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헤거티 | 2013-08-23
일찍이 ‘현대광고계의 아버지’ 데이빗 오길비(David Ogilvy, 1911〜1999)의 『오길비의 광고론(Ogilvy on Advertising)』(1983년 초판)과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Confessions of an Advertising Man)』(1988년 초판)는 현대 광고이론을 공부하는 광고계 지망생과 광고종사자들에게 필독서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2011년 존 헤거티는 오길비의 광고론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헤거티의 광고론』(런던 템즈 앤 허드슨 출판사 刊)을 펴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이 책이 광고계의 크리에이티터를 꿈꾸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떤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 미리 엿보도록 하자.
글│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 평론가( jina@jinapark.org)
에디터│정은주(ejjung@jungle.co.kr)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초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 했던 조선일보의 구호처럼 다가오는 인터넷 기반의 뉴미디어와 정보화 시대를 대비한 글로벌 경제체제 구축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각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는 최고 인기 학과 중 하나였고, 전공과 관계없이 중앙도서관에서 밤낮으로 진을 치고 앉아 광고회사 입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 창의 전문직, 든든한 보수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총아라는 점에서 광고계는 그 당시 패기와 야심으로 들끓던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분야였다. 정체된 경제 분위기와 만성화된 청년 실업, 대학 입학 순간부터 공무원 고시에 돌입하는 맥없는 대학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에 비한다면 20여 년 전 대학생들이 매스 미디어와 대중문화 산업에 대해 품었던 전망은 1990년대의 순조롭던 경제 분위기만큼이나 낙관적이었다.
2007년부터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TV 시리즈 『매드맨(Mad Men)』은 1960년대 뉴욕 맨해튼의 한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매드맨』 시리즈에서는 커리어, 돈, 섹스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직업 광고맨들의 일과 생활이 잘 드러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광고업계가 톡톡 튀는 창조 인력들이 각축하며 기발한 광고를 연거푸 토해내는 매력적인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인터넷과 개인용 모바일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TV와 라디오를 비롯해 신문과 잡지, 출판업계와 같은 기성 매체들의 불황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대중매체의 광고를 도맡았던 광고회사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8월 3일 발매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서는 세계적인 광고사 퍼블리시스(Publicis)와 오미니콘(Ominicon)의 합병 소식을 전했다. 대형 광고주들이 인터넷 데이터에 근거한 온라인 타겟 광고를 선호하는 덕분에, 기존 광고업체들이 새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침체 속에 허덕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광고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한 시점에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해 헤거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고계가 전에 없는 커다란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상황에서 ‘권위 있는’ 템즈 앤 허드슨 출판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45년 동안 광고계에 종사했던 내가 책을 써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다.” 헤거티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광고산업을 죽였다고 불평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가장 기본적인 광고의 개념부터 혁신해야 함을 강조했다.
헤거티가 런던에서 광고맨으로서 일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때는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뒤로하고 경제재건과 경제부흥에 한창이던 1960년대였다. 당시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다니던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비주류계 교수들과 선술집에서 만나 맥주를 앞에 두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토론하면서, 광고 일에 매진하리라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1967년 크레이머 사치(Cramer Saatchi) 사에 입사한 그는 전설적인 광고 세일즈맨으로 불리는 찰스 사치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스윙잉 식스티스(Swinging Sixties)’로 불리며 1960년대 팝 문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던 시절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상소비문화 속으로 녹아들며 보편화되기 시작한 비즈니스 황금기였던 때였다. 이즈음 영국의 20세기 광고의 역사는 사실상 런던 구지 스트리트(Goodge Street)와 토트넘 코트 로드(Tottenham Court Road)가 만나는 골목에서 잉태되었다고 헤거티는 회상한다. 이 골목 안에는 옛 게이츠비 백화점을 오피스로 개조한 건물이 있었다. 크레이머 사치 사를 비롯해 신생 창업한 광고에이전시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이 골목은 곧 불을 만난 화약고 마냥 창조적 불꽃이 터지던 런던 광고계의 1번지로 주목받았다. 1973년, 그는 사치 사를 떠나 런던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 범유럽 설립자들로 구성된 에이전시에서 관료주의적 조직은 얼마나 창조력을 저해하는지를 절실히 깨닫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헤거티는 1982년 TBWA를 퇴사한 직후 동료 둘과 BBH(Bartle Bogle Hegarty) 광고에이전시를 창업해, 현재는 아시아와 미주 대륙 6개 도시에 지부를 둔 BBH 글로벌로 성장시켜 운영해 오고 있다. BBH 런던 본사가 창업 이래 맡았던 가장 전설적인 광고 캠페인의 성공 사례는 리바이스의 검은색 청바지와 501진 광고였다. ‘세상이 지그로 갈때 재그로 가라(When the World Zigs, Zag.)’ 슬로건과 함께 이 광고 캠페인에 쓰였던 검은색 양의 이미지는 지금도 BBH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늙은 노인들이 타는 구형 차 이미지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독일의 아우디 자동차를 첨단 엔지니어링 업체라는 새 이미지로 업그레이드시켜준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 광고 캠페인은 아우디 사의 기업 운명을 180도 뒤바꿔준 광고업계 대표적 성공사례였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 직전 클라이언트로부터 걸려오는 급박한 전화 한 통, 언제나 빠듯하고 촉박한 마감일자,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등은 광고맨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애로사항들이다. 수많은 밤을 지새면서 수 십대의 담배를 태워가며 애써 뽑아 놓은 광고 헤드라인이나 사진을 수정해 달라는 클라이언트의 무심한 지시에 의자와 서류를 내던지며 불같이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러다 이내 다시 작업에 임해야 하는 광고쟁이의 인생은 결코 녹록치 않다.
헤거티에 따르면, 위기에 봉착한 기업이나 조직체들이 급박한 심정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우선 찾아가는 곳이 바로 광고 에이전시라 한다. 이때 광고맨은 기발한 브랜드 혁신과 홍보기술을 활용해 위기에 봉착한 클라이언트를 구출해준다. 그러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넉넉한 보수를 받긴 해도 그 업적은 금새 잊혀지기 때문에 때론 외로운 직업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광고 에이전시를 찾아오는 대다수의 클라이언트들은 리스크가 두려워 최종적으로 뻔하고 진부한 광고 시안을 선택해 애써 일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실망시키는 일도 잦다. 유능한 광고맨과 카피라이터라면 그런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기발하고 효과적인 광고 시안의 잠재력과 효과를 납득할 수 있는 자신감과 설득의 기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흔히들 광고를 서비스 산업으로 분류하곤 한다. 그러나 헤거티는 광고는 서비스 산업이 아니라 독립된 첨단 창조직임을 당부한다. 과거 유럽의 천주교 교황이나 고위급 성직자, 황제, 왕, 고관귀족 등이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낸 미술작품으로 그들의 지위와 위력을 한껏 뽐냈던 것과 광고가 같은 이치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 경제와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여러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와 단체들 또한 광고 에이전시의 힘을 빌어 그들의 대외적 홍보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거티에 따르면, 광고란 창의력(creativity)으로 예술(art)과 장사(commerce)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광고맨과 광고 에이전시의 승리를 여는 열쇠는 첫째도 아이디어, 둘째도 아이디어, 셋째도 아이디어다. 남들이 생각해 내지 못한 혁신적인 아디이어를 창조해낸다는 자기 확신과 신념과 함께 그 아이디어를 세상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과거 런던 벤튼 & 보울즈(Benton & Bowles) 에이전시 경우처럼 회계사가 경영을 주도하며 숫자놀이에 열중하는 광고 에이전시는 절대로 창조적 혁신을 불러올 수 없다고 경고한 것이다. 반면에 헤거티는 함께 작업한 광고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이전시로서 크리에이티브 인력들의 지성과 위트를 높이 평가해줬던 뉴욕의 DDB(Doyle Dane Bernbach) 사와 런던의 CDP(Collett Dickenson Pearce) 사를 꼽았다.
광고의 미래에 대한 헤거티의 태도는 긍정적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기존 광고업계를 몰살시켰다고 진단하는 통념에 대해 그는 ‘지금이야말로 광고계는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에 놓여있다. 테크놀로지가 우리 주변환경을 변화시킨다 할지라도 광고가, 즉 인간의 상상력이 인류를 통합시켜준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로지 아이디어만이 인류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같은 진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화가 없다.’고 선언한다. 인터넷 기반의 다양한 새 비주얼 수단을 위협요소로 보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활용해 관객에게 접근한다면, 광고계는 과거 그 언제보다도 참신하고 훌륭한 창조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현대 광고업계의 거물급인 사치 앤 사치나 클라이언트와 연계된 인사이더 가십이나 스캔들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헤거티는 그가 광고계에 입문하여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이 일에 몸담아 오는 동안 겪은 직업적 경험과 성패 사례들을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는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이자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진지한 직업의식과 긴장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은 결과물이다. 때문에 이 책은 감히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현대 광고학 입문서로서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할 만하다.
존 헤거티(John Hegarty)는 영국 출신의 거물급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현재 BBH(Bartle Bogel Hegarty) 광고 에이전시의 공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 런던에서 본사를 개설한 이래 BBH Global은 현재 뉴욕, LA, 싱가포르, 사웅파울루, 상하이, 뭄바이에 해외지사를 두고 약 900여 명의 임직원을 고용한 국제적 규모의 광고사로 성장했다. BBH가 수행한 가장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으로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위한 ‘동전빨래방(Laundrette)’ 스팟 광고, ‘기술을 통한 진보’ 아우디 자동차 사례 외에도 조니 워커 위스키를 위한 ‘Keep Walking’ 광고,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보다폰, 유니레버 오모/페르질 세재가 있다. BBH는 영국 D&AD 광고대상, 칸 올해의 광고상, IPA 및 APG 광고대상을 수차례 수상했으며, 가장 최근인 2013년부터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다. 존 헤거티는 영국 광고계에 기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5년 클리오(Clio) 평생공로상과 2007년 영국왕가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 받았다. 2012년 7월 이후로 프랑스의 대형광고사 퓌블리시스(Publicis)가 BBH 주식의 과반수를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