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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실과 허구의 기묘한 동거

2010-11-23


누가 말했던가.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자석의 양 극처럼 멀리 떨어진 것 같아 보이는 이 둘은 사실은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이다. 심지어 서로 이어져 있기도 하다. 빛만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는 빛의 존재를 알 수 없고, 어둠만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는 어둠을 지각할 수 없는 것처럼 사실과 허구를 따로 생각한다면 현실의 윤곽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을 예술에 도입한 것이 바로 팩션(faction)이다.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팩션(faction)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창작자의 상상력을 덧입혀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가리킨다. 오는 11월 24일부터 12월 22일까지 문래예술창작촌에 위치한 비영리공간 솜씨에서 열리는 전에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 작가 3인의 작품이 공개된다. 참여 작가들은 이미지에 텍스트를 더함으로써 사실과 허구, 그 경계의 모호함을 더욱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신지선이 보여주는 아파트 투어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세인트 진 포트 졸리(saint jean port joli) 관광가이드> 는 캐나다 퀘백에 위치한 세이트 진 포트 졸리라는 지역에 있는 소소한 사물에 상상력을 동원해 전혀 다른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한 관광가이드 책자이다. 이미지는 현실로, 텍스트는 가상의 이야기로 꾸민 이 작품은 이미지는 믿을 수 없지만 텍스트는 사실을 전달하므로 신뢰할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유머러스하게 전복시킨다.


작가 예기가 파리에서 거주한 3년간 이웃 건물을 촬영한 사진 작품, <르 페브르가의 극장, 3년> 연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와 같다. 건너편 건물의 테라스 공간을 ‘르 페브르가의 극장’으로 명명하여 기록한 사진 자체는 객관적인 현실을 나타내지만 작가가 덧붙인 텍스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허구를 사실로 착각하게 만든다.


한수옥은 사실과 허구의 관계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림책 형식을 빌린 <아무도 모른다> 는 분홍색 돌고래와 이 돌고래로 가장한 기계 돌고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오히려 우리가 경험한 것이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관람자에게 던진다.

우리는 흔히 사실과 허구는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들은 그 경계를 수월하게 넘나들면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그만큼 모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사실적인 베이스에 허구를 덧칠한 작품들로 사실 같은 허구와 허구 같은 사실이 혼재하는 우리의 현실을 예술을 통해 재발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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