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식 | 2013-06-11
멜랑콜리함은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우수에 젖은 그들의 인생과는 너무나 어울리지만,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를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멜랑콜리는 늘 우리 삶과 함께해왔다.
멜랑콜리는 이러한 세상과의 불화, 좌절, 대답 없는 세계 앞에서 느끼는 절망에 기인한 우울함이다. 녹록지 않고 결코 명료하지도 않은 세상을 속속들이 익히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이렇듯 멜랑콜리함은 선택 받은 예술가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낄 법한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중 예술가들은 바로 이러한 감정에 맞서 작업으로서 자신을 마주 대한 사람이다. 저자 이연식은 예술가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으로 작가를 신화화하거나, 고통과 슬픔의 산물이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 멜랑콜리를 통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을 ‘예술가가 가까스로 붙잡은, 아슬아슬한 균형의 징후’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감동하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도 있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이봄
이 책에서는 특히 일곱 명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 속에서 나타난 멜랑콜리함에 주목한다. 끝없는 완벽주의자였지만, 그와는 반대로 미완성 작품이 많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간과 예술에 대한 한계를 끊임없이 시도한 작가였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차가운 눈을 보여준 피터르 브뢰헬, 아름다운 그림을 남겼지만 끝내 고독의 길로 들어섰던 에드가 드가도 있다. 슬픔과 절망의 작가로도 유명한 반 고흐와 도시의 차가운 우울을 표현하는 에드워드 호퍼, 팝아트의 거장이라는 호칭이 익숙한 앤디 워홀의 죽음과 재난에 대한 강박 등도 만날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가이지만, 이들의 작품은 천재적 우연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곧 작품의 완성으로 이어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저자는 삶의 신호가 작품으로 반응한 이들의 연결고리들을 따라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청년 작가 미켈란젤로의 대립에서 비롯된 기법적 실험과 고뇌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지점이 부각되지 않았다면,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운 대 작가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고민을 우리가 느낄 수 있게 되면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Jungle :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래전부터 멜랑콜리와 예술가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우선 저부터도 종종 멜랑콜리에 사로잡히는 터라, 이런 느낌이 예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죠.
Jungle : 많은 사람들이 ‘멜랑콜리’함을 예술가의 전유물로 보거나, 감상적으로 접근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멜랑콜리를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멜랑콜리는 르네상스 이래, 창조력의 원천인 것처럼 언급되어 왔지만 정신의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증세들이 대부분 우울증으로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멜랑콜리를 낭만적인 표징으로 여기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멜랑콜리는 형언하기 어려운 우수와 고독의 감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의미로만 남다시피 했지만 그런 맥락 속에 예술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결코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니까요.
Jungle : 작가님께서는 특히 일곱 화가의 멜랑콜리를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였으며, 그의 작업 중에 하나를 소개해주세요.
일곱 화가들은 저마다 예술에 담긴 어두운 여러 면을 드러내는지라, 어떤 국면마다 번갈아 떠오르곤 합니다. 저는 예술 활동의 기술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겪었던 기법상의 낭패를 곧잘 떠올립니다. 그가 그린 벽화
<앙기아리 전투>
는 물감을 칠하고는 불로 말리려다 그림 아랫부분이 녹아내렸다고 합니다. 다 빈치가 먼저 작은 그림으로 실험을 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큰 그림에 적용하니까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예술가는 좌절하곤 하지만 이는 설명하기도 어렵고 낭만적인 색채를 띠지도 않죠.
Jungle :
혹시 이 책에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가가 있다면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을 다뤄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베이컨은 인간이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를테면 시간의 흐름 앞에 무력하며, 금세라도 뭉개지고 지워질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임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단순하고도 절묘하게 보여준 화가죠.
앙기아리>
Jungle : 이번 책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술가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골치 아픈 존재지만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예술은 흥미로워질 것입니다.
Jungle : ‘예술가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린다.’라는 말을 했는데요. 이번 책 역시 분명히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으로 압니다.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자기연민은 자기도취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해 엄혹해야 합니다. 예술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앞에 자신이 매우 작은 존재이며, 그 가치를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신화와 전설 속, 땅 밑 대장간에서 일하는 괴물이나 난쟁이 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거죠. 예술의 역사에서 곧잘 언급되는 이름들은 그런 난쟁이들 중에서 어쩌다 ‘열린 뚜껑으로 쏟아진 빛’을 받은 난쟁이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Jungle : 이제까지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을 만나신 걸로 압니다. 다음 작업 계획을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
미술의 섬세하고 신비로운 면모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아마 역사 속 인물들의 얼굴과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Jungle : 디자인, 미술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많은 작가들이 오늘도 멜랑콜리를 즐기고, 혹은 싸우면서 고군분투할 것으로 압니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