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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호평과 혹평 사이에서 감정(鑑定)된 예술가들

2011-12-13


“우리는 오직 미술에 관해 쓰고, 보고, 말하기를 바란다”라고 미술사가 로버트 로젠블럼(Robert Rosenblum)이 말했다. 예술작품은 누가, 언제, 왜 관심을 가져 주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특히 전문가로 여겨지는 철학가나 비평가의 언급은 수세기 전의 화가에게 생명을 불어넣기도, 잊혔던 예술가를 새롭게 부각하기도 한다. 그들의 평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설령, 그들의 목소리가 일관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처럼 예술계를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그렇기에 해석의 다양함은 환영할 만한 현상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그에 반응하는 것, 그리고 평론을 읽는 것과 또 다시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것. 모든 과정은 우리가 작품을 사물, 오브제 이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에 「퍼블릭아트」는 미술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상가들의 평가를 소개한다. 이들의 해석에 대한 동의 혹은 비판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만의 감상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획, 진행 | 월간 퍼블릭아트 이혜린 기자


파리 살롱은 프랑스 화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는 유일한 무대이자 시장이었다. 살롱이 열릴 당시, 비평가들은 그곳에서 전시된 작품을 소개하거나 평가하며 시간을 보냈고, 예술가에 대한 찬사 혹은 악의적 평가를 던지기도 했다. 온 도시가 살롱에 관한 이야기로 술렁였다.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되었기에 작가들은 그곳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만큼 비평가들의 평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중심에 미술계의 인정과 명예를 갈구했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있다.


인상파의 주요 작가인 마네는 그 당시 살롱에서 6번 낙선했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던 것도 절반에 불과했다. 관람객들은 마네의 작품에 비난을 쏟았다.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은 점잖지 못한 주제라는 이유로, <풀밭 위의 점심> 은 외설적이라는 까닭이었다. 무수히 그려진 비너스의 나체를 훌륭하다고 평했던 서구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여러 문제 때문에 살롱에서 번번하게 낙선했지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한 것이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raille)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등 인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캔들의 원인을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무시한 마네의 실험성’, 그것에 대한 ‘관객들의 당혹감’이라 결론지었다. 가령, 마네의 실험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폴리-베르제르 바> 와 덩그러니 인물 하나만을 그린 <피리부는 소년> 은 입체감이 결여되어 기존의 미술 규범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마네가 ‘자기 식으로’ 그린 그림은 당시 미술계의 혁명을 야기했고, 푸코와 바타유 모두 이런 스캔들에 동의했다. 푸코가 기법상의 문제를, 바타유가 주제적 측면을 강조한 점에서는 두 사람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결론적으로 두 사람 모두 마네를 훌륭한 화가라 평가했다. 푸코는 마네가 인상파를 실현시켜서가 아닌 그것을 넘어 ‘20세기 현대미술을 가능하게 한 화가’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졌고, 바타유는 마네로부터 현대적인 회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를 조명했다.


이외에도 푸코와 바타유는 사실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바타유의 고야론이다. 죽음과 불운, 광기, 잔학 등을 충실히 묘사했던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는 근대 회화의 시조라 불린다.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과거에서 주제를 찾지 않고, 동시대인들의 생활과 환경을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 대해 바타유는 “고야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며, 근대 회화라고 불리는 것을 최초로 알리 사람이다”라고 설명했다. 조형예술보다는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던 푸코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다양한 예술가를 언급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 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하는 「말과 사물」과 이 책을 계기로 쓰인 마그리트의 작품 해석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참고할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미술사를 통틀어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활동할 당시에는 비평가나 관람객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푸코와 바타유만큼 인상파 화가들을 지지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귀스타브 제프루아(Gustave Geffroy)이다. 기자이자 예술 비평가였던 그는 인상주의를 정착시켰던 중요한 인물 중 한명으로, 세잔의 작품을 위대하다고 평가 첫 비평가였다. 잡지 「라 르뷔 앙시클로페딕」에 인정받지 못하던 인상주의를 옹호했고, 세잔 작품의 연구서를 함께 게재하며 “세잔은 내면의 아름다운 낭만을 이미 맛보았고 지금도 체험하는 중이며, 그는 예술계의 악동으로 살아간다”라며 애정을 표했다.

프랑스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는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에 대해 평했다. “그의 젊음은 위대했다. 그는 한 사람의 화가 이상으로 섬세했고, 독특했으며, 언제나 위대했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은 그의 발언은 단숨에 들라크루아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루벤스와 같은 대가의 자리에 올려놓을 만큼 중요하게 작용했다.


동시대에서도 여러 예를 통해 평론가와 예술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에서 “그보다 더 영향력이 있었던 미국 미술평론가는 없다”라고 할 만큼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형식주의를 중요한 위치로 올려둔 장본인이다. 1950년대까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빌렘 데 쿠닝(Willem de Kooning),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 추상표현주의를 지지했던 그는 특히 폴록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폴록의 그림은 ‘어두침침한 평면성’을 창조했고, 회화 표면을 따라 뻗어나간 이 평면성은 가상의 환영적인 공간을 지닌 이젤 회화를 마치 거대한 벽화처럼 변형시켰으며, 이것을 관찰 가능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연구하는 근대 과학과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맞물려 「라이프」 지는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았고,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그의 작품을 위대하다고 평가한 그 사실과 그 작품이 미국과 유럽의 아방가르드 관람자들에게 환영받았다는 것을 보도했다. 미디어의 주목을 끈 폴록은 곧 스타 작가로 부상하며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그의 작업 장면이 사진과 영화로 제작되는 등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린버그가 폴록에 대해서는 언제나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그가 모든 예술가에게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거침없는 감정 표현으로도 유명했던 그린버그는 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에게 “재능이 전혀 없진 않으나, 그는 2류 작가다”라고 평했으며, 팝 아트의 대표작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마저 ‘2류 화가’로 취급하며 불명예를 안겼다. 많은 논쟁을 일으킨 그의 평가에 대해 상당수의 비평가가 불쾌함을 토로했으며, 그린버그에게 ‘충고’를 받았던 한 작가는 역으로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해석의 다양성은 미술계를 풍요롭게 한다. 그린버그와 반대 입장을 폈던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는 일찍부터 그린버그가 혹평했던 리히텐슈타인을 비롯해 로버트 라우센버그(Milton Rauschenberg), 제임스 로젠키스트(James Rosenquist), 앤디 워홀(Andy Warhil),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짐 다인(Jim Dine),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등의 작품을 분석하고 인정한 사람이다. ‘팝아트’란 용어의 명명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렇듯 철학자, 비평가 등의 평가나 되새김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주목하는 것뿐 아니라 잊혔던 예술가들을 조명하는 데 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진주 귀걸이의 소녀」를 통해 우리가 베르메르를 친근하게 느끼듯, 대중은 그들이 제시하는 명쾌한 기준과 다채로운 해석을 갈구한다. 충실한 전달자는 한명의 예술가, 나아가 한 시대의 문화와 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전영백 「세잔의 사과」
테리 바렛 「그림읽는 즐거움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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