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7
이제 또 한 명의 스타 작가의 출현을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아이들의 눈망울은 우는 듯이, 웃는 듯이, 무엇인가를 호소하듯이 관람자의 응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이컨텍의 절박함에 답할 겨를도 없이 어느 샌가 블랙홀 같은 동공 속으로, 전시장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에디터 | 아트앤컬렉터 임훈아
사진 | 정나연
박대조 작가는 돌 위에 그림을 그린다. 터키 대리석과 황옥 등이 그의 캔버스이다. 그는 평면으로 다듬어진 돌 위를 한 점 한 점 쪼고 긁은 후, 먹으로 틈을 메우면서 이미지를 완성한다.
순수한 ‘어린 아이’는 ‘돌’이라는 자연성과 합일되면서 영원을 얻기도, 혹은 더욱 괴기스러워지기도 한다. 순수 속에 감추어진 잔인함, 평화로 위장된 문제적 상황과 같은 인간의 다면성을 드러내는 것일까, 빛을 투과하는 돌 표면에서 알록달록한 조명과 함께 명멸을 반복하는 아이의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이 반어적이며 그로테스크하다.
기자는 그가 한학과 동양미학에 매우 깊은 조예가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출발은 놀랍게도 문인화였다. 처음으로 문인화를 그리기 시작한 때가 초등학교 4학년. 문인화에 반드시 필요한 시제詩題를 쓰기 위해 서예를 시작했단다. 왕유의 ‘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대로 그는 문인화와 서예의 세계에서 유년과 청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돌에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한 지인의 집들이 선물로 그날도 어김없이 산수화를 그려 멋지게 포구까지 해서 가지고 갔다. 그러나 막상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새 집에 걸린 자신의 그림이 공간과 소통되지 않음을 목도하고는 심한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수묵이라는 매재는 포기하지 않되, 돌을 끌어들여 작품에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불어넣었다. 대리석의 냉담하고 고급스러운 질감과 수묵의 전통성이 만난 최초의 실험이었다.
‘인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고발적이며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구체관절인형이 기모노를 입고 피눈물을 흘린다. 동공 안에는 독도가 아로새겨져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 진리를 왜곡하는 도착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표현했다.
전시장은 뉴스릴처럼 숨막히게 돌아간다. 아이들의 눈동자 안에는 9.11테러의 참사현장, 팔이 잘려지는 전쟁, 핵구름 등 현재의 사건사고가 벅차게 진행되고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순수한 아이들의 맑은 이미지. 이들의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과 긴장감이 동공에서 응축되어 정점을 이루다가 거대한 빅뱅처럼 폭발적으로 발화한다.
눈동자에 강조점을 두시는 이유는요?
고개지의 화론에 ‘전신론傳神論’이라 하여 사물의 정신과 본질을 전달해야 한다는 게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눈동자이지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동자는 본질 표현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인형을 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인형은 아이의 순수함을 닮았지요. 무기체를 유기체화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형입니다.
인형과 아이의 눈동자 속에 현대 사회의 이슈들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 다층성의 울림이 매우 크게 다가옵니다.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셨는지요?
예술은 동시대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동시대의 문화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그리고 숨겨져 있는‘진리’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순수하다고 여기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현실의 본질을 들추어내고자 했습니다. 여기에는 공포에 질린 눈, 관망하는 눈, 침울한 눈, 행복한 눈 등 다양한 표정이 있습니다. 그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하이데거가 반고흐의 ‘구두’에서 진리를 발견했듯이요.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은 절대금기인 줄 알았는데, 박대조 작가는 작품 표면을 손으로 슥슥 문대며 웃는다.
“제 작품은 돌이라 만져도 됩니다. 영구적이죠.”
예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는 진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구도자와 같았다. 작품 속 아이들을 꼭 닮은 천진난만한 미소, 열정적이고 힘찬 포스, 골똘히 심취한 철학의 세계까지..., 우리는 이제 또 한 명의 스타 작가의 출현을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