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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시각적 최면을 걸다

2009-04-07

4월의 문턱을 들어서자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봄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최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아티스트들의 참신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얼갤러리에서 이 경의 열한 번째 전시 ‘고요한 세계’전이 오는 4월 13일 까지 열린다. 잔잔한 듯 호수 위에 비쳐지는 점진적인 색의 연속에 대비되는 강렬한 색의 반전은 그간 우리가 갖고 있는 색에 대한 느낌을 바꿔주기에 충분하다.

에디터ㅣ 박현영(hypark@jungle.co.kr)
자료제공ㅣ 얼 갤러리

홍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의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미술대학교에서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한 이 경의 열한 번째 개인전 <고요한 세계> 전에서는 단적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시각적 은유법과 대위법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강렬한 색의 반전은 안개 낀 얼음호수 위를 걸어가듯 삶이 지속되는 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생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떨쳐버릴 수 없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경은 이러한 메시지를 광폭하고 거칠며 불완전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가장 절제되고 추상적이며 탐미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대면한 누구라도 절제된 심리묘사적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작품에 매료된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의 예술행위 자체는 세상사에 무관심한 듯 마냥 관조적 입장을 취할 때가 많으나 그는 철저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시대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가까운 미래도 예측 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시각적 최면을 통해 보여지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의 심연 속에서 천천히 걸러진 프리즘으로 곱게 켜켜이 쌓여지는 색띠들이 펼쳐지는 이 경의 캔버스에는 수평으로 길게 미끄러지는 색들의 세밀하면서도 감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작업은 즉각적인 인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시간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소요하게 된다.

독일 유학시절 '색깔 적기'라는 텍스트북을 만들어 일련의 색 이름들을 적어 넣었다는 그는, 이를 통해 색으로 이뤄진 조형성을 위한 시발점이 되었고 자연풍경을 바라볼 때 벅찬 떨림을 꼭 닮은 작품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고요한 세계’라는 타이틀로 개인과 사회의 소리없는 움직임과 침묵을, 불분명한 수평선이 보여지는 모호한 풍경과 낮은 채도로 색채를 묘사하는 안개 속의 세계로 정의하고 있다.
모든 개념과 의미의 틀을 너머 사회 속에서 미술로서 기능하는 가장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바로 색채이며 그 색채는 개인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른 현실, 다른 상상의 세계를 드러낸다. 이 경의 회화는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계의 리얼리티를 직설적으로 담아내기 보다는, 현재의 시공간에서 거리두기를 통해 한 개인이 속한 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은유하는 표현방법으로서의 색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색채의 스펙트럼에서 확인할 수 없는 감성의 흐름, 기억의 도출, 두 공간 사이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지 않는 평면성이 강조됨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림으로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퐁경으로서의 색채 본유의 연상작용과 내적동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전시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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