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8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것으로 유명한데, 언제부터인가 흐릿해지고 있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 온다. 오늘 가려나, 내일 가려나 아무리 마중을 해도 떠날 생각 않던 여름이 갑작스럽게 떠나면 가을이 얼굴을 비추는 둥 마는 둥 지나가고 겨울이 온다. 봄이 여름 같고 가을이 겨울 같은 사계절. 가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가을을 찾아 떠나는 길. 함께여도 좋지만 혼자여서 더 좋은 그 길을 소개한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우음도는 교통편이 까다롭다. 꼭꼭 숨어버린 가을을 만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듯이. 승용차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낯선 곳을 찾아가는 설렘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빡빡한 도심과 달리 한산하고 여유로운 시골마을의 풍경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의 장점이 아닐까.
수원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다 ‘이번에 정차할 곳은 사강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하차하면 된다. 고즈넉한 읍내 풍경을 따라 송산 파출소 앞으로 가면 컨테이너와 음료수 자판기 한 대로 꾸민 버스대합실이 나온다. 음도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 세 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서 요기를 하거나, 버스 정류장 맞은편으로 난 길 끝에 있는 고등학교의 한산한 운동장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도’라는 팻말을 단 버스에 올라 30분 가량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 보면 순간 탁 트인 벌판이 나타난다.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비포장도로를 달려 자그마한 공터에서 내리면 비로소 음도에 도착한 것이다.
내릴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들어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우음도가 준비한 가을 풍경을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사람 그림자도, 회색 빛 건물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나무와 갈대, 이름 모를 풀이 전부이기 때문에 어딘가 허전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울 가까운 곳에 이렇게 탁 트인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이렇듯 탁 트인 들판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음도의 여백은 더 인상적이다.
우음도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에 딸린 섬이었다. 생김새가 소를 닮아서, 혹은 육지에서 소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우음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조금씩 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먼 발치에는 지역을 나누기 위한 깃발과 포크레인이 땅을 긁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섬이었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갯벌처럼 검은 땅과, 물이 지나다녔던 흔적, 조개 껍데기까지…. 섬이었을 때의 모습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것들이다.
나지막한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벌판을 걷다 보면 바람 소리가 잘 들린다. 도시에서처럼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매섭게 불어 닥치는 바람이 아니라, 가만가만 불어오는 바람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다. 도심에선 사라져버린 가을이 아직 남아 있는 이 곳은 일행이 있어도 좋지만, 혼자여도 좋다. 여백이 넉넉한 노트처럼,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의 말소리 보다는 바람소리가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