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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 쩡판즈의 ‘가면’을 벗기다

2012-01-03


“혁명의 완성인가, 시작인가?” 두려운 눈으로 미래의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매년 10월, 미국 미술정보사이트 아트프라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대작가 (1945년 이후 출생자)를 발표한다. 올해의 ‘10대 작가’는 다음과 같다 : (1위부터) 장 미셀 바스키아 (미국), 쩡판즈(중국), 제프 쿤스(미국), 장 샤오강(중국), 천이페이(중국), 리처드 프린스(미국), 왕이동(중국), 무라카미 다카시(일본), 데미안 허스트(영국), 조우 춘야(중국). 열 명중에 과반수를 넘는 여섯 명이 동양 작가이며, 그 가운데 다섯 명이 중국 작가이다. 이러한 통계를 앞에 놓고, 서양 미술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후로 두각을 나타낸 중국 작가들의 위세가 이제 최고조에 이르러 서양미술사의 혁명을 완성한 것인가, 아니면 시작일 뿐인가? 현대미술의 메카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질 것인가? 이제 서양화가 동양인들에 의해 좌우될 것인가? ‘서양화’는 유화로 그려진 ‘동양화’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글 | 심은록 미술평론가·철학박사


서양인들이 이러한 현상을 ‘혁명’으로 느끼는 이유는, 마치 서양화의 ‘탈’을 쓴 동양화처럼, 중국작가들의 작품에는 동양의 정신이 흠씬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구대륙에서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를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 혹은 반란으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혁명의 선두에는 쩡판즈(Zeng Fanzhi, 1964~)가 있다. 그가 살아있는 작가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아트프라이스의 통계가 발표될 때, 공교롭게도 그의 전시가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 in Hong Kong, 9월 24일-11월 5일)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리처드 프린스 등 스타 작가들을 키워낸 세계 최고의 역량 있는 갤러리다. 이번 전시는 그의 삶과 예술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특히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그의 초기작품들부터 최근작까지 볼 수 있는 ‘미니 회고전’이었다.


생존 작가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스타작가란 도대체 어떨까? 할리우드 스타들을 언뜻 떠올리며, 가을이 붉게 익어가는 홍콩에서 쩡판즈를 만났다. 그는 자신에게 “아시아의 최고” 혹은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을 모르거나,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깊은 숲 속의 호수 또는 높은 산의 만년설과 같이 잔잔하고 맑고 온화했다. 높은 산정에 쌓인 눈처럼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순수함이 보이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처럼 따스했다. 인터뷰 내내 입 끝에 매달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와 한결같은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듯한 몸에 깊이 배어있는 예절과 겸손함이 있었다. 하얀 눈 아래로 거대한 산정이 드러나듯이, 그의 그림에도 도회적인 하얀 ‘가면’아래로 굵은 힘줄을 가진 원초적인 붉은 몸이 드러난다. 쩡판즈의 <가면> 뒤에 있는 어떤 마력이 수많은 미술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걸까?

sim) 당신을 “가면 작가″라고 많이 부른다. 인터뷰 때마다 가면의 의미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을 텐데도, ‘가면’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분분하다. 가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
zeng) 지적한 대로, 많은 미술 관련자들이 나의 작품에 대해 아주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우선 <가면> 연작은 제 많은 작품 가운데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다. 물론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가면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가면> 작품은 제 안의 내면, 즉, 고유한 경험과 추억, 세계에 대한 관점을 그린 것이다. 관람객들도 <가면> 작품을 보면서, 그들 자신의 내면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예술가의 역할이란, 이처럼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에게 생각 할 수 있는 하나의 부호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본다.


sim) <가면> 연작 이후에, <초상화> 연작으로 들어가면서 가면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왜 가면을 벗었는지?
zeng) 10년 동안 <가면> 연작을 해왔다. 그래서 저 역시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 ‘가면을 벗은 얼굴’ 역시 또 다른 하나의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전환된 가면’이라는.


sim) 당신의 최근 조각 작품들 가운데, 예를 들어, <천 아래 가
려진 동정녀 마리아>는 대리석으로 된 벗겨낼 수 없는 천으로 덮여 있다. 이 천은 또 다른 의미의 가면이 아닌지?
zeng) 이 작품은 작년에 한 교회 내에서 제작되었다. 교회라는 환경에 있었기에, 나는 조각상을 직접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천 조각을 이용해 덮었다. 마치 내 과거를 가면으로 덮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천 조각으로 진실을 덮었다. 이 천 역시 가면과 같은 의도를 가졌다. 덮어놓음으로, 즉 가려놓음으로써 오히려 관람객들에게 생각을 하게한다.

sim) <가면> 연작 이후, 두 개의 붓을 동시에 사용하며 그림을 그리신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zeng) 한 손에 두 개의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이 중 하나의 붓이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붓은 이 그림을 망친다. 이로써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 표현 될 수 있다. 한 쪽에서는 창조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괴를 하니 모순된 상황이 연출된다. 이러한 창작 과정과 사고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이다.

sim) 현대의 많은 작가들은 더 이상 ‘영감’(靈感)을 믿지 않는다. 혹시 영감의 존재를 믿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온다고 보는가? 그리고, 당신이 추구하는 주제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
zeng) 나는 고유한 경험, 생활, 현시대의 사회 변화 등 매우 다양한 부분에서 영감을 받는다. 더욱이 매 10년마다 발생하는 중국의 거대한 변화는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한다. 또한 작업할 때,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특히 고전 음악을 많이 듣는다. 전통적인 경극(京剧,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 연극)이나, 고금 (古琴, 7개 현으로 이루어진 중국 현악기) 연주를 들으며 작업하기를 좋아한다. 음악은 제게 다양한 리듬을 제공하며, 저의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내면, 전통문화와 정신의 결합 같은 것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이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주제들이 저의 고유한 방법에 의해 회화로 재현된다.

sim) 주제를 벗어나는 질문이지만, 우리 시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zeng) 현시대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적 언어인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 한 사회와 다른 사회, 민족과 다른 민족들의 조화로운 관계를 도울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예술은 아름다운 희망을 주기에, 사람들은 예술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매 10년 마다 너무 달라졌고, 그 때마다 과거를 부정해야 했다”고 쩡판즈는 말했다. 변화를 겪는 10년마다, 그는 가면을 바꿔 쓰듯이, 옛 정체성을 버리고 새 정체성을 작품에 재현해 왔다. 그의 작품이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양한 가면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 속에 있는 우리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가면 뒤에 깊이 감춰졌던 우리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하기 때문이다. 쩡판즈는 가면을 통해, 우리가 오랫동안 망각해왔던 가면 뒤의 ‘얼굴의 존재’를 부단히 일깨우고 있다.



중국 3대 작가로 알려진 쩡판즈(Zeng Fanzhi)는 1964년 생으로, 후베이 미술학원 유화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2007년 싱가포르 미술관(Singapore Art Museum)과 쌩떼띠엔느 현대 미술관(Mus?e d’Art Moderne de Saint-Etienne de Metropole) 고디아 재단(Fundacion Godia) , Barcelona, (2009), 불가리아에 있는 국립외국미술관(National Gallery for Foreign Art), 락번드 미술관(Rockbund Art Museum)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2002년 광저우 트리엔날레(The 1st Guangzhou Triennale)와 2009 베니스 비엔날레(The 53rd Biennale di Venezia) 등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해왔다. 그의 작품은 11월 5일까지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와 베니스 프랑수아 피노 재단(Francois Pinault Foundation)에서 지난 11월까지 열렸다. 현재 작가는 베이징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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