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9
맨 처음 그릇을 구웠던 인류가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그릇의 기능성이었을 테다. 본래 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성 상 이러한 기능에 미적인 감각을 더하는 것 또한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이러한 수공이 발전한 형태인 도예는 오랜 시간 동안 생활용기로써의 기능성보다 독창적인 형태의 예술성에 더 집중해왔다. 오는 9월 갤러리 라메르에서 전시를 여는 스페인 도예의 거장 조안 자세르는 이러한 기능과 예술성의 사이에서 탄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 라메르
갤러리 라메르의 10주년 기념 전시로 진행되는 ‘Joan Llacer 展’은 ‘Rotos’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는 ‘깨뜨리고 망가뜨린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로써 온전한 형태를 허물어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그는 전통적인 라꾸 작업에서부터 현대 도예작품, 조각의 범주까지 아우르는 조형물과 설치작업까지 다방면의 작업들을 진행하는 작가이다. 완벽은 없으며 오로지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이 예술가의 길이라고 말하는 조안 자세르는 스페인 도예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작가라 할 수 있을 것.
이러한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작품은 투박함이 살아있는 항아리와 트로피를 조형화한 작품들이다. 하론 이라 부르는 스페인 항아리 작품에서 작가는 세상에 절대적인 완벽함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한 작품을 일부러 깨뜨려 그 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투명한 아크릴관 위에 올려진 빨강 접시, 파란 접시들은 멀리서 보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초벌구이를 하고 산화구리처리를 한 후 저온으로 재벌구이를 하고 염료를 칠한 작품이다. 가마의 온도를 1300도까지 올려서 흙에 달라붙은 염료가 용암이 흐르듯이 흘러내려가 접시의 오목한 부분으로 고여 자연스럽게 색상의 농담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특유의 신비스러운 색채를 띄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도예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작년에 한 차례 한국의 애호가들에게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이번 전시는 균열을 주제로 한 로토스 이외에도 포르셀로나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후리따라는 유리결정체가 불에 녹아 하나하나 터지며 만들어내는 무늬와 색상의 어우러짐은 특유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조안 라세르의 이번 전시는 9월 7일부터 9월 20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