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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조각을 여는 사람들 1

2007-12-11

<구름 속의 강ⅰ-또 다른 믿음> 은 전투기에 매달린 십자가상을 안착시켰다. 이 화두는 마리아의 꿈 정반대 영역에 있다. 황금나무에선 천사들이 보좌하지만, 이 구름은 신을 자살특공대로 전락시킨다. 존 레넌은 노래했다.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만들어진 신』에서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런던 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화약 음모사건도, 인도 분할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것도, 북아일랜드 ‘분쟁’도, 명예 살인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번들거리는 양복을 빼입은 채 텔레비전에 나와 순진한 사람들의 돈을 우려먹는 복음 전도사도 없다고 상상해보라. 고대 석상을 폭파하는 탈레반도, 신성 모독자에 대한 공개처형도, 속살을 살짝 보였다는 죄로 여성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행위도 없다고 상상해보라”고 외친다.
<구름 속의 강ⅱ-황금코끼리> 는 매우 중의적인 작품이다. 성동훈은 “황금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심볼이기도 하다”며 단지 이것이 종교적인 내러티브로만 흐르는 것을 견제한다. 미국의 보수적 인물들은 존 레넌의 노래를 부를 때 “종교 없는”이란 구절을 종종 빼고 부르거나 “한 종교가 있는”이라고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세계를 악으로부터 지키고, 선의 낙원으로 구원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메시아적 도취’라 해야 할까, 아니면 모든 악귀를 물리치고 열반에 이른 부처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황금코끼리는 부처 앞에서 불의의 꿈을 꾼다.
<거북이의 꿈-vibration> 은 종교의 신화소, 현실의 신화소가 솟아 오른 그 자신의 내부를 비춘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빗대어 ‘자화상’임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그동안 변화의 부침을 가져 온 심연의 둥지를 보게 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유머를 뺐다고 했다. 그런 다음 모든 화두를 뜬 구름 안에 넣었다는 것이다. 거북이는 입에서 토해내는 긴 나팔관을 가졌다. 나선형의 나팔은 모든 것을 흡입하고 뱉어낼 것만 같다. “거북이는 나를 닮았어요. 둔하고, 느리고, 묵묵부답이죠. 한데 거북이는 고대로부터의 동물이에요. 더딘 진화를 한 셈이죠. 제 작품의 초기부터 풍자적 동물로 등장했어요. 이번 작품에선 유일한 시멘트 작품인데, 형상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나머진 올해 다 만들었구요.”

순수한 상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성동훈의 실험 조각은 전통성과 현대의 감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구상조각의 맥을 이어 가고 있는 그의 실험은 아름다운 꿈과 상상의 해학적 풀이와 풍자를 포함 한다. 황량한 사막의 한 부분을 오려서 도시 한 복판에 들여 놓은 공간 설정은 그의 무식한 상상의 초대로 이루어졌으며, 물질문명의 부속품들을 감각적으로 조합하여 형상을 만들어냈다. 모래가 휘날리는 모래언덕 위에 수 천 개의 구슬로 엮인 동물형상에는 은은한 불빛이 드리워져 있다. 전체 이미지에서 표출되는 외로움, 연약함, 고독함의 형상들은 극적인 공간연출과 감각적인 실험 속에서 자아낸다.

성동훈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 졸업하고 현재 조각가, 국제 공공미술 기획자, 코스타리카 국립대학교 초빙교수로 몸담고 있다. 제1회 IHATOV-한,일 아트페스티발, 일본, 프로그램 메니저 역임, 제1회 국제 친 환경 미술전, 예술의 전당, 기획추진 위원 역임, International Desert Art Project, 미국, 아트 디렉터 등 국제미술기획 한바 있으며 2006 아트 레지던시, 큰스탈레 크렘스, AIR-Krems, 오스트리아, 2005 국제도자기 워크샵, ‘장르 가로지르기’, 여주 토야도예공방, 여주 등 국제 아트 레지던시 & 워크샵 등이 있다. 주요수상경력으로는 제1회 MBC 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제7회 경인미술대전 대상 수상 등이 있으며 공공미술/ 국제조각 심포지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조각 장르의 조형적 어법에 탄탄한 뿌리를 두고 흙, 조개껍데기, 나무, 철 등 다양한 재료에 대한 탐구와 끊임없이 진화하는 소재의 발굴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이길래 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콜렉팅되고 있으며, 주목받는 환경조각설치물들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응집이라는 미학적인 화두를 중심으로 새롭게 시도되는 소재인 나무에 관한 시각적인 작업이 입체, 평면, 설치 등 장소성을 고려한 다원적 방식으로 소개된다. 나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전 작업인 과일과 채소에 이어 작가의 주변적인 일상인 자연에 대한 몰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초기의 추상적인 형태들이 주는 매우 원시적인 힘으로부터 비롯된 역동적인 형상성을 담고 있다.
고고학적인 발굴이라는 초기 작품의 시발점은 이번 전시에 소개될 작품들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지는 원형적인 형상에의 추구, 깊숙이 묻혀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매혹을 드러내주며, 매우 근원적인 본질로의 회귀현상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런 작가의 경향은 변화하는 소재 및 재료, 조형언어의 성공적인 실험 속에서 변함없이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미학적인 결론인 응집이라는 요소로 귀결되고 있다.
응집 나무는 오브제의 반복적 집적으로 자연물의 형상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형태에서 원시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을 추구하던 초기의 작업방식에서 나아가 세포단위에서 생명의 핵을 찾아내던 또 다른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작업을 엿볼 수 있다. 자연물로서의 나무의 형상은 자연친화적인 시각의 확대이자 동양적 미장센에의 탐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보다 근원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의 정물형상에서 나아가 유기체의 다이나믹한 생명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일보된 것이다.
나무 형상을 통하여 작품에서 회화적인 조형성을 드러낸다. 동(銅)파이프 조각을 연결해 나가는 작업과정은 마치 동양화의 붓 터치 같은 숨결로 드러난다. 특히 척박한 땅에서도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이자 조형에 대한 상징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 자연물이다. 동(銅)파이프 매체와 나무 표피의 중첩된 마티에르 절묘한 형상의 만남은 기계적인 현대사회에 마치 생명의 식수(植樹)를 해 나가는 물성화 과정의 표현이다.

이길래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졸업하였고 경희대학교 미술학과 강사 및 겸임교수로 몸담았었다. 2007 한국현대미술제-개인전(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을 비롯하여 총 여섯 차례의 개인전이 있었으며 세종문화회관 아트가든전을 비롯하여 40여 차례가 넘는 단체전을 가졌다. 제1회 중앙비엔날레 특선(중앙일보사),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국립현대미술관), 제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국립현대미술관), 제11회 중앙미술대상전 장려상(호암갤러리), 제5회 청년미술대상전 특선(청년미술관)의 수상경력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수원삼성전자 등 곳곳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세계와 언어 사이의 간극, 이 메울 수 없는 간극은 예술가가 존재하는 한 이유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이 간극사이에서 고민하고, 그 속에서 예술을 잉태한다. 따라서 하나의 작품은 세계 혹은 언어의 실체 혹은 그 표현이라기보다는 세계 혹은 언어의 거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존론적인 문제에 늘 고민해야 하는 예술가쯤이면 이러한 간극의 멀고도 험한 길을 알고 있으며, 이를 신체에 삼투시켜 작품 제작에 임한다. 조각가로서 정광식은 자연이 주는 수많은 언어/비언어를 전통적인 조각의 언어인 신체와 질료로써 표상한다.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이천의 지석리 작업실은 소위 풍수지리적으로 안락하다. 자연의 순간적이고 정태적인 이미지를 나무에 새겼던 세 번째 개인전(갤러리 온, 2005)은 이러한 현실세계의 입김이 투영된 것이었다. 나무판 위에 균질하게 새긴 노동의 흔적들은 자연의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한 컷의 모노크롬 사진처럼 찰나의 영속성으로 남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새뜻한 수사나 산드러진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주위의 “자연이 주는 소리, 냄새, 향기”를 최소한의 표현만으로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번 네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30여 점의 돌 작품들은 전통 조각의 거대한 무브망이나 거친 질료를 감추고, 약간의 신체적 흔적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미니멀한 작업 성향을 따르지만, 재료와 형식면에서 변신의 욕망이 파닥거린다. 판판한 돌을 수없이 다양한 각도에서 빗겨 깎은 작품은 입체라기보다는 평면이라는 장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고, 여기서 나온 돌멩이 파편들을 붙여 만든 새는 무거움이 가벼이 난다라는 반어적 미학을 유쾌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미지를 표상하는 방식에 있어서 작가는 구체적인 풍경, 감각적인 몸짓, 파편화된 공간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돌의 거친 질감, 새라는 분위기의 이미저리, 파편화된 도시 공간의 격자화된 상징성을 살리면서도 도시와 새와 공간의 환영(illusion)을 이끌어낸다. 시인이 주체와 객체, 주어와 보어의 자리를 바꾸면서 시어의 상투성을 피하는 것처럼 정광식은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현 세태의 상투성에서 벗어나고자 돌의 질료와 신체의 노동을 작품에서 탈각시키지 않았다. 이는 조각가로서의 지평을 유지하는 한 방식이겠다. 그게 옳든 그르든 말이다.
글_정형탁/ 전시•출판 기획자

정광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이태리 카라라 아카데미 무대미술과 수료하였다. 현 홍익조각회 회원으로 Images after Action(갤러리 온), 수평적 경계(성보 갤러리), 자연과 인간(인사갤러리) 개인전을 비롯하여 2006 EHS 전(세종문화회관), 성남조각회전(서울대학교 분당병원), 탄천 야외 조각프로젝트(성남), 김씨네집으로갑시다(충무아트홀), 현대조각초대전(춘천MBC), 김해 야외 조각프로젝트 - going to gaya, 찾아가는 미술전(나눔의 집), Melting Zone, 푸른 꿈을 위하여, 의왕국제플랙카드아트전, 포항국제아트페스티벌, 과거, 현재, 미래 만남전, 터키 국제조각 심포지움 등 수십 차례의 전시를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뷔첵메제 조각공원(터키 이스탄불), Aley 조각공원(레바논)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다음 주에 ‘조각을 여는 사람들 2’- 이재효, 최태훈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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