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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창조경제’ = ‘경제창조’?

존 호킨스 | 2013-07-03


‘창조경제’란 말이 요즘처럼 자주 언급되는 때도 없다. 지난 정권에서는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부주도의 디자인 장려정책과 사업추진을 해왔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디자인은 어느새 ‘창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갈아입고, 21세기 한국 경제성장의 엔진이 될 차비에 한창이다. 헌데 일반대중은 물론 문화산업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이 창조경제 정책이 표명한 탄탄한 정의와 실질효과에 대해 혼란과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갸우뚱대는 것은 왜일까?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1년에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출간한 책 ‘창조경제’ 를 통해서 창조경제란 무엇을 뜻하는지, 창조경제안이 제시하는 유익한 참고사항, 미연에 방지해야 할 유의사항으로는 어떤 점이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글│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 평론가( jina@jinapark.org)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창조경제’의 저자 존 호킨스는 지난 5월 30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주최로 열린 창조경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해 국내 언론의 큰 관심을 모았다. ‘창조경제: 아이디어로 돈 버는 방법(The Creative Economy: How People Make Money from Ideas)’은 2001년에 영국 펭귄출판사에서 출간된 후 2007년 영국을 비롯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권과 싱가포르 등의 창조산업정책 실행 결과를 담은 각종 데이터와 성과내용을 추가시킨 증보판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상태다.

존 호킨스가 정의하는 창조와 창조력(creativity), 그리고 창조경제 개념은 시중에 나와있는 연구결과나 책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이디어와 창조활동으로 돈을 벌고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착상능력 즉 창조력을 보편적으로 갖고 태어나며(Creativity is a universal talent.),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아이디어(intangible ideas)는 가시적인 자산(tangible assets)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요구한다고 한다. 또한 적기에 아이디어를 시장으로 소개하고 저작권보호책이나 특허제 등의 법적 장치를 통해서 금전적 보상(economic reward)을 받는 선순환 활동과정을 통해서 ‘창조 활동’이 ‘경제 활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특히 2007년 개정판에서 저자가 새롭게 강조하는 요지는 ‘콘텐츠’의 중요성이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된 첨단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콘텐츠는 신제품과 서비스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일례로, 창조산업분야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영화, 드라마,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와 출판 부문에서 콘텐츠의 참신성과 기발함은 작품 자체가 야기하는 관객동원력 및 매출에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 분야의 연관 산업 분야 – 예를 들면 광고, 패션, 화장품, 관광, 의료산업 등 - 도 동반 상승시키는 파생 효과를 낳는다. 이미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콘텐츠 진흥원을 설립해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형 창조산업을 한국의 문화연예산업에서 실행하고 있다.

그중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창조경제가 지속적으로 번창할 수 있는 제도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큰 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은 아이디어나 가치를 나누는 공유(sharing) 문화의 미덕과 공짜 마케팅 전략을 유행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신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도 피땀 어린 노동과 재정적 투자의 결실을 ‘도둑’ 맞고 망연자실하는 선의의 혁신가들과 비즈니스 피해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는 어두운 현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 보상으로 되돌아와야 할 창조적 결실이 ‘지적재산의 도난’과 ‘비즈니스 파산’으로 끝난다면 이는 창조사업가 개인차원의 파산을 넘어서서, 곧 창조경제를 내세운 국가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으로 호킨스는 정부 차원의 지적재산권 및 특허 보호책을 제도화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온라인 디지털 상품과 서비스가 급격히 증가한 지난 10여 년 동안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창조력에 더 의존하고, 창조와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려는 트렌드가 심화되고 있다. 경영학 및 디자인 분야에서 흔히 회자되듯, 이 책에서도 애플(Apple), 나이키(Nike), 아마존(Amazon.com) 같은 기업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그들이 초국가적 성공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디지털 노하우였다고 지적한다.

호킨스는 창조경제를 장려하는 방안으로써 미국의 유명 출판에이전트 앤드루 와일리(Andrew Wylie)의 주장을 들면서 모든 출판물의 소유권을 저자에게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권장한다. 그런가하면 영국의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1990년대 말에 음반계약 인세 대신 음반판매율 로열티에 대한 10년 만기 선물채권을 발행해 더 큰 수입을 올린 음반 아티스트가 되었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서 창조자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에 부응하는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계약협상 전략을 취할 필요도 있다고 시사한다. 창조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대부분 중개 에이전시나 섭외업체로 저작권 및 이윤이 돌아가는 현 문화산업분야의 계약구조 재고를 환기케 해주는 분명 의미 있는 지적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가 맞닥뜨릴 수 있는 장애물은 그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그중에서도 창조산업 전문가 겸 컨설턴트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는 특히 현대경영학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로우 행잉 프룻(Low-Hanging Fruit)론’ - 노력하지 않고 남의 것을 공짜로 취하고 싶어하는 인간 습성 - 이 창조경제 모델을 위협하는 큰 리스크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선의의 창조자와 혁신가들의 투자와 노동의 결실을 보호해주면서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창조경제론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치명적 결함을 가진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현재 지적재산권법과 특허법은 법적 절차가 까다롭고 긴 시한을 요구하며 무엇보다도 출원 및 소송 비용이 비싸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현실적 실효성이 없으므로 전통적 규제책보다 한결 혁신적인 해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갈리아르디는 제안한다.

이 책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저자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가 경제창출에 기여할 수도 있음을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예견한다. 그러는 한편, 창조력이 경제창출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까지 조심해야 할 사항을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창조성이란 비물질적이고 인재(人材) 의존적이며 객관적인 측량이 어려워서 기존 경영 관점에서 관리가 어렵고 결과물의 성패도 예측하기 난해하다. 창조성이 지닌 이러한 특성 때문에 창조경제는 실패할 리스크가 높다는 점을 저자도 시인한다. 그에 대한 교정책으로 제시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민첩하고 다이나믹한 소규모 사업체가 될 것이라는 점, ②급조되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일시적・유목적 성격을 띨 것이라는 점, ③빅 데이터 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 ④항상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스스로를 재창조할 줄 아는 사업가 형이라는 점, 그리고 ⑤팀워크(teamwork)와 협동(collaboration)의 장점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창조력은 토양을 갓 뚫고 올라온 연둣빛 새싹처럼 연약하고 민감하다. 창조력이 만개하여 신경제창출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개인의 창조활동에 대한 포용적인 환경과 자유로운 문화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좋은 예로, 하버드대 교수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Amabile)를 비롯한 창조경영 분야 권위자들에 따르면 창조력은 위계질서가 경직되어 있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 성과위주의 문화, 외부적 압력이 많은 환경 - 예컨대 권위적 업무 분위기, 촉박한 마감, 과도한 경쟁 등 - 에서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성공사례들이 현재와 미래 한국의 현실에서 응용 가능한지는 조심스럽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즐겨 말한 성공 사례는 BBC 방송사, 밥 겔도프 같은 유명연예인,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영국의 경우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소니 같은 다국적 거대 성공기업이었다. 그것도 경제 호황기에 속했던 1990년대부터 2007년 국제금융위기 직전까지 약 20년에 걸친 기간을 예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같은 사례들이 중소기업체,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1인 아이디어 사업체와 일상생활에서 창조활동을 누리며 수입원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일반대중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만한가에 대해서는 검증된 사례가 없다. 대다수 구미권 정부와 학계에서도 아직은 믿을만한 통계자료나 보고서가 많지 않음을 저자 역시 안타까워한다.

오늘날 국내 언론의 관심과는 달리, 창조경제와 창조경제 담론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나 트렌드가 아니다. 출판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는 흥미로운 제안임과 동시에 아직은 그 어느 나라나 도시에서도 채 검증된 적 없는 미지의 경제기획안 중 하나로 남아있다. 호킨스는 창조경제가 국가 정책으로 옮겨졌을 때에 나타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함정들에 대한 예방책을 제시하기 위한 책 ‘창조적 생태계’ (2010년)를 통해 창조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조건들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청사진적 기획서인 만큼 결정적으로 인공적으로 조성된 창조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여부는 보장할 수 없다고 저자 스스로도 시인했음을 간과하지 말자.

※ 본 글에 나타난 입장이나 견해는 전적으로 이 글을 쓴 필자의 것이며 디자인 정글의 의견과는 무관함을 밝혀둡니다.

존 호킨스(John Howkins)는 국제관계와 도시디자인을 전공했다. 첫 저서 ‘창조경제 (Creative Economy: How People Make Money from Ideas)’를 2001년 출간[2007년 개정판]하여 창조력과 혁신을 경제성장과 연결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어서 2010년에 두번째 저서 ‘창조적 생태계(Creative Ecologies: Where Thinking is a Proper Job)’를 펴내 과거 제조업 방식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정보와 지식을 활용한 경제운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인도, 싱가포르, 폴란드 등 30개 국가의 글로벌 기업체 및 정부기관에 자문했으며, 현재 영국 영화고문위원회 회장, 유엔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창조경제 고문위원, 영국 예술인문연구회 회원직을 맡고 있다. 영국 런던 시티 대학 방문교수와 중국 상하이 무대아카데미 산하 상하이 창조 대학원(Shanghai School of Creativity) 부학장 겸 방문교수로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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