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9
소마미술관에서 ‘드로잉조각 : 공중누각_空中樓閣’ 전을 열었다. 강영민 등 총 6명의 설치작가들의 작품전으로 조각의 전통적 개념인 양감을 결여 시킨 조각, 가급적 실체성이 떨어지고 물질성을 느끼지 않는 조각 등이 마치 공중에 붕 떠있는 누각 마냥 자리했다.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재해석하는 한편, 그 범주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회로 현대미술의 좌표축이 어디에 찍혀있는가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에디터 | 이안나(anlee@jungle.co.kr)
자료제공 | 소마미술관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으로는 양감과 물성 그리고 공간감을 들 수 있으며, 이 중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으로는 단연 양감을 들 수 있다. 입체적인 조각은 시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양(量)의 감각이며, 부피와 중량의 느낌인데, 물리적인 양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모더니즘 시기에 양감으로서의 조각작품은 다원주의 양상을 거치면서 유연한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소위 탈조각의 경향성이다. 이번에 소마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탈의 논리’에 입각한 작품들이다.
미디어시스템이 문제를 일으켜 이미지가 파열되는 순간에 주목한 강영민, 가녀린 철사를 엮어 거대한 고치를 만드는 김세일, 숯을 매달아 가공의 구조물을 재구성한 박선기, 섬유를 소재로 한 사각패턴의 변주를 통해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분위기를 만든 장연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돌과 석고 덩어리를 통해 중력을 실험하는 전강옥, 머리카락과 스타킹 등 신축성 있는 소재를 통해 장력을 실험하는 함연주 등 조형을 대하는 작가들의 태도는 놀랍도록 유연하다. 말하자면 마치 공간(허공)에다 드로잉을 한 듯한 인상과 함께, 공간과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고 상호 침투되는 조각, 그저 공간에 설치(세팅)되는 조각이 아니라 공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조각,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조각, 공간과 함께 형성되는 조각이라는 것이다.
강영민
사람들의 환경을 둘러싼 이미지와 사물들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작가 강영민의 작업은 허상의 표면을 변질시키고 재구성함으로써 '본질 혹은 진실에 접근’ 하기보다, 그 허상이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추적하여 사물과 이미지가 변화되는 왜곡이나 이면에 주목했다. 미디어가 오작동을 일으켜 이미지가 ‘깨지는’ 현상은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강영민은 환경적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각각의 현대적 인식을 토대로 나름의 이미지 환경을 만드는 과정을 살피면서, 시 • 지각적인 왜곡의 이면을 바라봤다.
함연주
스타킹, 라텍스, 용수철, 머리카락 등의 재료를 통해 작가 함연주는 장력과 탄성을 실험했다. 재료가 지닌 본연의 힘으로 변형시킨 일렬의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일종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상상력을 동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안에 내재된 강한 힘, 공간 속에 위치하고 있지만 존재감이 희미한 용수철, 빛을 받아 섬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킹 등 작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가시화했다.
장연순
작가 장연순에게 작업은 일종의 '명상'과 같다.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마음의 움직임을 조형언어로 탈바꿈 시키는 작업이, 작가에게는 명상이자 예술이다. 작품은 하나의 커다란 망구조다. 아바카 섬유가 씨실과 날실로서 성글게 교차하며서 짜인 직사각형의 망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작품이 갖는 경계의 모호함은 반복되는 작업(섬유 재가공-쪽 염색, 풀 먹임, 바느질)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는 반복노동으로 인해 인간이 몰개성적으로 변함을 떠올리게도 만들었다.
김세일
망 구조물 작업은 여러 면에서 조각이나 조형물과 관련된 전통적인 관념과는 구별된다. 무엇보다도 조형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피감이 떨어지고 그 실체감마저도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 김세일의 작품은 망 구조물을 이용해, 순수한 암시력 만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실체감이 희박한 만큼 오히려 암시력의 비중이 현저하게 높아지면서 작품은 순수한 환영으로 읽히는 것이다. 큰 덩어리의 망 구조는 조명을 받아 빛의 편린이 보여지고 그 희박한 존재감이 오히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선기
예술가는 그들의 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한다. 작가 박선기는 (자신의) 완벽한 세계를 찾아 나서는 노력으로, 예술을 이루는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시도했다. 공간 속에 자유로이 던져진 검은 숯은 나이론 줄에 매달려있다. 가까이에서는 줄줄이 허공에 뜬 숯을 바라봐도 무엇을 위해 그것들이 팽팽하게 매달려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숯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뒤로 물러서야만, 실과 단추의 이미지가 눈으로 인식된다. 여백이 가진 탄탄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전강옥
작가 전강옥의 작업은 불균형, 순간적 균형, 추락 등 중력의 가장 자극적인 효과들을 시각화하는 한편 가벼움, 초월, 비상, 무게와 같은 중력과 관련된 정신적 가치들을 조형화했다.
이는 눈으로 보이기 까다로운 관념들. 나약, 가냘픔, 쇠락, 붕괴, 와해, 추락 등을 미학적으로 일구려는 시도로 보인다. 균형에 의해 “생명의 순간성” 즉, 작품 설치 직후와 파괴가 일어나기 직전의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찰나를 경험하는 것이다.
'드로잉조각 공중누각' 전 외에도 2개의 전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종이작업을 하는 매리 설리번(Mary Sullivan)과 나무로 조형작업을 하는 보리스 쿠라톨로(Boris Curatolo)의 공동작품을 선보이는 Wood Meets Paper (나무가 종이를 만나다) 전시는 두 나라에서 전시를 가지고 세 번째로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열린다.
두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하여 소마드로잉센터 전시실의 환경에 맞추어 작품을 직접 설치했다.
나머지 한 전시회는 Shoebox(슈박스) 전이다. 타이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약 30x20cm의 신발상자 크기 이내로 제작된 소품 조각들로 구성되어 큰 부피와 무게로 조각작품의 국제순회전이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고 현대조각을 좀 더 폭넓게 보여주고자 기획된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