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03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작가 미네르바 쿠에바스(Minerva Cuevas, 1975년생)는 1997년까지 미술을 공부한 작가이지만 자신을 작가인 동시에 활동가라 소개한다. 쿠에바스는 소비경제, 에너지정책, 부의 재분배 등 심각한 정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다양한 성격의 공공 매체를 끌어들인다. 각종 스티커, 데모에 쓰이는 피켓, 여기저기 손쉽게 메시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플라이어, 대형 벽화, 공공장소에 부착되는 포스터 등에서부터 상가가 닫힌 후에만 보이는 셔터 면까지 이용해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래픽물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주로 보이는 그녀의 작업은 전반적으로 강한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기존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대체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미술은 사회 내 불법 승차자인가 아니면 희망의 쿠키 전달자인가. 멕시코의 활동적 미술가 미네르바 쿠에바스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본다.
글_양혜규•미술작가 │사진_ 미네르바 쿠에바스 제공
1998년 쿠에바스는 ‘더 나은 삶(Better Life)’이라 번역될 수 있는 Mejor Vida Corp.(MVC)라는 일종의 비영리회사를 창안했다. 이 회사 이름은 초기 쿠에바스의 익명적 활동을 보장하는 작가적 가명이기도 했다. MVC를 앞세운 여러 가지 상품과 다양한 서비스 제공 그리고 캠페인을 통해 쿠에바스는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MVC 웹사이트를 통해 쿠에바스는 자신이 개발한 상품, 서비스 그리고 캠페인을 주창함으로써 정치•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일상의 분배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활동가로서, 직접 근본적으로 그러나 인간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 배급된 활동들은 대부분 기존의 경제질서를 교란 혹은 방해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별히 이윤추구 위주의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MVC 웹사이트 (http://www.irational.org/mvc)의 방문객들은 가짜(공짜) 지하철표, 가짜(공짜) 우표 혹은 직접 인쇄할 수 있는 바코드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아직 개표되지 않은(물론 상금은 없다) 복권이 공급되거나 소비물품의 보다 정당한 가격을 위해 상품에 부착할 수 있는 저렴한 바코드 스티커가 필요에 의해 인쇄될 수도 있다. 방문객이 누리는 서비스는 공공장소의 청소는 물론 실업자를 위한 가짜 추천서, 안전서비스 등으로 다양하고 매우 창의적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흔히 공공서비스가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해결방법 또한 기존의 관료적인 방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매우 즉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웹사이트에서 제공받는 상품과 서비스가 말하고 있는 바는 매우 명백하다.
쿠에바스는 각종 후원사의 경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참가하는 전시에서 완벽한 무료관람이 가능하지 않게 되자, 즉각 회사를 앞세워 MVC 학생카드를 발급해서 보다 많은 공공행사와 전시를 저렴하게 혹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이 카드로 공공 교통수단도 할인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언급한 예들이 시사하듯 쿠에바스의 활동은 상당 부분 법 내부의 일반적 가능성을 넘어서는 불법-탈법적인 성격을 띤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활동이 “자극 우선주의의 정치적 제스처도 아니고, 박애주의를 앞세우는 동정적인 행동도 아니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회사와 웹사이트를 통한 활동은 다만 보다 인간적인 교환과 근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비춰보는 인터페이스일 뿐이다.
쿠에바스의 최근 작업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역사적 개입이 등장한다. 1954년 미국의 비밀정보국(CIA)은 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된 지도자를 무너뜨린 과테말라의 쿠데타를 무기와 외교로 지원함으로써 이후 32년 간의 독재정치와 2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내전을 간접적으로 주동했다. 당시 암살된 지도자는 과테말라의 내셔널과일회사(UFCO, United Fruit Company)를 국영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지도자의 암살 이후에 각종 이권과 특권 그리고 독점권을 완벽히 소화하고 있던 UFCO를 미국의 델몬트사가 인수했다. 배후에는 당시 미국 외무부 장관이 있었고 UFCO의 주주이자 대변인이었던 델레스와 CIA 책임자이며 UFCO의 회장직을 역임했던 그의 친인척이 있었다.
쿠에바스의 대형 벽화는 언뜻 델몬트사의 토마토 통조림에 부착된 상품 라벨로 보이지만 순수한 토마토즙이라는 선전용어가 들어설 자리에 ‘순수한 살인자(Pure Murderer)’가 대신하면서 비판적인 캠페인으로 둔갑한다. 이는 각종 부과적인 협찬 관련 로고가 있을 법한 자리에 CIA와 UFCO라는 단어가 새겨짐으로써 고발의 성격을 더한다.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토마토 과즙은 어쩌면 과테말라 사회가 치러낸 희생의 상징이며 벽화 앞쪽에 바닥으로 흐르는 듯 그려져 있는 토마토 즙이 이러한 연상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 작업의 또 다른 연장선이라고 여겨지는 소형 스티커는 전시장 밖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는 과일에 부착되었다. 주로 바나나 등 델몬트사를 통해 배급된 과실 농작물에 부착된 이 스티커는 기존 마크에 ‘범법자(Criminal)’라는 단어가 덧붙여진 형태로 같은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작업을 통해 쿠에바스는 매우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농작물 뒤에 숨겨진 정치적인 공간을 드러낸다.
이 숨겨진 공간에서 전개된 미국 정보부의 암살과 반백년에 걸친 쿠데타를 지원한 무력은 ‘순수한’ 과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다만 ‘순수’한 정치적 음모일 뿐이다. ‘순수’한 내용물로 대표되는 이상적 현실은 가상 혹은 허위에 불과하며 우리는 어쩌면 일상에서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 사이에서 음모와 진실을 구별해내지 못하고 있다. 즉 순수함은 식품의 물리적 성분 이상의 진실을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물리적 순수함에 진리가 가리워진 상태를 직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쿠에바스는 국제시장, 경제음모 그리고 정치적 이권 다툼으로 점철된 간극을 간단한 변형을 통해 통조림의 라벨과 과일에 부착된 스티커를, 진실을 폭로하는 강력한 캠페인으로 둔갑시킨다. 첫눈에 기존의 라벨과 구별되지 않은 미니멀한 변형만을 추가한 쿠에바스의 그래픽 작업은 너무나 확고하고 빈틈없는 기존의 기만적인 시스템을 파고드는 매우 대표적인 게릴라식 작업방법론으로 여겨진다. 즉 간단한 대안적 내러티브 삽입을 통해 기존 그래픽 안에 저항의 진실을 주사하는 것이다. 동시에 쿠에바스의 작업은 현실 공간과 미술관과 화랑 등으로 요약되는 미술공간 사이를 허물고 새로운 공간을 개척한다. 즉 쿠에바스는 철저하게 미술공간의 여분을 이용해 현실에 다른 방법으로 기생-저항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로고 혹은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된 그래픽 방법론을 주로 사용하는 쿠에바스의 작업을 지켜보면 정치선전 혹은 상업광고를 연상시키는 강렬하고 경제적인 시각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디에고 리베라 등의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멕시코의 벽화 전통을 연상시킨다. 많은 멕시코 벽화작업들이 꼭 고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지 않으면서도 담담히 서민의 현실을 그려내면서 대중과 호흡했고 숨기지 않고 있는 고통과 억압 그대로 그리고 동시에 의식의 투철함을 담아냈다. 여기서 쿠에바스와 멕시코 미술-사회 전통 내에서 가지는 문맥을 확인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민주화와 경제적 의존성이 큰 사회에서 흔히 팽배한 정치선전적인 언어 사용은 쿠에바스의 인쇄물이 가지는 선전성을 공유한다. 즉 빠르고 쉽게 소통하면서 단시간 내에 메시지를 경제적으로 전달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1980년대 반공을 주제로 수도 없이 생산된 우리 사회의 표어와 포스터들의 소통 전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기존의 정치선전이 대중을 유린하는 성격을 갖는 데 반해 쿠에바스의 메시지는 이에 맞서는 정의구현의 메시지를 가지기에 아이러니컬하다. 다시 말하면 포스터들이 갖는 빠르고 직접적인 소통을 중심에 둔 상징성과 계몽성을 가지되, 같은 방식의 쉽고 경제적인 쿠에바스의 언어는 기존의 정치선전 언어를 도용하고 전복적으로 재사용함으로써 아이러니를 창출한다.
하지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되 동시에 그에 걸맞은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데 대해 미술계에서는 적잖은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브라이언 홈즈는 “액티비즘이 미술에 등장하는 것보다는 미술이 액티비즘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을 선호한다”는 꽤나 직접적인 발언을 했고, 이는 쿠에바스의 작업방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명하는 데 인용되었다. 대체적으로 미술계 내부의 비판적인 시각은 직접적이고 대조와 자극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언어사용에 대한 간접적 회의라 이해된다. 하지만 쿠에바스는 끊임없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사회활동의 절실함을 주장한다.
대조와 아이러니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그래픽의 간섭으로 쿠에바스는 프랑스 상표 에비앙을 테마화하는 포스터작업을 진행했다. 에비앙(Evian, 프랑스 알프스에서 나오는 물 상표)을 에갈리테(egalite 평등)로 바꿈으로써 천연자원을 사유화-상품화하는 상품을 주목하는 한편, 상품을 마케팅하는 것과 같은 적극성과 억척을 가지고 평등을 주장하고자 하는 전술이다. 대형 포스터로 제작되어 시내에 설치된 이 작업은 정치•사회적 기본 이상이면서도 실제로 구현되지 못하고 추상적인 이념으로 남겨진 ‘평등’을 재위치시키고자 한다. 사실 소비사회의 상표가 가지는 일상 내의 강렬한 존재감 뒤에는 많은 금전과 전술의 투입이 존재하며, 이는 이윤을 목표로 할 때만 성립하는 투자이기에 더더욱 이 확립된 코드를 도용하는 것이 전복적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과 치밀한 마케팅으로 확립된 코드를 도용함으로써 에비앙을 위한 그 동안의 자본주의적 물적 양적 투자를 모조리 훔친다. 그리고 이것을 도용했기에 더욱 손쉽게 ‘평등’이라는 어쩌면 추상적인 개념을 일상 안에 파고드는 개념으로 새로이 삽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타나는 결과는 역시 기존의 판권을 손상시키는 불법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상품명이 ‘평등’으로 대체되면서 또한 바로 상표 아래 위치한 ‘자연적 조건(Une Condition Naturelle)’이라는 표현도 추가적으로 아이러니컬한 의미를 가지면서 ‘평등’을 보조하게 된다. 물이라는 천연자원만큼이나 근본적인 평등의 원칙은 같은 방식으로 현실에서 유린되어 왔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시사하는 포스터는 쿠에바스의 전형적인 시각적 ‘낯설게하기’ 방법론에 근거한다.
쿠에바스는 일반적으로 데모에 참가하는 인원의 두 배에 가까운 진압인원을 지적하면서 ‘트렌스-데모’ 형태의 저항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스티커, 배너, 인터넷, 피켓 등의 다양한 미디어의 사용은 어쩌면 고전적인 데모의 형태를 확대시키는 보다 미디어적인 접근으로, 비물리적이지만 영향력있는 방법론이다. 동시에 미술이라는 영역은 현실에서 계산해 볼 때 금세 진압될 만한 것을 보다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기도 하고, 그 한계를 시험해 보는 장이 된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정치적인 미술과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미술 사이의 구분을 밝히면서 그녀의 작업이 정치적인 미술이 아님을 강조하는 동시에 작업이 사회적 활동으로 확대되는 가능성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피력했다. 따라서 ‘소우주 활동가(micro-activist-strategies)’라는 전술을 바탕으로 한 매우 독립적인 1인 활동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은 매우 명백하다. 그리고 매우 독자적이고 날카로운 시각은 관적인 대체론이 놓치는 인간적인 조건의 훼손에 주목한다.
베를린에서 진행된 총 5개의 프로젝트를 다루는 ‘불법승차자는 나의 영웅들(Schwarzfahrer are my heroes)’이라는 자극적이고 반항적인 제목의 전시에서도 쿠에바스는 많은 이들이 매일 접하면서도 의식하지 못한 공공영역의 점차적인 개입과 민영화를 테마화하는 동시에 비판한다. 또한 베를린시의 교통망이자 관리자인 BVG가 개발-진행하고 있는 유니폼을 입지 않고 평복을 입고 검사에 나서는 콘트롤 요원을 통해 불쾌한 감시-처벌체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테마들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한 독립 라디오 테마에 몰두하거나 소프트웨어 공유를 주장하고 특정 천연자원에 대한 공동 대처 등의 테마는 함축적으로 정당하고 사회적인 현실을 지원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자본주의사회의 탐욕을 드러냄과 동시에 끊임없이 개혁과 정의구현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동시에 피력함으로써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쿠에바스의 긍정적인 메시지는 이 전시에서 발견하는 포춘쿠키만큼이나 들어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