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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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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5


우리는 우리의 눈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혹은 우리의 눈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어린 시절, 이상스레 접힌 이불 호청이 귀신의 모습으로 보여 오금 저렸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시각이 불러일으키는 착각은 의외로 흔하다. 하나의 현상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지기 마련이며 이는 바로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뉴욕과 시카고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한경우의 작품은 바로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대안공간 루프

한경우의 작품들은 언뜻 보기엔 사람들에게 너무 익숙한 오브제들이다. 몬드리안의 추상화, 화면조정시간에 나오는 컬러 바, 성조기 등이 바로 그것. 하지만 그 익숙한 오브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정리되지 않은 산만한 물건들이다. 미처 정리 되지 않은 방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설치작업은 일상적인 사물들이 질서 없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방 한 켠에 위치한 영상은 이 풍경과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의 질서정연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관람자들은 그 익숙한 오브제 안에 하나로 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안공간 루프의 신진작가 전시로 진행되는 한경우의 개인전 ‘Red Cabinet’은 이런 독특한 설치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의 작업 시리즈들은 크게 조소(Sculpture), 설치(Installation), 그리고 단/다채널 영상(Single/Multichannel) 작업으로 나뉘어진다.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사진기 또는 비디오 카메라의 시점은 사람의 한정된 시야를 반영하기 위한 설정이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바라본 한경우의 설치물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실제의 모습과는 다른 왜곡된 이미지나 각자의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둔 익숙한 이미지로 인식하게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가지 시리즈를 모두 아우르면서 특히 CCTV를 이용한 설치 작품 Star Pattern Shirt, Tableau with Objects, 그리고 Red Cabinet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감시 카메라는 관람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하는 매체로 이 실시간의 참여자는 작가가 의도한 설정에 의해 현 상황을 재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TV나 인터넷, SNS의 보급으로 인한 다양한 소통의 창구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듯 즉각적 반응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진실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일방적 의사소통에 익숙해져 가는 세대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주어진 정보와 이미지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곧 자신을 둘러싼 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작가 한경우는 그의 개인전 ‘Red Cabinet’을 통해 이런 현실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한다. 현상을, 사람을, 사건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말인가. 선행된 지식이나 경험은 이른바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오류로 변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라 할 수 있을 것. 한경우는 그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 유희가 아닌 시각적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일종의 트릭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작품을 통해 우리를 속이는 것은 작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8월 11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9월 9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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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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