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7
런던 사우스 뱅크(South Bank)에 위치하고 있는 바지 하우스(Bargehouse)에서는 매년 한국 작가들의 그룹전시가 열리고 있다. 4482/SASAPARI라는 이름의 이 전시는 영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지난 2007년 10명의 유학생들이 ‘THE OPEN’이라는 타이틀로 뉴몰든(NewMalden)에서 개최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전시공간이 없었던 런던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예술적 열정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모여 만들었다는 4482/SASAPARI. 그 의미 있는 전시를 기획한 중심에는 아티스트 배찬효가 있었다. 사진을 전공했지만, 예술의 의미를 알고, 저널리스트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꾸게 되었다는 배찬효.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예술세계와 4482/SASAPARI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글, 인터뷰 | 이근혜(khleearc@naver.com)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저널리스트에서 아티스트로
배찬효의 원래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한국에서 포토 저널리즘으로 대학원까지 마치고, 신문사 사진기자로도 활동했던 그가 런던에 온 이유도 부족한 사진 공부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저널리스트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슬레이드 미술 학교(Slade School of Fine Art) 석사과정에 들어간 후 맞이한 첫 번째 과제가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계기는 첫 과제 평가에서 던져진 담당 교수의 질문이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들의 방을 담을 사진을 본 교수는 그에게 사진 테크닉이 아닌 아이덴티티(Identity)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아이덴티티가 있었으면 좀 더 소통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말이 큰 충격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그저 포토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단순한 사실을 찍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예술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날입니다.”
이후 예술이 하고 싶어진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을 통해 어떤 세상이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에 빠졌다. 그리고 막연했던 고민의 답이 조금씩 명확해 짐에 따라 예술가로서의 삶을 확신하고 저널리스트의 꿈을 접게 된다.
동양남자의 소외감을 비추다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놓는다. “저는 주로 스스로에서 영감을 받아요.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들에서부터 고민을 하고, 그것들을 소통적 가치로 끌어가는 거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힘들지만 이겨내야 해요. 예술을 장난이 아니거든요”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자아에 대한 성찰로 그의 예술은 시작된다.
2007년 발표한 배찬효의 첫 프로젝트인 ‘Existing in Costume’의 작품들은 소외감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 영국이라는 낯선 문화 속에 던져진 동양남자의 낮은 존재감과 처량함의 이야기, 소외감은 20대 후반 건너온 작가 자신의 상황이기도 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본래의 성(性)인 남자가 아닌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동양남자에 대한 편견과 동양은 여성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서양 문화에 대한 한 이방인의 유희적 표현이자 슬픈 자화상으로 그가 스스로 작품 속으로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문화의 차별과 차이를 성의 전환이라는 비틀기와 뒤집기의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다.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13~19세기 유럽의 복식은 가장 서양다운 문화를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다. 복식으로 인해 작가는 마치 서양문화에 완전히 융화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수묵화가 그려진 부채나 동양인 피부색으로 칠해진 손 등에서 작가의 본연적 정체성, 즉 동양의 정서를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작품 속 동양적 표현)들은 제가 잡고 싶은 것들이 예요. 다른 공간, 다른 시대에 다른 이성이 되어서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영국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 예요. 본연적인 존재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잡고 있는 거죠. 군번 줄, 상투, 소주 등을 잡고 잇는 것들도 있어요.”
‘Existing in Costume’의 주제는 그의 또 다른 작업인 동화책 프로젝트, ‘Fairy Tales’에서도 이어진다. 2008년부터 작업한 ‘Fairy Tales’는 동양남자의 소외감을 제국주의가 시작될 때의 역사에서 오는 편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말한 동양을 바라보는 여성적 이미지, 개발과 개척의 대상,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 등 제국주의 당시 동양에 대한 편견들. 동화책은 이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차용된 수단이었고, 그가 선택한 동화들 속에는 하나 같이 권력과 신분의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왕이 들어간 이야기와 전환점이 있는 동화책을 골랐어요. 신데렐라 같은 경우는 신발을 신느냐 안 신느냐인데, 신으면 전환점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계급이 되는 거잖아요. 그 전환점의 컷을 선택을 한 거예요.”
작가와의 짧은 대화로 본 4482, 그리고 예술가
Q. 영국과 한국의 작업 환경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한국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문화를 갖고 있는 공간입니다. 한국문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알고 있습니다. 영국은 모르는 문화죠. 저에게 한국문화는 의식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고, 영국 문화는 노력해서 알아야 하는 문화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영국이 좀 더 에너자이틱한 것 같습니다. 문화가 충돌되는 곳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일수도 있고요. 이곳에서는 노력을 해서 갖고 와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좀더 밀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Q. 4482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A. 불과 5-6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도 런던을 예술적인 공간으로 보지 않았고, 런던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학과 사람들은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남아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같은 예술가들은 졸업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예술가 본연의 작업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소통가치까지 끌어올리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극복하기에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에게는 전시 공간 조차 내어 주지 않았죠. 보통 3-5년 정도가 지나야지만 전시를 열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라도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의지로 막 졸업한 한국 작가 10명이 모여서 시작하게 된거죠. 처음에는 10월 달에 열리는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봄에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4482였던 것이죠.
4482라는 이름은 영국의 국번과 한국의 국번에서 따온 것으로 단순하지만 지금 생각 해보면 임팩트 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2007년이 첫 전시였는데, 그 때 작업이 좋았는지 한국의 한 큐레이터가 함께 진행해보자고 제안했고, 그 다음해 지금의 바지하우스로 전시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기획부터 홍보까지 도맡아 했는데, 내년 2012년 전시에는 5명의 큐레이터가 선임되는 등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4482는 교육이라고 봅니다. 작은 이벤트지만 한국 예술을 이 곳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가 이 곳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죠. 한국예술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발판 같은 것 일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4482는 굉장히 좋은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그때 우리의 절박함과 몸부림 쳤던 것들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 이후 한국 문화원도 생기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 작가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전시를 열어주는 갤러리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Q. 이 과정을 밟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예술가라는 사람은 무에서 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동시에 본인 스스로의 역사를 쌓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강한 사람은 현명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작업을 할 때부터 전시를 할 때까지 모든 것들이 결정의 순간들 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의지에 맞게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또한 때문에 가시적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이벤트들에 좌지우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업이 좋다 나쁘다 하기 이전에 하는 행위자체가 가치 있고, 예술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이 역시 결단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업이라는 아트웍도 해야 하지만 아티스트웍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돈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는 직업군으로 따지자면 자영업자에 가깝습니다. 직접 판매를 컨트롤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작업을 보여주고 진행하고 프로모션 할 것인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전시를 하던 노출이 되건, 그 결정으로 인해 자신의 예술 역사가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찌 보면 결정이 있어서이고, 이 또한 저의 예술 역사 중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티스트웍인 거죠.
Q.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써의 삶은 어떠한가요?
A. 남들과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삶이죠. 이곳에는 12살 이전은 부모가 학교를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과 같이 아이들 픽업하고, 장보러 다니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