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14
카페에서 먹지 않고 가지고 가는 것을 테이크아웃이라고 한다.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것은 커피뿐이 아니다. 패밀리레스토랑, 한식당, 중국집 등 대부분의 음식들이 테이크아웃 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드로잉이 테이크아웃 된다. 진짜 드로잉을 하나씩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드로잉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의 경험을, 눈과 마음에 새겨서.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 | 테이크아웃드로잉 제공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하 tod)의 ‘주’는 드로잉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드로잉을 주제로 작품을 소개하고 현대미술작가들이 제안하는 드로잉을 지지하며 드로잉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곳이다. 성북동과 동숭동, 한남동 총 세 곳에 tod이 있다. 겉모습은 일반 카페와 다르지 않다. 차와 빵을 팔고 테이블에 앉아 마시고 먹을 수 있다. 그 부분을 제외한 모든 점이 일반 카페와 다른 점이다.
음료 주문을 위한 메뉴는 Takeout Drawing Newspaper가 대신한다. tod에서 하고 있는 전시와 전시에 참여하는 참여작가를 소개하고 tod가 위치한 주변에서 즐길만한 문화와 예술계의 소문들을 담아놓은 신문 4면과 5면에 메뉴가 소개되어 있다. 카페를 나설 때 들고 나와 며칠이고 내내 신문을 뒤적이며 ‘드로잉’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신문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카페 한쪽에는 A' Kiosk가 있다. 신문과 음료 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작가 및 작품과 관련 있는 책들을 모아 놓은 ‘서재’이다. 작가가 작업을 하며 읽었던 책들은 작가와의 생각을 교감하게 해준다. 책뿐 아니라 음반이나 영화 목록도 소개되어 있다. 음반은 카페의 배경음악으로 재생된다. 작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조금이나마 짐작케 해주는 친절한 서재이다. A' Kiosk에는 네 가지의 Koisk가 있다. 테이크아웃 드로잉 쇼에 참여한 작가들의 키오스크 리스트로 이루어진 Artist Kiosk, 카페가 위치한 지역 주변에 문화예술생태계를 제안하는 Around Kiosk,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 문화예술인들의 서재이자 시큼한 키오스크인 Acid Kiosk, tod 드로어들의 서재인 Avec Kiosk가 그것이다.
여기까지는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tod의 가장 큰 핵심은 지금부터다. 무엇보다 tod의 핵심은 ‘드로잉’이다.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드로잉 쇼가 그것. tod은 지금까지 24회의 드로잉 쇼를 마쳤고 현재 25번째 드로잉 쇼를 선보이고 있다. 그 드로잉 쇼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레지던시에서 시작된다.
카페레지던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많이 들었지만 카페레지던시는 생소하다. 카페에서 레지던시가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맞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레지던시는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레지던시다. 작가는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카페에 ‘입주’하게 된다. 카페 한쪽에 작가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카페가 문을 여는 시간 동안 작가는 그곳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공간이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완전한 벽으로 구분되지 않아 카페를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작가와 작업과정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을 방해요소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러한 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카페레지던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곳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반대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있으니까.
레지던시 프로그램 시작 후 한 달이 지나면 그간 작업했던 작품을 카페에 설치하고 다른 한 달을 보내게 된다.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인 후 관객의 반응을 살필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작업을 해 나갈 수도 있다. 카페를 찾은 손님들은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는 그러한 관객을 볼 수 있고. 관객과 작가는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같은 것을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게 된다.
지금 한남동 tod에서는 전보경 작가의 ‘이웃의 미학’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는 1월 10일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도착했다. 익숙한 것 하나 없는 이 공간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한 작가의 이야기가 바로 ‘이웃의 미학’이다.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디지털미디어를 거쳐 뉴폼(New Form)으로 전향한 그는 필렉스 곤잘레스 토레스를 알게 되면서 신문읽기를 의무활동으로 하는 작가이다. 자본주의와 관계예술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위키하우(wikihow.com)의 도움으로 어떻게 이웃을 만들 수 있는지 방법을 찾고 이웃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노트로 정리하고 작가 자신이 발견한 이웃을 텍스트로 그려 그들이 있는 공간에 끼워넣기 하는 작업이다. 한 달의 시간동안 작업한 내용들이 2월 11일부터 전시의 형태로 공개됐다. 두 층으로 이루어진 한남동 카페에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1층에는 이웃과 삶, 자본주의 사회와 총 등 작가가 뉴스와 일상생활에서 노트한 글을 토대로 제작한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2층에는 작가가 레지던시 기간동안 진행했던 한남동프로젝트에 대한 내용들이 소개돼 있다. 작가가 만난 이웃들과 관련된 오브제와 그들의 애창곡이 담겨있는 상자 위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연상한 문장들이 거울로 쓰여 있다. 이 상자는 누가 작가의 이웃인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전시와 작가의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웃을 맺고 싶은 관객들은 tod에 상주하는 작가에게 참가신청을 할 수 있으며 전시는 3월 10일까지이다.
한남동 tod A'Kiosk에는 전보경 작가의 서재가 꾸며져 있다. 이웃의 미학을 주제로 한 책과 영화들은 소유냐 존재냐, 시간과 타자, 좀머 씨 이야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이다. 작가가 읽고 영향을 받았던 공산당선언, 디지로그, 모더니즘은 실패했는가 등의 책들을 통해서도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카페에서는 dream, 냉정과 열정사이 OST, Joni Mitchell 등의 음악이 흐른다. 이 노래들은 작가의 추천음반이다. tod은 작가에게 자신의 스튜디오와 같은 익숙함을 주기 위해 작가들의 추천음반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했다. 작가들을 위한 배려는 ‘배려’ 이상의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음악을 통해 작가는 낯선 공간을 자신의 공간으로 자기화 할 수 있고, 관객은 작가와의 교집합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공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 음악에 익숙한 작가와 함께 서로의 익숙함을 나누게 된다.
카페에 설치된 작품을 보고, 작가와 한 공간 안에서 교감하며 드로잉을 체화한다. 눈과 마음으로 전시를 보고 느끼며, 때론 참여하며, 그렇게 매번 새로운 드로잉을 가지고 가는 것이 tod의 드로잉이 테이크아웃되는 방식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음료를 살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는 쿠폰카드가 tod에도 있다. 열 개의 칸으로 나누어진 쿠폰이 아니라 명함 크기의 작은 흰 종이 중앙에 분홍색으로 나무 가지가 그려져 있다.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나뭇잎과 꽃 모양의 도장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직접 가지에 찍는다. 한 그루의 분홍 나무가 완성될 때 얻는 것은 무료 음료 한잔만이 아니라 내가 그린 드로잉 한 장이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미완성된 무료 음료 한 장을 자꾸 만지작거린다.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하고 나서 오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처럼 테이크아웃해온 드로잉을 오래 즐길 수 있어 좋다.
www.takeoutdraw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