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0
숫자 ‘1’은 가장 적은 숫자이지만 때로 많은 것을 담는 숫자이기도 하다. 한 장의 사진, 한 장의 그림, 한 명의 사람…. 한 장의 사진 속에 웅숭깊은 생각이 한 가득 담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최광호 사진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자료제공 | 고은사진미술관 www.goeunmuseum.org
사진가 최광호는 1956년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과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개인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35년 이상 가족을 사진으로 찍어왔다. 그의 사진 속에 드러나는 가족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 드러나는 진정한 의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며 그 사랑은 그의 존재적 근원을 묻는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사진 속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동생에 대한 시선은 그의 동생이 그와 존재론적 쌍생아로서의 근원에 다가서 있음을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극복의 과정에서 사진으로 선보인 것이 ‘광호타입’이었다. 그의 ‘광호타입’은 동생의 소지품과 그가 찍었던 동생의 사진을 이용해 그만의 방법으로 생명의 영속적 순환을 깨닫게 된 치열한 자기 고백이다. 그것은 삶의 불확실성과 사진의 불확실성에 대한 그의 물음이며, 항변이자 또한 답이었다.
최광호의 삶과 사진에 대한 태도는 늘 상식을 넘어선다. 그래서 사진가 최광호를 수식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열정과 기이함, 순수함과 괴팍함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 이러한 수식어의 뒷면에 한결같이 그가 추구하고 있는 삶의 태도와 사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전시관의 직접적인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동생의 죽음’이라면 제2전시관의 ‘사진 위를 걷다’는 그의 고백처럼 사진과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물음이다. 동생의 죽음 이후 끊임없는 화두로 남아 있는 그의 실존에 대한 탐구이며, 그 탐구의 결과물이 ‘사진 위를 걷다’라는 최광호만의 독창적 사진 형식이 되어 관객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의 사진 찍기는 내 생각과 느낌이 만날 때 시작한다. 사진으로 사고한다. 태고의 근원적인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자아 알아가기. 원시인이 조개를 줍듯, 무심하게 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나의 사진이다. 어느 날 나는 내가 태어난 강릉까지 걸어서 가고 싶다는 생각에 7일을 걸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인화지 위에 옮기며 인화지 위를 걸었다. (사진 위를 걷다, 2007)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포토그램을 만들었다. 사진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찾아간 시간여행. 사진의 원류를 찾아가는 동안 생명의 순환되어짐을 사진으로 느낀다. (생명의 순환, 2009) 동생의 죽음을 체험한 기억으로 나를 찾아간 것은 광호타입 Kwangho-Type 이었다. (동생의 죽음, 1999) 이 모두가 내 생각을 사진으로 사유한 결과물이다. 2010. 여름. 사진가 최광호. 작가노트 중에서
삶과 사진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진가 최광호는 그의 암실을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자궁이라 믿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삶이 곧 사진이며 그의 사진이 곧 삶 그 자체를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존재의 시작인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한 생명의 발버둥이라는 은유적이고 표현적인 ‘포토그램-생명의 순환’은 미술관 카페를 더욱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이렇듯 이번 최광호 사진전은 가족이라는 그 존재의 물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존재 소멸과 더불어 시작되는 존재 생성의 순환의 고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존재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관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