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1
근대에서 현대로의 진입기이던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 북미의 작가들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판화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던 것은 입체파의 창안자 파블로 피카소. 그는 일찍이 전문판화가와 출판업자의 합작이라는 끈끈한 동업을 통해 2,000장이 넘는 판화를 남김으로써 판화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와 같은 시기에 판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한 작가로는 세잔과 보나르, 로트렉, 르누아르, 샤갈, 뭉크 등을 들 수 있을 것. 이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지금,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롯데갤러리
보통 판화는 복수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 가치가 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량으로 작품을 찍어내는 실크스크린의 득세 때문에 판화기술의 다양성이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 유화나 조각보다 가치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들은 끊임없이 판화에 도전했을까? 당시 작가들에게 흔치 않았던 협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빛에 민감한 인상주의와 색감이 잘 살아나 있는 일본의 판화, 그리고 화려한 아르누보의 영향 하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던 판화는 보다 완벽한 작품의 탄생을 위해 전문적인 인쇄업체와 출판업자와 합작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기존 미술가가 홀로 작업한 것보다 향상된 질과 목적에 가까운 작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이러한 당대 판화제작의 합작은 판화의 대유행의 불씨를 지피는데 일조했다. 판화의 제작기법 발달에 따른 표현력의 향상으로 어떤 주제이든 작품으로 소화하는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기 때문. 이는 또한 작품의 대중화와 출판물의 보급을 불러오기에 이른다.
롯데갤러리 본점의 이전을 알리는 첫 전시로 시작되는 이번 ‘열정을 만나다_ 스페인 거장 판화전’은 국내에 잘 알려진 피카소와 달리, 미로를 비롯해 세계적인 거장 칠리다와, 타피에스까지 스페인이 낳았지만 20세기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현대미술 거장 5인의 판화작품 6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유명 작가의 판화작품만을 전문으로 콜렉션하는 ‘갤러리 아르떼 10’의 관장이자 콜렉터, 그리고 심장학 박사인 페르난도 디에즈 관장의 소장품들. 오랜 세월 판화의 진수만을 모은 그의 콜렉션은 콜렉터의 기준과 심미안, 그리고 꾸준함이 콜렉션을 구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볼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적 경향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가들이 사용한 리도그라피, 목판화, 에칭, 에쿼틴트나 드라이포인트 같이 다양한 기법의 판화를 감상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피카소와 칠리다, 달리의 판화기법으로 만든 판화책과 달리의 가방도 선보여 그 시대의 시대상과 출판기법, 그리고 작가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고. 이 전시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