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누스바움 | 2013-05-14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기업을 이끄는 CEO? 자기 사업을 꾸려 나가는 자영업자? 적극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거나 그도 아니면 성취감을 느끼며 정당한 보수를 받는 직장인, 혹은 가사, 육아, 가계경제를 잘 관리하는 슬기로운 주부나 남편일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일에 종사하든 상관없이 창조 지능과 경쟁력을 갖추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고 당부하는 책 ‘창조 지능’을 만나보자.
글│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 평론가( jina@jinapark.org)
21세기, 왜 창조력이 요구되는가?
군사 전문가와 미래주의자들에 따르면 21세기 현대인들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Nobody knows nothing.)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유용한 기능들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으며, 평생 고용제나 중산층의 수입을 보장하는 안정적 직장의 개념 역시 만나보기 어렵다. 청년실업의 안타까운 현실을 다룬 이탈리아 영화 ‘천 유로 세대(Generazione 1,000 Euro)’에서도 볼 수 있듯 구미권의 청년실업률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미국의 25세 안팎의 젊은이 중 상당수는 이미 두어가지 이상의 직종을 바꿔본 적 있는 다중 커리어인이라 한다. 그들은 급변하는 경제사회 변화와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능숙하게 커리어를 전환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감히 새 직종 사이를 넘나들며 창업을 하거나, 대학교로 돌아가 재교육을 받고 학위를 획득한다. 혹은 각종 인맥으로 이어진 멘토나 사업파트너와 협력하면서 급변하는 커리어 문화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당신의 CQ는 몇인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영화 속 주인공들도 절규하지 않았던가! 시험지 속 답을 잘 찍는 지능지수(IQ) 높은 모범생의 시대는 갔다. 실제로 학창시절 모범생들이 반드시 현실 속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미래에는 학교 성적보다는 창조 지능(creative intelligence)이 높은 자가 승리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창조지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갖춘 미래의 주인공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평화와 안정기에 접어든 사회는 점진적인 개선과 효율을 추구하지만 정치적∙환경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거치는 시기에는 전과는 다른 대처법 즉, "창조적 해법"을 필요로 한다. 이 같은 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미국 군대용어 VUCA (Volatile, Uncertain, Complex, Ambiguous)에 따르면, 현대인은 불안정, 불확실, 복잡, 모호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소통하며 창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오늘날만큼 창조력이 일상과 비즈니스의 필수요건으로 떠오른 때도 없다. 왜일까? 저자는 제2차 세계전기 미 중앙정보국장을 지냈던 윌리엄 케이시(William Casey)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의적이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비밀요원일수록 임무를 수행하고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례를 예로 든다.
1950년대에는 미 정보국 비밀요원들의 활동, 이후 냉전기인 1960-70년대에는 지각 심리학, 1980년대에는 하버드대의 테레사 아마빌레 교수의 경영학 혁신이론을 통해 인간의 창조력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그리고 1990년대와 최근까지는 신경정신학 분야에서 인간의 창조력은 어떤 심리적 동기와 두뇌 활동을 거쳐 발현되는지가 중요한 이슈였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Outliers)’나 조나 레러(Jonah Lehrer)의 ‘이매진(Imagine)’은 바로 이런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책들이다. 그러나 이론을 논하는 일은 그만두고 창조력을 실생활에서 실제로 응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한다.
창조력, 그 비밀 코드 해독하기
그렇다면 창조력이란 무엇일까? 어둠 속 고뇌와 방황의 시간 끝에 떠오르는 천재적 아이디어나 여느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전가(visionary)의 발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창조력이란 어딘지 모르게 근접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신비함으로 둘러 쌓인 상자로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들은 “나는 창의적이지 못해”라며 지레 포기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에 대해 불안해 한다.
창조력으로 이르는 비결은 결국 융통성 있는 생각,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 굴하지 않는 인내로 집결된다. 여타 창조력 전문가들이 늘 강조하고 반복해 온 사항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창조 지능을 향한 핵심 역량(competencies of creative intelligence)”을 5단계로 (1) 지식 마이닝(Knowledge mining) (2) 프레이밍(Framing) (3) 놀이(Playing) (4) 만들기(Making) (5) 피보팅(Pivoting)을 든다.
(1)지식 마이닝이란 개방된 사고방식을 갖고 관찰하고 배우는 자세를 뜻한다. 3M이나 구글(Google) 같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업무시간의 15~20%를 평소 관심 있는 취미활동에 할애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로 연결시키는 인사관리법을 써서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2)프레이밍은 흔히 경영학에서 말하는 “문제점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제점을 찾아내는 능력 자체 보다는 같은 문제점이라도 색다른 시점으로 접근할 줄 아는 시점 전환 능력이 창조적 기업들의 진정한 성공 비결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레노버(Lenovo)는 중국에서 컴퓨터가 신혼 예물용 가전용품으로 간주한다는 문화적 특이성에서 착안한 지역 마케팅 전략으로 매출을 크게 올렸다. 고객의 실수를 즐거운 경험으로 승화시킨 포시즌스 호텔(Four Seasons Hotels & Resorts)의 세심한 고객상대 전략, 미술관람객들을 고립시키는 오디오 설명시스템을 버리고 스마트폰용 QR코드제를 도입한 MoMA와 캘빈 클라인의 최근 광고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3)놀이하듯 접근하는 여유로운 태도 “문제점 해결”을 외치기보다는 “장난(messing around)과 유희(playing)”를 장려하는 기업 내 문화가 사원간 경쟁심, 협동, 인내, 일하기의 즐거움을 이끌어내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성공한 창업자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창조력이란 한 개인이 아닌 여러 참여자들이 충돌하고 협력하는 동안 생성된 시너지를 통해서 빚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집단적 창조력(collaborative creativity)은 지속적인 혁신을 원하는 기업이라면 채굴해야 할 금광과도 같다.
오늘날 수많은 멸균 음료수가 담겨 팔리는 패키징의 대명사 테트라팩(Tetra Pak)의 예를 보자. 무균 종이포장이나 사면체(tetrahedron) 모양의 우유포장(서울우유에서 생산하는 커피우유의 삼각포리 패키지가 테트라팩의 원형이다)은 노벨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수학적 의문을 실용적으로 응용한 예”라고 칭찬한 바 있다.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마시는 이동적 라이프스타일 추세에 발맞춰 사내 기술개선과 국가 및 문화권별 시장조사 끝에 테이크 아웃형 음료패키징을 출시했고, 곧 업계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자칫 과도하게 진지한 태도로 임하기 쉬운 비즈니스계에서 혁신성을 인정받는 창업자들 중에는 뜻밖에도 미술, 디자인,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킥스타터(Kickstarter), 텀블러(Tumblr),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Instagram), 비메오(Vimeo), 안드로이드(Android) 같은 기업들의 젊은 창업자들이 그런 경우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가 젊을 때 서예에 심취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4)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긴 분량을 할애한 부분은 만들기(Making) 챕터다. 과거 4, 50년간 인류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안정을 거치면서 “손을 더럽히지 않고 돈을 버는” 쾌적하고 편안한 화이트칼라 직종을 선호하게 되었다. 경제 안정기에는 이러한 추세가 당연하지만 최근 경제 침체 시대가 지속되면서 이 전제는 다시금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Y세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양심적 소비주의(conscientious consumerism)”가 유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세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글로벌주의 대신 지역주의(localism), 대량생산소비재의 수동적 쇼핑 대신 직접 만들고 직접 판매하는 DIY 문화 또는 메이커 문화(the rise of maker culture)가 큰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각종 생산 기법을 배울 수 있는 메이크 유(Make U)나 디지털 제작 툴을 알려주는 테크숍(TechShop) 같은 사업이 성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점점 많은 젊은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한 제품을 엣시(Etsy)나 이베이(eBay) 같은 온라인 매장을 통해서 직접 판매하는 사업가가 된다. 스탠포드 대 경영학과가 신설한 기업가 정신 과정이 최근 큰 성공을 거두자 하버드, 컬럼비아, 워튼, 시카고, 토론토 대학 등도 잇따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과정을 신설하는 것만 봐도 새 트렌드에 대한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5)피보팅(Pivoting)이란 과거의 실패를 발판 삼아 성공으로 전환시키는 방향 선회를 뜻한다. 키스 소여의 ‘지그재그’에서 창조의 과정은 갈지자 모양의 반복의 여정이라고 한 요지를 달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에서 창조적인 결실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성공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탐색한 경험과 노고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위치정보 서비스 앱인 Burbn의 실패를 계기로 인스타그램(Instagram) 앱을 탄생시킨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은 가장 좋은 예다.
“인디 자본주의(Indie Capitalism)”의 부상
2009년, 미래학자 폴 새포(Paul Saffo)는 매킨지 앤 컴퍼니 온라인 매거진에서 산업소비주의 경제가 저물고 "창조자의 경제(creator economy)"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제 학교에서도 숫자와 공식을 무조건 외우도록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연결할 줄 아는 기능을 가르쳐서 미래의 젊은이들이 창조자가 될 수 있게끔 준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에 따르면 창조력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치관 - 예컨대 꿈, 희망, 야망 –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마음속 고뇌 같은 부정적인 정서까지도 가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위력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창조력은 더 이상 특출난 유전자를 타고난 운 좋은 소수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늘 활용하는 실용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창조 지능 개념을 통해서 창조력이란 정기적 일상이자 제2외국어처럼 생활적 도구로 정착”되는 날이 손꼽아 기다린다.
결론적으로 창조 지능은 소셜(Creative intelligence is social)!
특히, 21세기 창조분야 전문가들은 과거 “외로운 천재형” 창조 단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가운데에서 빚어지는 “협동창작(collaborative creativity)”을 눈여겨 본다. 경영학 분야에서 창조력을 연구한 권위자 아마빌레(Teresa M. Amabile)는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조직경영 측면에서 협동적 창조를 연구해 오고 있으며, 협동적 창조 분야의 독보적 학자인 키스 소여(Keith Sawyer)는 곧 중국 상하이에서 이 협동창작 이론을 한층 본격적으로 응용할 계획에 있다고 알려졌다.
http://www.penccil.com/gallery.php?p=837051453151
“우리 인간들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협력하고 나누는 가운데에서 창조력을 배운다”고 저자는 말한다(본문 30쪽). “기발한 아이디어와 통찰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세상으로 내보이기까지는 노력과 여러 사람들과의 협력(collaboration)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소액의 지원금을 받거나 소액자본으로 비즈니스 자금을 대출받아 갚아나가는 무담보 소액채출제(microdredit)를 활성화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창업하고 사업을 운영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저자 브루스 누스바움(Bruce Nussbaum)은 ‘비스니스위크(BusinessWeek)’ 지의 디자인과 혁신 칼럼니스트였으며, 현재 파슨스 대학 디자인 전략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 Strategies) 교수로 재직 중이며 ‘Fast Company’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블로그에 기고하고 있다. ‘창조 지능’은 그가 쓴 첫번째 책으로서, 2010년 스탠포드 대에서 열린 ‘디자인의 미래(The Future of Design)’ 컨퍼런스에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의 시대는 저물고 창조력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선언을 구체화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