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친난 | 2012-04-05
도시의 풍경은 건축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도시를 여행할 때면 으레 그곳의 명소가 되는 건축물을 둘러보기 마련이다. 그런 건축물을 마주할 때, 절로 나오는 감탄사와 함께 사진 몇 장 찍으며 돌아서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 남게 되는 여정이지 않을까. 안그라픽스에서 출간한 「도시를 읽다」는 조금은 색다른 도시 여행법을 소개한다. 저자 장친난이 30년간 축척한 건축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도시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배경으로 한 도시와 건축물의 유기적 조화로 이야기 된다.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사진제공 | 안그라픽스
‘리딩 시티(Reading City)’, 도시를 읽는다. 저자 장친난이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독특한 도시 체험 방식은 ‘읽는다’라는 동사의 추상적 개념이 불러오는 풍부한 감성과 문화, 역사 등의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마치 한편의 시를 읽어 내려가듯 도시를 차근히 음미하고, 소설의 플롯을 파악하듯 도시의 줄거리를 이해한다.
「도시는 확실히 책을 닮았다. 건물은 글자, 도로는 구절, 마을은 단락, 공원은 삽화에 비유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특히 이를 통해 인간의 현재와 과거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다.」 _17P
책은 친절하게도 도시를 ‘읽는’데 필요한 건축 기초 개념부터 설명한다.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어려움 없이 함께 여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운동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여기서 끄집어 낸 건축 개념은 ‘인지도(Cognition Map)’, ‘피겨 그라운드(Figure-ground)’, ‘랜드마크와 매트릭스’ 등 세 가지다. 인지도는 미국의 도시계획가 케빈 린치(Kevin Lynch)가 만든 개념으로 도시를 방문한 이의 주관적 기억과 첫인상을 토대로 그린 약식지도를 말하는 것이고, 피겨 그라운드는 지도에서 건축물은 검은색으로 칠하고, 나머지 실체가 없는 도시 공간은 여백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신 합리주의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의 이론에서 참고한 것으로 도시의 구성하는 랜드마크와 매트릭스, 즉 상징적 건축물과 그 기원이 되는 ‘모체’ 건축물은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모체란 도시의 성질을 드러내는 기본단위의 건축물을 뜻한다. 물론 이들 이론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책에서 설명해주는 정도만 소화하면, 저자를 따라 가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도시의 첫인상을 기억하고, 랜드마크 건축물을 둘러보고, 도시 곳곳에 잇는 주거지의 모체 건축물에도 가봐야 한다.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경험해보고 가능하다면 여행안내서라도 좋으니 그 도시와 관계된 책 한두 권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런 다음에 그 도시의 특징이 무엇인지, 다슬 도시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보자」 _머리말 중
본격적인 도시 체험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브라질리아, 캔버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모스크바, 멕시코시티, 상트페테르부르크, 홍콩, 싱가포르, 뉴욕 맨해튼, 파리, 카이로, 이스탄불, 그리고 옆나라 일본의 도쿄까지 총 15곳으로 이어진다. 각 도시의 이야기는 건축으로 시작하지만 건축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도시의 탄생과 발전 과정은 물론이고 그곳의 문화와 의미 있는 건축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풀어낸다. 여기에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사진과 함께 덧붙이며 보다 풍성한 읽을거리를 마련한다.
「로스앤젤레스를 산문집에, 시카고를 역사소설에, 멕시코시티를 백과사전에 비유한 것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시를 연상시킨다. 특히 분위기 잡기 좋은 낭만시가 떠오른다.」 _155p, 상트페테르부르크 中
15곳 도시 여행이 끝나면 그 여운은 저자 장친난의 도시 철학이 달래준다. 여기서 그는 도시의 ‘결과’인 랜드마크가 아닌 도시의 ‘원인’이 되는 모체 건축물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리딩 시티’의 핵심은 전통 맥락을 찾는 것이며, 현대 도시에서 모체 건축물은 이상적 도시를 향한 생명력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유다.
도시를 ‘읽는’ 재미. 그것은 책에 소개된 세계 유명 도시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듯 하다. ‘리딩 시티’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여행법은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한껏 풍성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