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비룡소의 ‘zebra’ 시리즈는 그림책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시선을 바꿔 나가고 있다. 이 그림책들은 이야기의 전개 방식부터 책의 질감, 그림의 표현 등을 새롭게 표현하면서, 그림책을 단순히 읽고 보는 것을 넘어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비룡소

‘zebra’ 시리즈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를 시작으로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아오이 후버 코노, 폴란드의 디자이너인 그라슈키 랑케의 작품이 우선 출간되었다. 이들은 모두 전문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기에 오히려 그림책과 예술 작품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작업을 선보일 수 있었다. 한 번 보고 지나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반짝거리는 재치와 상상력을 갖춘 그림책들을 만나보자.

1. 까만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브루노 무나리)

이 책은 브루노 무나리가 1956년에 만든 작품으로,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브루노 무나리의 전시회에도 대표작으로 함께 출품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밤, 작은 구멍 사이로 반짝이는 노란 불빛을 찾아가는 고양이는 그것이 반딧불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것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 반딧불이가 살고 있는 메뚜기나 달팽이 등의 곤충들의 일상을 그린다. 다시 그곳에서 마주한 자그만한 동굴 속을 돌아다니다 보니 밖은 다시 캄캄한 어두워졌고, 반딧불이가 세상을 밝히고 있다.

검정색지, 파라핀 종이, 질감이 거친 종이 등을 사용해 공간과 장면을 전환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까만 밤, 각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의 통일감을 부여하는 구멍과 플랩 등도 책과 잘 어우러진다. 직접 무언가를 만지고, 그곳에서 자극을 받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책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넘나드는 그림책이다.

2. 하얀 겨울 (아오이 후버 코노)

‘하얀 겨울’은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구성된 책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모이고, 후두둑 떨어지는 눈 때문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하얀 눈밭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여러 동물들이 눈밭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점, 선, 면 최소한의 구성요소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 책은 시각적인 즐거움보다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대신 이미지의 배치나 때론 시적으로 느껴지는 문장들은 보는 사람들의 감성을 따듯하게 해 줄 것이다.

3. 하얀 곰 / 까만 암소 (그랑슈카 랑게)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인 그라슈카 랑게의 ‘하얀 곰/ 까만 암소’는 한 권의 책에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하얀 곰은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까만 외투에 까만 장갑, 까만 안경, 까만 나비넥타이 등 까만 소품 등으로 멋지게 변신한다. 한편 흰점박이 까만 암소 역시 자신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약을 먹다가 쓰러지게 되고 결국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리라 결심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4년 폴란드출판협회가 선정한 아름다운 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그림책과는 달리 타이포의 위치나 크기를 자유롭게 바꾸고, 사진이나 드로잉의 배치도 인상적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하얀 곰은 하얀 바탕에 검은 점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재치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