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3
2006년 인사동은 ‘중국인 거리’였다. 장 샤오강, 위에민 쥔, 팡리 쥔 등 지금은 귀에 익숙한 중국 작가들이 사실은 그 즈음 종로에서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시간이 흘러 오늘의 인사동 거리는 ‘스페인광장’이다. 쎄르지오 모라(Sergio Mora), 알베르또 베르똘린(Albert Bertolin), 아르날 바예스터(Arnal Ballester)―다소 낯선 이름의 스페인 작가들을 ‘ART DOME’ 한국-스페인 교류전에서 만날 수 있다. 스페인의 현대미술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이후로 스페인 미술의 궤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서둘러서 봐야 할 전시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인사동 갤러리쌈지에서는 10월18일까지 열리는 ‘ART DOME’ 한국-스페인 교류전은 양국의 작가 6명이 모인 전시다. 스페인의 열정과 이국적인 문화가 섞인 ‘ART DOME’ 전은 2010년 스페인 한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 예술이 온 세상을 지붕처럼 덮어 아우를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기획되었다.
일러스트와 파인아트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는 ‘ART DOME’전은 스페인대사관에서 후원하는 전시로, 작가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스페인 참여작가로는 쎄르지오 모라, 알베르또 베르똘린 그리고 아르날 바예스터가 있다. 이 세 작가는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각 도시의 환경에 맞춰 자신들만의 예술적 감성을 모던하고 감각적으로 잘 소화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스페인 최고의 상업 일러스트 작가로써 자리 매김하고 있는 아르날(Arnal Ballester)의 간결하고도 절제된 선과 색에서는 스페인 풍의 붉은 정열을 느낄 수 있다.
근래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세르지오는 스페인의 새 경향인 일러스트와 회화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반어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보여준다. 또한 알베르또는 베를린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면서 얻은 폭넓은 경험을 무궁무진한 에너지와 색으로 표현한다. 스페인 내에서 그들의 그래픽은 이미 새로운 감성과 경향을 창조해 내었으며 다양한 매체와 전시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스페인 문화가 붐을 이루고 있다. 흔히 보여지는 광고에서도 스페인 단어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지면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스페인 건축과 디자인 동향 등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에게 스페인의 문화는 사실상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열정적이고 순수한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우리 문화와 어딘가 닮아있음을 느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청년처럼 젊고 신선한 스페인 문화와 예술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국 참여작가로는 성태진, 찰스장, 홍주희가 있다. 이들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한창 주목 받고 있는 젊고 패기 있는 작가들로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해 온 한국의 문화아이콘들을 소재로 하여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의 작업은 회화뿐 아니라 대중을 위한 판화, 티셔츠, 가방 등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성태진의 작업은 우리들의 어릴 적 영웅인 태권브이를 소시민의 모습으로 재해석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꿈과 희망을 이 사회의 문화적 코드와 함께 표현하고 있다. 판화의 원판은 판화작품을 찍기 위해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성태진은 목판에 부조로 그림과 한글을 새겨 그 위에 화려한 색을 올림으로써 원판 자체가 그대로 작품이 되고 있다.
찰스장은 대중적인 문화아이콘인 다양한 캐릭터들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이입하고, 그것을 그 특유의 강렬한 드로잉과 색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작품 속에 넣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홍주희는 한국의 산수자연과 풍경들을 낙원의 이미지로 나타내어 감상자들로 하여금 사랑과 행복을 꿈꾸게끔 하며 자연과 세계와의 일체적인 체험을 표현하고 있다. 개천절과 한글날로 인해 더욱 의미 있는 10월, 한글과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펼쳐내는 이들의 작품들로 인해 본 전시는 더욱 빛나는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 세 명의 한국 작가들은 미술이 어느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파인 아트와 일러스트를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스페인작가들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피부색과 국적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가 아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들 일상의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표정, 일상의 단편들, 삶의 희로애락, 그리고 이들의 열정과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인간(human), 문화(culture), 세계(world)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한 혁신적인 소재와 풍부한 아이디어로 관객과 소통하는 새로운 교감의 장을 여는 전시이기도 하다. 개성 넘치는 6명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힘찬 이미지들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고 열정적이어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ART DOME’ 전의 시작이 온 세상을 덮는 지붕인 것처럼, 전시를 통해 예술이 사람과 문화를 넘어 또 다른 세계로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