오 씨앗을 배에 실어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비싼 수입품인 초콜릿은 그 다음 300년 동안 유럽의 상류계급을 위한 고급 음료이자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에스파냐인은 카카오를 본국에 가져와 쓴 맛이 나는 초콜릿음료와 계피, 여타 향신료를 함께 첨가했고, 설탕으로 단 맛을 내기 시작했다. 에스파냐인은 그들이 마시는 달콤한 음료를 거의 100년 동안 에스파냐만 아는 비밀로 간직했다. 그 후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유럽의 나머지 나라에 초콜릿이 전파되었고 단맛을 내는 초콜릿은 유럽대륙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증기기관 덕분에 카카오 씨앗을 빻고 다량의 초콜릿을 생산하는 일이 쉬워졌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에는 바람이나 가축에서 동력을 얻는 제분기를 이용해서 카카오 씨앗을 빻았다. 그 전에는 손으로 카카오 씨앗을 빻았다.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돌로 만든 마노와 메타테를 써서 손으로 카카오 씨앗을 빻는 사람이 많다. 19세기 말엽에는 로돌페 린트가 카카오 씨앗에서 짜낸 반죽을 마구 휘저어 부드러운 혼합물을 만드는 기계를 발명했다. 최초의 기계가 소라고둥(conch)을 닮아서 이러한 공정을 콘칭이라고 불린다.

1875년에 초콜릿 제조업자 다니엘 페터는 자신의 사탕조리법에 우유를 첨가하기로 결정했고 연유 조리법을 개발한 앙리 네슬레와 팀을 이루었다. 연유 첨가로 초콜릿 제조업자는 조리법에서 카카오의 양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초콜릿의 생산가와 구매가가 낮아졌고, 사람들은 ‘밀크 초콜릿’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맛을 즐기게 되었다. 1847년까지 초콜릿은 물이나 우유에 녹여 먹어야 하는 번거로운 혼합식품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영국 브리스톨의 프라이 부자회사가 간식으로 먹는 최초의 막대 초콜릿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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