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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미처 죽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2011-03-22


죄책감은 어떤 경로로 형성되는가.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자각, 그 소유의 격차가 생각보다 큰 경우라면 죄책감은 스멀스멀 곰팡이처럼 피어 오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평화 혹은 물질, 더불어 움켜쥔 것을 놓지 못할 때 죄책감은 더욱 그 날을 세운다. 회화작가 이보람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그녀의 작품은 윤곽만 남아 박제와 같은 이미지와 시뻘건 핏빛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미감을 형성해낸다. 윤곽만 남아 탈색된 인물은 애써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의미하며 얼룩진 붉은색은 미처 거두지 못한 시선에 대한 은유이다. 그녀의 작품은 바로 지금, 이렇듯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어정쩡한 현실감각과 맞닿아있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Jungle : 작품이 독특하다. 눈에 확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런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보도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대 4학년이던 2003년도부터이다. 당시 이라크 전쟁 이후 여러 게시판에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주로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사진들이었다. 처음에는 궁금해서 클릭했는데 그곳에 올라온 엄청난 사진을 보다 보니까 ‘이게 뭐 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순수한 의도겠지만 그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이크 처리 없이 올려진 사진에는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이 아파하는 순간, 오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런 모습도 한 개인의 사적인 순간일 수도 있는데…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희생자들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품의 소재도 이라크 전쟁을 넘어서 테러나 전쟁의 희생자들로 폭을 넓히게 되었고.

Jungle : 그림을 보면 이미지 자체는 부드럽고 희미한 느낌인데 핏자국 같은 분홍색과 빨간색이 겹쳐지면서 그림 자체가 강렬해지더라.

보도사진에서 실제랑 제일 비슷하게 남기는 부분은 핏자국이다. 그 외에는 주로 사진의 리얼리티를 없애는 작업을 한다. 떠도는 이미지처럼 배경이랑 색을 빼버리고 껍질만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희생자들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는 다 이유가 다를 것이다. 그들의 인종과 국가, 종교가 다르듯이. 껍데기로 남은 형태로 인해 그들이 희생당한 이유가 사라지는 거다. 구체적인 의미에서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희생자라는 개념을 만들고 싶었다. 마리아 상을 보면 박제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 성상 같은 느낌을 만들기 위해 아이보리 색을 썼다.

Jungle : 희생자들을 물상화시키고 타자화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에서도 그런 식으로밖에 소비되지 않으니까. 이미지는 껍질에 불과한 거라고 전제했다. 현실이나 정보를 전달해줄 수 없고, 이렇게 감정적으로만 소비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Jungle : 정치적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평균적인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자신이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전혀 아니다. 아니니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정치적으로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사진에서 현실성을 빼는 작업은 할 수 없었을 거다.

Jungle : 작가 본인이 가장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는 관심사는 무엇인가?

좀 크게 보자면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어떤 이미지를 봤을 때 그걸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소비하고 있느냐가 궁금하다. 단순히 ‘본다’ 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그 ‘본다’가 의미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다르게 말하면 이미지의 힘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이미지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Jungle : 전시 팜플렛에서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그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상화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인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이미지를 내가 작품에 이용하는 거니까, 거기서 나오는 죄책감인 것 같다.

Jungle : 요즈음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나?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항상 걱정하는 것이 있다. 작업을 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이다. 성격 상 걱정을 한번 하기 시작하면 마구마구 발전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너무 안 좋은 일이 많지 않나? 구제역 사태나 사대강과 관련된 문제처럼 민감한 뉴스는 일부러 보지 않는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감정상태가 좀 안 좋아지는 편이어서 뉴스 볼 때에도 일부러 제목만 보고 넘기는 경우들이 많다.

Jungle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상을 철저하게 타자화시키는 이유는 그 대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는. 경제적인 문제들 역시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 작가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얘기가 나온다.

Jungle : 예술 하는 사람들은 돈에 초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돈이 좋다면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예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Jungle :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지?

계획하고 있는 것은 많이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과 비슷한 주제가 될 것이다. 성화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라던가 피에타나 애도와 같은 소재를 이용한 작품들. 지금 작품에서처럼 피는 좀 없어지더라도, 고통 받고 있는 표정을 살린 회화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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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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