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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靑 ∙ 少 ∙ 年

2009-07-07


‘일민시각문화’는 한국 시각문화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일민문화재단이 발간하는 시각문화총서다. 도시공간에서 애니메이션까지 시각문화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해 총체적으로 되짚어 본 1권『이미지가 산다』, 한국 근대 건축∙문화∙공간에 나타난 한국 근대의 정체성을 다룬 2권『새마을』, 한국 산업현장을 시각적 이미지로 대상화한 3권『工場』에 이어 4권『靑∙少∙年』은 한국 청소년의 일상전체 즉 현실을 포착하고 그 그림을 담은 시각문화서다. 이 시각문화서는 강재구, 고정남, 권우열, 박진영, 양재광, 오석근, 이지연, 최은식, 최종규 등 9명의 사진작가들이 한국 청소년들을 만나 찍은 700여 컷의 청소년과 그들의 일상문화를 담았다. 아울러 일민미술관은『靑∙少∙年』발간을 기해 사진작업의 일부를 보이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글 | 강성원 ('일민시각문화' 편집장, 일민미술관 기획위원),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참여작가 강재구, 고정남, 권우열, 박진영, 양재광, 오석근, 이지연, 최은식, 최종규
전시기간 2009. 6. 19 ~ 8. 23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39 일민미술관 1, 2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월요일 휴관)
문 의 02 2020 2055


이번 ‘일민시각문화’의『靑∙少∙年』은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결과이자 동시에 뿌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청소년 문제는 기성 사회의 가치관 부재와 맞물린 것으로 가치관 부재는 교육 혹은 성장기 문화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의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청소년 교육은 국가나 기업 경쟁력, 대학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고, 정체성 문제도 사회적 생산력 경쟁을 위한 인성과 능력 기준에서만 얘기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총서의 시각이다.

우리가 자라온 과정을 되돌아보며 ‘젊었을 때’라고 하지 않고 ‘어렸을 때’라고 하면 대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가리킨다. '일민시각문화'에서 이번에 다루는 ‘청소년’은 10대가 된 소년, 소녀들이 주제이다. 모든 인간은 10대를 거치면서 독립된 개인이자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보통 10대는 미성숙기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미성숙’이란 표현과 ‘무한한 가능성’이란 표현을 곱씹어보면 거기엔 사실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그래서 이해하기 나름인 다의적 차원의 어감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성숙이라는 의미는 육체적, 정신적인 미성숙을 의미하기도 하고, 법적으로는 국가 사회 구성원으로 갖추어야할 정치경제상의 자율적 의무 ․ 권리 관계에 엮여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한편 무한한 가능성이란 말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말뜻은 추상적이고, 생각해 볼수록 애매하다. 살다보면 사회생활은 그렇게 다양한 가치관이나 생활방편 혹은 목적 등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이란 말은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 말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 체험에 더 맞아 떨어진다. 무한히 다양한 인생의 저열함을 겪을 가능성, 다양한 방면과 목적에서 뒤쳐진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라는 것이 훨씬 실제상의 삶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를 일컬어 미성숙이라고 하는 것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기라는 통념은 어떻게 된 것일까? 만일 정반대로 본다면 어떨까? 이 시기가 어쩌면 육체적으로는 생명력이 꽃피우는 완벽한 시기이며, 개별적 정신에서 볼 때는 인간의 신성(神性)이 아직 때묻지 않은 영혼의 빛을 발하고 있는 시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신의 의미를 사회가 수긍하는 행위수행의 능력이라고 본다면, 정신적으로 이 시기는 미완의 시기가 맞다.


우리의 교육정책과 제도는 청소년들에게 다양성과 창의력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인생의 성공’에 대한 비전과 평가에서는 서열화된 대학과 직장과 직업 등을 우선시한다. 청소년에게 대학입시가 제시하는 가치관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나의 가치관이다. 이 점에서 국가와 사회, 기성세대인 부모와 교사는 일심동체이다.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이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사회에 가치관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실이 이런데도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사회적 거짓은 거짓일진데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아무도 거짓이라 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는 한국인의 우수한 수학(修學) 능력과 생존 능력, 근면성 등을 거론하며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현대사회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는 끝없는 경쟁 속의 사회적 생산력 향상과 그 속에서의 개인의 경쟁력과 성취력을 높이기 위해 살아야만 하는 가치관 자체에 대해 선택의 여지없는 현실이 어떻게 무한한 삶의 가능성과 정신의 성숙을 위한 것인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지구위의 모든 나라에도 서열을 두고, 직장과 직업, 학교와 문화에도 서열을 두면서, 서열의 맨 꼭대기만을 바라보며 인생의 성취를 논하는 사회에서는 ‘서열’이 아닌 ‘사범(師範)’과 ‘형이상(形而上)’, ‘고전’과 ‘주체성’, ‘자긍심’과 ‘평상심’, 인본주의적 ‘전문성’과 ‘이성’의 발현이 가능하지 않다. 국가와 사회, 역사에 대한 사범의 말이 먹히질 않고 자긍심도 우러난 것이 아니며 희망도 가짜이다.


우리 편집진의 입장에서는 정신의 성숙과 정신의 덕(德)은 이미 청소년 안에 있고, 개성도 무한한 가능성도 이들의 목숨과 더불어 이들 안에 원래부터 깃들어 있는 힘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삶과 정신적 덕을 무한한 이해관계 계산과 소비욕구, 기성세대보다 더 겉늙은 욕구로 채우도록 몰아세우고 있다. 이들 욕구가 내비치는 인간적 가능성은 경제적 욕구와 서열화 속 인정 투쟁의 무한한 가능성으로만 보인다.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열린 인생의 다양함과 무한함이 아닌 것이다.

이번 ‘일민시각문화’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읽어볼 수 있는 이런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조금은 다른 차원에서이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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