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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취향 - 좋거나, 나쁘거나, 정말 비싸거나

2011-10-19


19세기 유럽 미술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시민에게 예술을 보는 감각과 취향을 고양하는 데 있었다. 당시 회화만 보더라도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이상적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었으며, 미와 추함의 경계를 짓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근대에 와서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과 같은 아방가르디스트들의 출현과 더불어 예술적 이상은 수십 번 전복되었지만, 예술의 보편적 평가 기준을 설명하기란 100년 전이 현재보다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글 | 월간 퍼블릭아트 김금화 독일통신원


독일 남부 도시 바덴바덴 시립 미술관의 관장으로 새로 선임된 요한 홀터(Johan Holter)는 자신의 첫 번째 전시로 20세기 현대 미술관이 안고 있는 과제, 즉 ‘현대 미술관이 예술을 평가하는 성역으로서 그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현대 미술은 관객들에게 미의 이상향을 전달할 수 있는가’, ‘예술과 취향은 별개의 문제인가’란 질문에서 시작된 전시, ‘Geschmack - der gute, der schlechte und der wirklich teure’. 이번 전시는 욘 복(John Bock),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안젤름 라일(Anselm Reyle), 마틴 파(Martin Parr) 등 13명의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들과 18세기 풍경화들을 나란히 선보인다.


욘 복은 2009년 자신이 직접 고안한 53점의 의상과 이것을 입은 모델들의 쇼 현장을 비디오화한 작품을 나란히 전시한다. 기존 의상의 개념을 뒤집어 놓은 욘 복의 작품은 과거 의상 산업에서 구축된 미의 기준에 대한 도전적 발언을 던진다. 다양한 나라를 탐방하며 글로벌 시장의 현주소를 화면에 담은 마르틴 파는 <럭셔리> 라는 사진 시리즈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경계를 막론하고 취향의 좋고 나쁨의 경계가 소비문화 앞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전 세계 부유층들이 밀집된 곳을 방문해 부의 상징적 기호품들을 소비하고 있는 모습을 순간 포착했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 주 전통 의상을 입고 뮌헨 옥토버페스트에서 술을 마시는 중년 여성, 기발하고 특이한 형태의 모자를 쓰고 경마장을 방문하는 파리 상류층 여성,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선정적 누드 작품을 관람하는 서울 아트 페어의 모습, 모피 코트를 입고 시가를 즐기고 있는 모스크바의 부유층 파티 등을 담고 있다.


유럽 계몽주의 시대 이래 예술은 관람객의 도덕적 인성을 함양하고, 미학적 감각을 고양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번 전시는 1800년대 이후 독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낭만주의적 지상 낙원의 세계를 그린 풍경화를 1960년대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Andy Warhol) , 리처드 해밀턴과 같은 팝아트 작가들과 대조적으로 선보이며 예술의 역할과 미의 기준이 지난 200년 동안 얼마나 변해 왔는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예술사에서 키치가 예술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1970년대 이후 두드러졌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어(Pierre Bourdier)는 당시 키치 문화적 현상을 아류로 여기던 중상류층들에 대항해 키치적 문화를 삶의 스타일의 하나로 인정하고 옹호하고 나섰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통해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을 전면적으로 해체한 것을 기점으로 1960년대 이후 앤디 워홀, 리처드 해밀톤과 같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들은 이 대중 사회의 재생 가능한 키치적 특징을 예술적 원칙으로 변용하였다. 1990년대 이후 제프 쿤스(Jeff Koons)나 데미안 허스트(Damien Steven Hirst)는 그들 작품에 두드러진 키치적 선정성을 아이러니로 전복한 데 성공했으며, 이런 자극적인 예술언어가 미술 시장의 가격을 폭등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에 대한 암묵의 비판일까, 비닐 포장지를 이용한 평면 및 입체 작업을 통해 현재 최고의 작품가를 기록하고 있는 안젤름 라일은 2010년 작, ‘Weidenglueck’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초원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이 평범한 말의 형상은 유아용 퍼즐 맞추기와 같다. 퍼즐 한 조각마다 숫자가 매겨져 있으며, 퍼즐은 그 매겨진 숫자에 따라 다양한 부류의 형광색과 금색으로 채워져 있다. 러시아 듀오 작가 아리스타르크 체르니세프와 알렉시 슬긴(Aristarkh Chernyshev & Alexei Shulgin)은 러시아 다다이스트의 선구자 블라미르 타틀린의 타워모델(Monument to the third international)의 형태를 본떠 iPad 세대(3G International)의 현실을 풍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신임 관장 요한 홀터는 바덴바덴 미술관의 새로운 시대를 선포한다. 미술관이 미학적 판단의 유일한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오히려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공공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장이라는 소박하지만 용기 있는 선언문 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 전시는 좋은 예술, 나쁜 예술 또는 비싼 예술의 정체를 밝히기보다는 예술에서 찾을 수 있는 유치함, 그 키치적 문화가 예술사적 발전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키치 문화로 포장된 작품들에 내포된 풍자와 아이러니를 통해 미술 시장과 미술관의 상관관계와 그 현실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



글쓴이 김금화는 한국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베를린의 ‘Hochschule fur Technik und Wirtschaft Berlin’에서 박물관학을 수료한 후, 현재 베를린 공대 ‘Technischen Universitat Berlin’에서 미술사 ‘Master of Arts’ 과정 중에 있으며, 베를린 프러시안 문화재단(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 Berlin)에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Haus der Kulturen der Welt, Berlin’에서 개최된 ‘Meridian I Urban’ 신진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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