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건수 | 2011-08-01
‘작품’으로써의 사진이 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지금 이 시간도 수많은 ‘사진가’들이 엄청난 장비를 들고 산과 들을 헤맨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구도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기술을 구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일에 있어서, 정말 기술이 전부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4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진과 인연을 맺어 온 저자 최건수는 스무 명의 사진가들과의 만남을 담은 책 ‘사진을 바꾼 사진들’을 통해 사진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자료제공 | 시공아트
예술은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발전해 왔다. 예술만큼 ‘삐딱함’이 무기가 될 수 있는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다.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사진가 20명이 이를 증명해 준다. 무모한 도전, 기발한 상상력으로 훌륭한 작품을 낳은 이 사진가들은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소외된 지역에서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는 강홍구, 고독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성을 쌓고 사진과 조각을 결합한 김병걸,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들고 비너스 조각을 뒤튼 데비한, 현실과 꿈의 모호한 경계를 사진과 회화, 사진과 영상의 색다른 결합으로 표현한 유현미, 끝없는 정체성의 탐구를 이미지로 바꾸는 탁월한 이야기꾼 이상현, 인화지를 직접 만들어 사진과 회화의 아우라를 모두 표현하는 임양환, 화선지와 먹에서 뛰쳐나온 자유로운 산수화의 대가 임택, 조각조각 오려낸 사진의 파편들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장승효, 텅 빈 어둠에서 가득 찬 세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정동석, 느린 셔터 속도로 새로운 초상사진을 만드는 천경우.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에 열거한 열 명은 ‘상상을 탐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1부를 장식하는 사진가들이다. 이들은 상상력이 결여된 기술 위주의 사진을 넘어서 사진과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장르나 기법에 한계를 두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들은 그들의 작품에 특유의 아우라를 선사한다.
1부의 사진가들이 색다른 방법론으로 사진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면 2부의 사진가들은 기존의 문법을 충실히 고수하며 그들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읽는 사람들’이라는 제목 아래 모여있는 열 명의 사진가들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그 이상의 비범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이 녹아 있는 제주도의 오름을 미학적으로, 또는 솔직하게 사진에 담은 고남수, 꾸미지 않고 사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찍는 구본창, 대나무에서 한국인의 의식을 발견한 김대수, 지루한 풍경에 초점을 맞춰 뜻밖의 재미를 주는 김윤호,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부조리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주는 노순택, 별것 아닌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민병헌, 현실과 허구의 공간을 뒤섞어 무의미한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염중호, 하잘것없는 대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진을 만드는 이정진, 빛으로 영혼을 표현한 주상연, 함께 있지만 홀로 있기를 즐기는 고독한 분위기를 사진에 담는 최병관이 바로 그들.
오랫동안 사진을 찍었던 어떤 사진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각이라고. 언뜻 볼 때 평범한 구도에 평범한 피사체를 담는다 할 지라도 그들의 사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시각의 차이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작가 스무 명의 삶과 작품, 일상을 편안하게 기술하며 사진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사진은 그 시작점부터 회화와 끊임없이 비교되어 왔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일회성과 순간성은 회화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평가절하되기 쉬운 것이었기 때문. 이제 이 책, 그리고 책 속의 담긴 스무 명의 작가의 예술혼에 귀 기울여 보자. 그들의 명료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사진이 가진 또 다른 깊이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