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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포토저널리즘, 나만의 색깔로 채운다

2011-11-09


구술 | 조우혜
정리/사진 | 포토라이터 이상엽


포토저널리즘에 대해 : 특이하게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로 살고 있다.

그냥 사진가로 불렸으면 하지만 주로 저널 분야에서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도 상관은 없다. 수입의 80퍼센트는 ‘타임 매거진’과 ‘뉴욕타임스’의 어싸인먼트를 수행하면서 발생하고, 나머지는 ‘온아시아’ 등 에이전시를 통한 스톡이미지 판매에서 얻는다. 팔리는 대로 계약에 의해 일정 부분이 분배되는 방식이다. 판매 수익은 작지만 열심히 사진을 올리면 그것 자체가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싸인먼트가 들어오기도 한다. 카메라를 잡는 시간은 한 달에 일주일 정도. 나머지는 논다. 하지만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일주일을 위한 충전시간이다.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활동하기 때문에 ‘게티이미지스’나 ‘AP’, ‘감마’ 등과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장점 대신에 게을러지기 쉽다.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부담이 좀 있다.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활동하는데 큰 부담은 없다. 우리나라는 신문사 사진부 시스템이 강해서 “포토저널리즘 판에서 어떻게 활동할 수 있냐”고들 하지만 얼마나 집중해서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프리랜서로서의 역량이 발휘되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젊기 때문에 통신사나 에이전시의 스태프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계속 사진을 해나가는 것 아닐까? 페르피냥 사진페스티벌에서 본 할머니 사진가처럼 손녀를 데리고 나와 담소를 나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용산에 대해 : 취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다던데.

용산참사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때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인 듯하다. 찍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었던 것도, 그것을 사전에 인지한 것도, 마음의 준비가 된 것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벗어나야지’하는 판단할 틈도 없이 목격하고 말았다. 왜 갔을까 후회했다. 그리고는 이 경험을 어찌 정리해야할지 많이 고민했다. 다행히 ‘빛에 빚지다’라는 달력을 만들어 용산대책위를 도왔다. 그리고는 마음에 묻어두고 ‘잊겠지’하는 생각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풀린 것 같다.

사진가마다 저 나름대로의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욕심만 앞서서 큰 걸 찍어보겠다고 이스라엘까지 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와 용산참사를 봤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화를 못시키니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사건이 워낙 큰 사안이라 ‘시카고 트리뷴’처럼 큰 신문에도 실리고, 돈도 벌었지만(그래봐야 원고료 정도지만) 사진가 스스로 테스트를 거쳐야 그 그릇을 아는 듯하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은 큰 사건 현장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무작정 가서 뭔가 되겠지 하는 심보로는 안된다. 그것이 반사되어 스스로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듯하다.


사진에 대해 : 어떻게 살아왔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말이나 글보다 사진을 잘한다. 소경이 귀가 잘 들리듯, 감각적인 측면에서 시각 이미지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내가 하는 포토저널리즘은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사실 대학에서는 상업사진을 했다. 포토저널리즘을 하고 싶었지만 대학 1학년 겨울에 선배들과 노숙자를 찍으러 갔다가 상처받아 포기하고 말았다. 서울역 앞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노숙자를 위한 행사가 열렸다. 그들을 거리에 세워놓고 번호로 부르는 것을 보고는 쇼크를 먹었다. 그리고는 예쁘고 좋은 것만 찍기로 했다.

3학년 때 광고 파트를 지원하면서 또 갈등했다. 이쪽도 역시 사람을 찍어야 했는데, 힘들었다. 그래서 건축사진을 했다. 졸업하고 나서 대학원에서도 건축사진을 했다. 그렇게 2학기를 마치고, 우연한 기회에 한국판 ‘지오’의 편집장인 송수정씨를 만나 외국 사진가의 어시스턴트를 맡게 됐다. 이란 출신의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인 레자였다. 그때 레자의 연락처를 받아놓고는 언제고 파리로 갈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파리에는 레자가 운영하는 사진 에이전시인 ‘웨비스탄’이 있다. 그곳에서 인턴쉽을 했다. 3개월 동안 열심히 필름만 정리했다. 레자의 사진은 정말 많아서 그것을 A, B, C컷으로 분류하는 것만도 벅찼다. 하지만 어떻게 셀렉트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매체마다 셀렉트의 기준이 달랐고 A, B, C컷의 기준도 달았다. 그러다 디지털 후보정 작업에 참여했다. 사실 프랑스의 디지털 작업은 느렸다. 내가 단축키만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더니 ‘허걱’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로 파리에서 2년 반을 체류하고 돌아왔다. 이때는 내가 변했는지, 아스팔트에서 활동하는 현장 포토저널리스트들과 어울렸고, 자연스레 나 역시 외신을 주로 다루는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됐다.



스타일에 대해 : 저널리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진과 전시되는 사진이 달라 보인다.

스타일로 규정할 수 없다. 아마도 태안 원유 유출사고 때 사진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6×6 핫셀블라드 포맷이 내 작업과 맞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점만 동의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풀린다. 이런 방식, 저런 방식을 쓰든 최대의 효과는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스타일에 가두지 않고 많을 것을 시도한다. 어떤 방식을 써야 상대방에게 효과적일까 고민한다. 주로 활동하는 외신에 비해 국내 인쇄매체는 상대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사실 써주질 않으니) 전시공간을 활용하는 것일 뿐, 아직은 내 방식이 아닌 듯하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개인전은 해보고 싶지만 말이다. 만일 전시장에 내 사진을 제대로 건다면 A부터 Z까지 내 색깔을 다 내보이고 싶다.

하지만 내게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매체를 잃지 않는 것이다. 몇 개 되지 않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소통의 통로다. 포토저널리즘을 커머셜로 폄하하기도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예술도 대중에게 무시되면 별거 아니듯, 예술이냐 커머셜이냐 저널이냐 하는 것은 결국 대중과의 관계에서 풀린다. 조금 더 내가 더 많이 묻어있는 사진이 중요하다.


젊음에 대해 : 홀로 사는 여성사진가의 조건은 뭔가?

일주일 일하고 3주 놀았으면 좋겠다. 나름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황금비율이다. 혼자 살아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커플을 이루고 결혼을 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 삶에 만족한다. 조금 더 수입이 늘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홀로 산 지 6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일을 제외한다면 요리를 잘한다. 혼자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용산 건이 있고 난 후로는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차차 나아지겠지만 요즘은 혼자 생활하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거리를 찾는다. 특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어서 자격지심 같은 것도 있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도 느낀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 등에서 나만의 질문거리를 찾아 해결하는 나만의 공부 방법을 찾는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나만의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나?



미래에 대해 : 2010년에는 무엇을 할 건가?

서른두살이다. 학교를 나온 뒤 이러저런 생활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한 지 3년 반 정도 되는 듯하다. ‘월드프레스포토’에서 마련한 ‘마스터클래스’에 1차 18명 안에 들었다가 최종 선발에서 미끄러졌다. 여기에 선발되면 워크숍과 1년간의 개인작업 기회가 주어진다. 다시 한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앙코르와트 포토 페스티벌’의 부대행사인 워크숍에 강사 제안을 받았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2009년 민통선과 DMZ 취재를 했는데 이 취재를 계속해야겠다. 민통선 안의 마을을 취재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안 뚫린다. 파리에서 막연하게 우리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잘 통할 것 같은 소재를 떠올렸을 때 그것은 ‘북한’이었다.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지리적으로 북한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이번 DMZ 취재는 나름 인맥을 넓혔다는 기쁨이 있다.



젊은 포토저널리스트 조우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바로 질러 들어갈 것을 꽤나 우회했다는 느낌도 든다. 대학 시절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청년이 이제는 꽤 완숙한 사진가로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미래에 기대를 갖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무척이나 회의주의자들이 많은 것이 요즘 다큐멘터리-포토저널리즘 판이다. 회의는 늘 사물을 보는 건강한 관점이지만 회의주의는 판을 지치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판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우혜의 활동이 반갑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활약할 젊은 포토저널리스트를 기대해 본다.




조우혜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재학 중에 파리로 건너가 사진에이전시 웨비스탄(Webistan)에서 수습 생활을 거친 후 2006년 겨울에 귀국, 현재 서울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프리랜스 사진기자다. ‘뉴욕타임즈’, ‘타임’ 등과 계약, 한국의 사진을 기고하고 있으며(feature story assignment photographer), 방콕의 사진에이전시 온 아시아(OnAsia) 소속 사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3년 (갤러리 La Mer), 2008년 (문화일보 갤러리), 2009년 <멈춘 전쟁> (전쟁기념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2003년 한국광고사진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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