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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찰나의 순간, 퓰리처상 사진전

2010-06-25

1998년에 서울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대전: 죽음으로 남긴 20세기의 증언> 은 서울에서만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전시였다. 12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퓰리처상 사진전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 이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6월 22일부터 8월 29일까지 총 67일간 열린다.

에디터 l 이안나( anlee@jungle.co.kr)
자료제공 ㅣ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퓰리처상 수상 보도사진은 지구촌의 주요 뉴스를 한 컷의 영상으로 응축시켜 보여준다. 연도별 수상작을 감상하는 것은 근∙현대 세계사를 눈으로 읽는 것과 다름없다.

퓰리처상은 저명한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언론·문학·음악 등 3개 분야에 걸쳐 시상하며, 90여 년에 걸쳐 명성을 쌓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보도사진 부문 수상은 1942년 처음 시작되어, 1968년 특종 사진(breaking news)과 특집 사진 분야(feature photography)로 나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퓰리처상을 3번이나 수상한 캐롤 구지가 ‘사진기자란 목숨을 걸고 오지(奧地)로 떠나는 선교사와 같다’라고 말했듯이, 대재해·전쟁 및 사건사고의 현장, 소외된 계층 등을 통해 ‘인간성’의 극한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보도사진들은 퓰리처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알려지고 인류의 양심에 경종을 울려왔다.
이렇게 온 힘을 다해 기록한 역사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보도사진이 아닐까. 순간의 기록으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단 한 장의 보도사진을 위해 사진기자들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마저 버릴 각오로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전해 온 사진에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고 내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 우리의 오늘에 비추어 미래를 열어나갈 혜안을 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철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난민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길을 나선 사람들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는 일 뿐이었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군용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종군 기자로 한국전쟁을 취재 중이던 맥스 데스포의 이 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사진전> 에는 1951년 퓰리처상을 받은 보도사진 <한국전쟁> 이 전시되고 있다. 사진의 무대는 다름 아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의 한반도. 압록강을 전격했던 UN군은 1950년 11월 25일, 30만 명의 중공군이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오자 몇 주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게 된다. 12월 4일, 평양을 포기하고 후퇴하기로 한 UN군은 곧이어 중공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대동강 철교를 폭파해버렸다. 한편, 숱한 평양 시민이 공포에 밀려 남쪽으로의 피난길에 올랐다. 남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대동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 유일한 길인 대동강 철교가 폭격을 당한 것이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대동강 철교조차도 피난민들에게는 절실했다. 보따리 짐을 등에 메고 머리에 이고 자식의 손을 잡고 폭파된 대동강 철교를 위태롭게 타고 넘어가는 피난민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얼어붙은 강물 위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살을 에는 추위, 그리고 거센 바람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는 퓰리처상의 창시자 조지프 퓰리처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언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내면 깊은 곳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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