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22
주부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조각보를 통해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박신영 작가. 옛 여인의 자취를 그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취재| 서은주 기자 (ejseo@jungle.co.kr)
물건을 싸거나 밥상 위에 놓이던 조각보가 미술관 벽에 걸렸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조각보는 예부터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왔지만 특히 박신영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보는 몬드리안이나 클레의 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우리네 전통 방식으로 만든 조각보에 현대적 색감과 디자인을 입힌 박신영의 작품은 일상 속에서보다 미술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시대에 맞는 조각보를 만들고 싶었어요. 조각보를 통해 옛 여인들의 자취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죠.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거 아니겠어요? 아무런 가식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씨실과 날실을 이용해 삶의 무늬를 짤 수 있는 그런 작품이요.”
네모 반듯한 서로 다른 천이 빈틈없이 잘 짜진 것 같지만 사실 조각보는 비뚤비뚤한 손맛을 감상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무질서 속에 질서와 규칙이 담겨 있는 것이 조각보의 특징. 크기가 다른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각들이 하나하나 조화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에 조각보는 그 어느 예술작품보다 작가의 예술적 기량을 많이 필요로 한다.
“염색한 색색의 천을 잘라 보드에 붙인 뒤 오며 가며 며칠간 봐요. 색 대비와 형태감이 잘 표현됐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죠. 한 작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반 정도 소요돼요.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고, 그저 손에 바늘을 잡고 있는 시간이 행복할 뿐이에요. 지난달 인사동 갤러리 가이아에서 열렸던 <박신영의 조각보> 展을 본 많은 분들이 ‘색이 참 독특하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요즘 조각보를 만드는 작가들 사이에서 천연 염색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전 천연 염색만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천연 염료와 물감을 믹스&매치시키죠. 그래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색감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가능한 다양한 색을 활용하고 싶어요. 다양한 색깔의 천 조각들이 비뚤비뚤 찌그러지고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 인생의 무늬와 같지 않나요? 박신영의>
“남들과는 뭔가 다른 작업을 하고 또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할 일이 아니겠냐?”는 박신영 작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기에 지난 3~4년간 주부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조각보 만드는 일에 매진해 왔지만 “이제는 남들이 제 작품을 어떻게 봐줄지 궁금해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는 그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찾고자 한다”고 말한다.
조각보 이외에도 타피스트리에 관심이 많아 다음 전시에서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평면에서 더욱 확장하여 설치작품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그녀.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조각보의 완성도를 위해 여전히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고 있는 박신영 작가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