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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70년 만에 깨어난 멕시칸 수트케이스 ①

2011-02-25


뉴욕에 있는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ICP)에선 지난 9월24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한 전시가 열리는 중이다. ‘멕시칸 수트케이스’(The Mexican Suitcase)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에서는 스페인 내전 중에 촬영된 로버트 카파(Rober Capa), 제르다 타로(Gerda Taro) 그리고 데이비드 세이무어(David Seymour)의 사진이 소개되고 있다.

글 | 이철승 월간사진 미국 객원기자

‘멕시칸 수트케이스’는 이들의 사진 4,500장의 필름이 담겨있던 3개의 조그마한 판지상자들을 일컫는다.(더 정확히는 이 상자들을 담았다가 지금은 사라진 수트케이스) 파리에서 만난 헝가리, 독일,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들이었던 카파, 타로 그리고 세이무어(세이무어의 애칭은 Chim(심)으로 발음한다)가 스페인 내전 중에 촬영한 필름을 담은 상자에 ‘멕시칸 수트케이스’라는 이름이 붙게된 데에는 바로 전시에 이목이 집중되는 기막힌 뒷이야기가 담겨있다. 멕시칸 수트케이스가 처음 ICP에 전해질 무렵의 이야기는 월간사진(2008년 3월호)에 소개된 바 있지만 여기서 간단히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극적으로 되찾은 카파, 타로, 세이무어의 스페인내전 필름
1930년대 초반 카파, 타로, 심 세 사람은 파리에 사무실을 두고 그들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여러 일을 함께 했다. 특히 타로는 카파의 연인으로 카파가 촬영한 사진을 홍보하는 일을 맡았고, 카파에게 사진을 배워 나중에는 직접 촬영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던 반파시스트 연합에 동조해 스페인으로 촬영을 떠났다. 그 와중에 1937년 타로는 스페인에서 부상자들과 함께 탔던 차가 탱크에 깔리는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카파와 심은 촬영을 지속했지만 1939년 나치가 프랑스로 진격하면서 파리를 떠나야만 했다. 심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 카파는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내전에선 촬영한 세 사람의 필름을 그들의 암실 책임자였던 임리 와잇츠(Imre Weisz)에게 맡겼다. 역시 유태계 헝가리인이었던 와잇츠는 급하게 필름을 챙겨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만난 한 칠레인에게 칠레대사관으로 필름을 가져가 안전하게 보관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수트케이스는 당사자들의 손을 떠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잡지에 실리면서 알려진 많은 사진들의 필름을 포함해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필름까지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카파를 괴롭게 했다. 1954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기 전까지 카파는 이 필름들이 모두 폐기되었거나 나치의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카파의 동생이자 ICP의 설립자인 코넬 카파(Cornell Capa)는 이 필름을 찾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카파의 사진을 전시한 것을 계기로 사진계에 필름을 찾기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직접 칠레에 가서 필름을 찾는 방법도 논의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름 자체는 물론, 필름의 행방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1995년까지는.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1939년 파리를 떠난 수트케이스는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멕시코 장군인 프란시스코 아기알 곤잘레스(Francisco Aguilar Gonzalez)의 손에 들어갔다. 당시 곤잘레스는 나치가 진격하던 프랑스에서 피난처를 찾던 유럽인들에게 멕시코로의 망명과 이주를 돕고 있었다. 그는 곧 필름을 갖고 멕시코로 귀국했고, 필름의 중요성을 알아서였든 몰라서였든 개인적으로 세 필름상자를 보관해왔다. 그리고 1971년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딸에게 필름을 물려주었다.

그러다 1995년이 되어서야 필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5년에 열린 스페인 내전 사진전시회를 본 한 멕시코인이 뉴욕 퀸즈대학(Queens College)의 제랄드 그린(Gerald R. Green) 교수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벤자민 타버(Benjamin Tarver)라는 영화제작자였고, 곤잘레스 장군 딸의 조카이기도 했다. 그는 숙모로부터 물려받은 필름을 담은 수트케이스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타버의 편지로 필름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로도 이를 다시 되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스페인 내전을 담은 필름을 멕시코인들이 오랫동안 보관하다가 이를 미국인에게 넘기는 것에 회의를 품었던 타버는 ICP와의 만남을 꺼려했다. 결국 타협은 이루어졌지만 ICP로 필름이 전달되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2007년 12월, ICP는 잃어버린 지 70년 후에야 이 필름을 모두 되찾게 된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0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본 정보는 월간사진(www.monthlyphoto.com)에서 제공한 자료이며, 상기 정보는 월간사진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재배포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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