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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현실을 대하는 숭고한 이상주의

2011-10-31


예술은 불멸(不滅)하다. 밀란 쿤데라는 신을 제외한 인간의 세계를 가족이나 친구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작은 불멸과 죽고 나서도 모르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큰 불멸로 나뉘었다. 예술가는 후자에 속하리라.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동시에 세상과 이어주는 매개로써의 예술은 역사와 인류의 말초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의문이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매체부터 첨단 재료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진화했다. 하지만 근저에 놓인 본질은 달라지지 않기에 예술가들의 신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 한원석의 작품에도 이러한 믿음이 존재한다. 버림받은 것을 각색해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에 무의식적인 현대인의 사고를 대입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예술을 다루는 방식이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이혜린 기자
사진 | 서지연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삶에 필요한 개념을 익힌다. 때로는 교육에 의한 학습이거나, 때로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리 잡은 주관이 정도(正道)를 지향할 때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세상의 존재물을 ‘사회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단정 짓는 전조가 되기도 한다. 이를 작업의 주요 주제로 내세우는 한원석 역시 현대인의 이분법적 사고 비틀기를 시도한다.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서 인간의 욕망에 의해 쓰임을 다한, 현실의 어두운 부분을 가장 부각하는 상징물. 작가의 시점으로 재해석된 버려진 물건들은 그의 개인적 감정이나 현대인의 보편적 실상을 대입하는 매개체이다. 필요를 다한 물건에서 그 의미 이상을 끄집어냄으로써 미적 기준과 예술적 가치를 재설정하는 작가의 작업에는, 우리가 현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편협한 방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결의가 잠재되어 있다.

그건 작품 안에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초기작부터 이어져 온 특징이다. 현대인에게 느꼈던 고정관념과 선입견, 쓸모를 다한 물건들이 너무나 쉽고 빈번하게 버려지는 사회적 상황 등이 단초가 됐다. 가령, 버려진 담배꽁초를 이용해 꽃이나 여자 등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초기작 <악의 꽃(the flower of evil)> 시리즈와 첨성대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환생(rebirth)>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역량이 발휘된 이 작품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사용한 것으로, 구조적인 접근에 집중했고 빛을 더했다. 폐차장에 버려졌던 약 1,300개의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체계적으로 쌓아올려 하나의 완전한 구조를 만들었지만, 첨성대의 겉모양을 그대로 재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빛을 더하는 작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라는 상징성을 부각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이외에도 다른 감각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작가는 최근작에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미지와 청각의 상관관계를 찾은 <소리 숲(sound forest)> 과 선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형태를 재현한 <형연(resonance)> , 특정 형태를 배제하고 공간에 스피커 1만 6,000개를 설치한 <화해(reconciled)> 를 예로 들 수 있다. 사물의 생김새와 소리가 모여 하나의 입체가 되는 폐 스피커 시리즈는 여러 개의 평면과 곡면에서 우러나는 울림으로 선율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이 결과물은 예술에 대한 신선한 해석과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또한 공간과 자연을 부유하거나 뒤덮는 소리, 그것에 반응하는 관람객, 그럼으로써 느껴지는 작가의 감성이 하나로 이어지며 작품을 구성하는 완벽한 트라이앵글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작업이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형성하는 찰나이다.


한원석의 작품은 ‘쌓다’라는 공통의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작품의 최소 단위는 무용할지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을 때 또 다른 의의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작가에게 쓰레기로 치부되는 버려진 것들에 가치를 더하는 경로이자, 고행을 넘어 깨달음을 구하는 길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의 작품을 ‘리싸이클링 아트(Recycling Art)’나 ‘정크아트(Junk Art)’로 분류하는 것보다 새로운 가치를 재창조한다는 의미에서 ‘리버스 아트(Rebirth Art)’라고 할 수 있다.

무분별하게 내던져지거나 쏟아지는 현실 사회에서 작가야말로 대중에게 끊임없이 이상을 확인시키고 상기시켜줄 사람이라고 말하는 한원석. 예술가의 숙명을 고민하는 그의 작품들은 자칫 무겁고 불편할 수 있는 현실의 무게들을 짊어진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쓰레기를 이용해 고결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업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해 본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그런 것이야말로 진심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예술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사물의 가치는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누구나 인지 가능한 세계이다. 대중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사명을 지닌 그의 작업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예술의 불멸, 그로 인한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한원석은 1971년 생으로 영국 Chelsea Collage of Art & Design과, 네덜란드 Dutch Environmental Architecture Reseach Program과 영국 Saints Martin Reserch Student, 중국 Tsinghwa University 연구원, 일본 동경대 건축과를 거쳤다. 작가는 'Borrowed Space-Time Bound'(2001, 영국 런던 Architecture Foundation), 'Dreaming Project'(2003, 금호 미술관), 'The Flower of Devil'(2003, 아트사이드 갤러리), 'Hyeong Yeon'(2008, 중국 베이징 798 Dashazi), 'Sound Forest'(2009, 자넷 오 갤러리), 'The Art of Progress'(2010, 올림픽 공원), 'Ceramic-Art & Technology'(2010, AT 센터), 'Korea Tomorrow'(2010, SETEC), '화해(Reconciled)'(2010, 갤러리 압생트)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그의 작품은 하나은행과 부산비엔날레, 국립과학센터, LIG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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