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7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보통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곤 한다. 게으른 천성 때문인지, 그 자세가 아니면 책을 읽는 게 불편하다. 자주 즐기진 못하는 1시간 남짓한 독서시간, 내 방에선 늘 음악이 흐른다. 주 메뉴는 매일같이 듣진 않지만 언제 들어도 편안한 음악들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처럼 심오하거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처럼 변화무쌍한 음악은 잘 틀지 않는다. 넘어가는 책장소리처럼 술술 흐르는 편안한 음악을 듣다보면, 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과연 이 음악들은 들리는 것처럼 편하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 밴드 결성 10년 만에 1집 앨범을 발표한 라이너스의 담요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큰 실례다. 편하게 들어줬으면 하는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월간지처럼 1달이면 충분하다는 디지털 음원 시대에 공들인 앨범 하나 완성하는 게 욕심만큼 쉽지 않다. 아니다 싶은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긴 시간만큼 늘어나는 비용은 자비로 해결하면서 말이다. 그런 인내의 결실일까? 담요만의 팝을 완성시킨 1집 ‘Show Me Love'은 평범하지 않다. 예쁘장하고 가벼울 것 같지만, 진지하고 섬세하다. 라이너스의 담요가 음악을 대할 때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도 담요 특유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글, 인터뷰 | 윤태호 VMSPACE 에디터
자료제공 | FAB3 Records (@FAB3_records)
앨범 ‘Show Me Love'의 발매를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공들인 앨범이라고 들었어요. 6년만의 새 앨범이고, 첫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첫 EP는 밴드 활동의 결과물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한 번 내놓겠다는 개념이었는데,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담요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기대를 알게 됐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들을 어떻게 해야 더 '잘' 들려드리고 보여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첫 EP때보다는 훨씬 책임감을 많이 느꼈죠. 작업 기간도 길었고 발매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않아서 앨범이 나왔을 땐, 인생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를 드디어 해치웠다는 기분이었어요. 라이너스의 담요 첫 공식 뮤직비디오도 제작했고요.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와 검정치마(조휴일)도 앨범에 참여했죠. VMSPACE와 인터뷰를 했던 분들이라 이런 인연이 있나 싶었어요. (웃음) 그분들이 음악적으로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소울스케이프는 이번 앨범의 10번 트랙 'Music Takes Us To The Universe (믹싱: 조월)'를 제외한 모든 곡의 믹싱을 담당하셨고, 사운드 수퍼바이저로서 노래에 어울리고 담요들이 원하는 사운드를 만드는 '소리 장인'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번 음반은 옛날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빈티지 사운드를 내고 싶다는 콘셉이 확실히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구현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소울스케이프 형님을 찾아가 함께 테스트 믹싱을 해봤는데, 마치 그동안 모르는 길에 뚝 떨어져 있다가 고성능 내비게이션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 뒤로 소울스케이프 형님과 오랫동안 대화하고 연구하면서, 빈티지하게는 만들되 어느 정도가 좋을지 중도를 찾는 과정이 일 년 정도 이어졌어요. 밴드의 요청을 디테일하게 수용하면서도 애정을 담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담요에게 너무나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조휴일씨는 앨범 수록곡 중 'Gargle'의 남성 보컬을 맡아주셨습니다. 밴드가 평소 검정치마의 팬이었기에 2009년 9월경에 검정치마 공연장을 찾아가 조휴일씨 얼굴을 보며 직접 섭외 요청을 드렸습니다. 휴일씨의 피처링이 결정되고 연진이 휴일씨께 바치는 가사를 썼습니다. 가사에 Holiday가 들어갑니다. (“I Will Do Anything To Make Your Days Holidays.” 라는 가사입니다.) 그 뒤 진행된 녹음에서 휴일씨의 나른한 목소리는 ‘Gargle’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녹음한 뒤에 많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음반이 발매됐고, 휴일씨는 담요 음반을 들어보시고 찬사로 가득한 코멘트까지 써주셨어요.
“이제는 즐겁게 듣는 일만 남았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올해에 누가 앨범을 내건 (냈건) 담요 속에 묻혀 버릴 것이다.” (조휴일, 검정치마)
지난 9월 17일에 뮤즈 라이브 홀에서 열린 ‘라운드 앤 라운드’를 저도 다녀왔어요. 그날 관객들이 좀 조용한 편이었는데, 담요에게 보내준 호응은 대단했던 것 같아요. (웃음) 그 날 좋은 반응을 얻었던 ‘Gargle'은 이색적인 결혼식 축가가 될 것 같았어요. 함께 부르면 행복한 느낌이 더 크게 전달되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실 건가요?
관객 분들께 함께 노래해달라고 요청하는 건, 어떻게 공연해야 보시는 분들이 더 즐겁게 기억하실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시작된 거였어요. 가사가 영어인 노래들이 많다 보니까 떼창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아서, 좀 더 쉽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하자는 생각이에요. 함께 불러주실 때 공연하는 저희도 행복해져요. 앞으로도 함께 많이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존 곡들을 새롭게 편곡한 경우도 있는데, ‘Walk'는 곡이 더 길어졌어요. ’Picnic'과 ‘Labor In Vain'은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느낌이었어요. ‘Misty'와 ’고백‘, ’Stop Liking, Start Loving' 같은 느린 곡들도 좋았습니다. 변화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예전 음반에 수록된 곡들의 녹음 상태나 편곡이 불만족스러워서 다시 해보고 싶었어요. 최근의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예전 곡들이 음반과는 편곡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 녹음을 새로 해보고 싶었죠. 밴드가 현재의 두 멤버 - 연진, 상준으로 구성된다는 게 예전 음반들과 다른 변화가 생기는 지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게 될지 저희도 정확히 예상할 순 없어요.
저는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와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이 합작한 ‘Painted From Memory’ 앨범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벌써 12년 전인데, 그 때 버트 바카락을 처음 알게 됐어요. 연진씨는 2006년에 버트 바카락 송북 앨범 ‘Me & My Burt’를 발표하셨죠. 참 좋은 앨범이었는데,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연진. 버트 바카락 송북은 예전 담요 소속사인 비트볼 레코드에서 기획, 제작한 음반이에요. 당시 비트볼에서 야심찬 송북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첫 송북으로 버트 바카락을 선택하면서 저 역시 메인 아티스트로 선택해주셨죠. 이 음반을 어떻게 작업할까를 고민하던 이봉수 사장님이 글래스고의 BMX Bandits와 함께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셔서, 제가 글래스고에 몇 달 머물면서 작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음반은 BMX Bandits의 더글라스 스튜어트(Duglas Stewart)와 펄 피셔스(The Pearlfishers)라는 밴드의 리더인 데이빗 스콧(David Scott) 아저씨의 공동 프로듀싱으로 제작됐는데, 버트 바카락의 노래들을 제 음악의 소녀스러운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콘셉이었어요. 제가 선곡하고 편곡 아이디어를 내면 거기에 맞춰 수많은 훌륭한 뮤지션들을 섭외하고, 그 분들이 오셔서 녹음하시고 대화도 나누고, 함께 공연도 하고... 너무 재밌었어요! 베이스를 연주하신 빌 웰스(Bill Wells), 기타를 연주해준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스티비 잭슨(Stevie Jackson), 함께 노래해 준 바셀린스(The Vaselines)의 유진 켈리(Eugene Kelly),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의 노만 블레이크(Norman Blake) 등 훌륭한 뮤지션들이 참여하셨고 그 속에 제가 있는 게 너무 신기했죠. 모두가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저를 돌봐주셨어요. 짧은 기간 동안 음반을 완성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타국 생활의 어려움도 없진 않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빛났고, 그리운 순간들입니다.
올해로 5주년인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출연하실 예정인데,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들과 마주하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관객 분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다 잘 보이진 않아서 작은 공연보다 마음이 편할 때도 있지만, 큰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면 소리나 모니터링을 제어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좀 부담되기도 해요. 이번 GMF 무대에서 공연을 잘 하고 싶어요. 많은 호응 부탁해요.
담요가 음악 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상준. 저는 그저 하루하루 무엇을 해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요.
연진. 저는 마음의 평화를 순간적으로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에 관심이 있어요.
올해 발매된 앨범 중에서 담요가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노래를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연진. 검정치마의 2집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상준. 아직 발매되진 않았지만, 곧 발매될 스트라이커스(The Strikers)의 새 앨범을 추천합니다.
요즘 음악 차트를 보면 취향은 단순하지만, 장르 구분은 더 복잡해진 것 같아요. 담요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고, 각자에게 추억을 줄 수 있는 노래가 좋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그런 노래라면, 장르 구분도 무의미한 것 같아요.
해외에서 앨범 발매나 공연을 제안한다면 활동하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전 앨범들이 일본이나 영국에서 라이선스 됐고, 이번 앨범도 해외 레이블 몇 곳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꾸준히 영어로 된 곡들을 만들어 온 만큼 해외 진출은 필수라고 생각하고요, 라이너스의 담요가 월드와이드 사랑을 받으면 좋겠어요.
2집 앨범은 조금 빨리 만날 수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크고 작은 공연들이 연말까지 쭉 이어질 계획이고, 공식 홈페이지에 오시면 공연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지금 저희는 비트볼 레코드와 스티키 몬스터 랩(Sticky Monster Lab)이 함께 만드는 사운드트랙에 들어갈 곡을 작업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부지런히 작업해서 더 많은 노래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조금 느리더라도 즐겁게, 오래오래 좋은 음악 들려주시길 바랄게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희도요. 감사합니다. (웃음)
제작자로서의 바람은 이 사랑스러운 노래들이 막 연애를 시작했지만 시큰둥한 상대에 화가 나있는 여자아이와 모든 것이 지루하기만 한 남자아이가 같이 투덜거리며 맥주를 마시는 서울 어느 한적한 술집에서 무심하게 배경음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 뿐입니다. (신현호, FAB3 Records 대표)
밴드 공식홈페이지 http://linusblank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