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18
서울과 로테르담, 각기 다른 두 도시에서 작업하는 정소영과 산드로 세톨라(Sandro Setola)가 하나의 전시 공간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날의 건축과 도시 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의 공간 인식과 의식을 재고해 보기 위함이다. 전시 공간을 하나의 ‘버려진 창고’로 가정한 그들이 발견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자료제공 │ 갤러리팩토리
먼저 정소영과 산드로 세톨라, 두 작가가 의미를 담은 ‘버려진 창고’는 현실 세계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물들의 저장고를 뜻한다. 이는 물질의 의미가 중요시되는 현실 세계로부터 대피하고 버려진 하나의 사유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전시 공간인 갤러리 팩토리를 하나의 ‘버려진 창고’로 가정하는 일종의 시나리오를 구성하였다. 이 ‘버려진 창고’를 채우고 있는 작품들은 뒤바뀐 시간의 방향에 따라 변형된 사물과 파편, 그리고 그림들로 이루어진다. 속한 시대나 장소는 예측할 수 없으나 친근한 사물들은 물질성이 뒤바뀌고 화석화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알 수 없는 공간의 목탄화 그림은 미지의 세계를 드러내는 도면과도 같이, 일종의 기록처럼 남겨진다.
2007년, 룩셈부르크에서 기획전시를 통해 만난 두 작가는 도시와 자연 공간 속에서 생성하는 변이 현상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각각 조각,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독자적인 방법으로 이를 표현해 온 것. 산드로 세톨라의 대형 목탄 드로잉 연작은 가상의 공간이나 건축물을 마치 실제 건축의 시뮬레이션 뷰처럼 외부, 실내, 측면, 단면 등의 다양한 시점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변이, 소멸, 해체 등 자연 현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들은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상 과학적인 색채마저 띈다. 작가는 개인의 감성 공간을 현대 건축이 빚어내는 인공과 자연의 마찰 및 긴장 관계를 통해 표현한다. 조각 설치 작업을 하는 정소영 작가는 엔트로피적 세계관을 따라 해체되는 물상과 공간을 나타낸다. 자연과 도시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긴장감과 변이의 과정을 포착,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현대 도시 순환계를 작품으로 연장시킨다. 미완성과 해체의 중간 점에 위치한 의도적인 조형물을 매개로 삼아, 모순적인 공간이 가지는 긴장감을 가시화 하는 것이다.
현대 건축과 공간이 빚어내는 건조하고 일상적인 풍경. 이를 재해석하고 작가 개인의 시선이 개입되며 창조되는 새로운 시공간인 ‘창고’. 결국 ‘창고’는 다른 국적과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두 작가가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자 충돌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두 명의 작가가 여기서 발견한 것들은 전시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