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06
글 │ 권연정 중국 통신원
창신蒼興,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너무나 단순 명료하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트레스와 복잡함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굴레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창신이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와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기이한 행동들. 그에게 있어서 생각은 곧 행동이 되고, 행동하는 것이 곧 생각하고 있는 것의 전부가 된다. 그만큼 유리처럼 투명한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타인과 나는 구분될 수 없는 것이고,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역시 뚜렷이 구분될 수 없는 ‘가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창신의 모든 작업을 둘러보고 막바지 준비 중인 개인전에 전시될 작품을 보고 있자니 실오라기 하나 숨김없는 그의 표현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따샨즈 798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2004년, 아마도 798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단계일 것이다. 아내가 의상실을 798지역에 열고 싶어 해 장소를 구했고, 곧이어 쓰촨 음식점도 하나 개점하게 되었다. 그 당시 798은 동독이 버리고 간 군수 공장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곳으로 돈이 없는 작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임대료가 비싸지 않아 5~10년 정도로 세를 들었는데, 최근 상업화의 물결이 불어 닥치면서 예술가 정신이 살아 있는 작가들이 하나 둘 이 곳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칠성그룹이 임대료를 받으면서 자기 배 불리기에 바빠 외국의 돈 많은 화랑이나 기업 등에 비싸게 임대를 하고 이익을 챙기고 있다. 얼마 전 절친한 친구이자 798페스티벌 기획자이기도 했던 작가 황루이黃銳가 대규모 기자 회견을 열어 세상에 이 사실을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차오창디로 작업실을 옮겼다.
본인이 생각하는 중국의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중국 사진에 대해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면 중국 음식만큼이나 다양하고 종류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 지역,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강소 지역, 광저우를 중심으로 하는 광동 지역의 특색이 각각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이외 홍콩, 타이완, 티베트, 우르무치 그리고 최근 뚜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충칭을 중심으로 한 쓰촨 지역의 미술로 크게 대별된다. 2007년 3월 스페인에서 중국 사진가 50인의 사진전이 크게 열릴 예정이다. 나도 참여하지만 중국의 내로라하는 사진 작가들은 거의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닝더王寧德, 왕칭송王慶松, 미아오샤오춘繆曉春, 자오반디趙半狄, 치우시우원崔岫聞 등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사진가들은 다 모일 것이다. 전시의 제목도 ‘주의主意! 중국中國’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동일한 시리즈의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한국에 와 작업을 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소감을 간단히 말해 달라.
지난 12월, 아르코미술관에서 있었던 중국 현대 미술전
<차이나 게이트china gate>
와 관련하여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 전시의 기획자였으니 잘 알겠지만, 원래는 오프닝에 100명 정도의 사람을 모아 퍼포먼스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취소됐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을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친절한 이미지가 강했다.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하나같이 TV에서 본 한국 드라마 속 연예인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루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환전한 돈이 든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날 저녁 미술관에서 연락이 와 지갑을 그대로 되찾을 수 있었다. 중국이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래서 한국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오늘 작업실을 둘러보니 사진 말고도 여러 매체를 이용한 다양한 작업이 있다. 사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작업이 이뤄지는지 설명해 달라.
사실 나는 사진을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진을 스스로 터득하고 지금은 내 작업에 맞는 사진기를 만들어 쓰고 있다. 처형이 오래 전부터 중국 전통 카메라를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대대로 하고 있다.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4×5˝ 대형 카메라나 8×10˝ 카메라를 개조한 8×5˝ 카메라는 내가 특히 아끼는 수제 카메라다. 사실 직접 조각을 하거나 소묘나 유화를 그리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4~5명의 조수가 작업을 한다. 다들 그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들이라 나보다 그 매체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예술가가 스스로 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간다면 그것으로 작가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이나>
요즘 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과 현재 준비하고 있는 전시에 대해 말해 달라.
올해 영국 런던의 사찌 갤러리The Saatchi Gallery에서 개인전이 있을 예정이고, 이미 많은 작업이 선매되었다. 실리콘으로 만든 조소 한 점과 ‘신분 바꾸기身分互換’ 시리즈 세트가 판매되었다. 그리고 중국 베이징의 진리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올해 워낙 국제전 일정이 많은 관계로 내년으로 미뤘다. 사실 4층 규모의 엄청난 공간을 채우려면 사진 작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작년 팡리준方力鈞의 개인전에서도 온갖 종류의 매체가 다 동원되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내년에 있을 개인전의 경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기도 해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1996년부터 시작된 그의 ‘교류交流’ 시리즈는 정말 엉뚱하고도 단순하게 시작됐다. 그는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사람, 지폐, 비둘기, 신발, 벌레, 사진, 비누, 바닥, 석상, 물, 불, 나뭇잎,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 그것도 모자라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세상을 미각으로 느낀다. 영국, 독일, 싱가포르, 이탈리아,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을 건너가 눈으로 본 모든 것들을 혀로 느끼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무의미하게 시작한 작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쯤 되면 보는 이들이 스스로 그 의미를 생성하도록 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의미가 전달된다.
2000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시리즈인 ‘신분바꾸기’ 퍼포먼스는 여러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식당의 웨이트리스와 길거리의 청소부, 공연을 앞둔 발레리나와 결혼식에 참석한 신부, 거리의 노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겉옷을 빌려 입는다. 2006년 신작에서는 영국에서 만난 외국인들의 옷을 빌려 입고, 미용실에서 만난 헤어드레서, 영국 버킹험 궁을 지키는 근위병,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을 한 남자와 소방서에서 만난 소방수 등 그들의 신분이 되어 보는 것을 감행하고 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어느새 가식의 옷을 벗고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솔직하게 작가와 그리고 관객과 마주한다.
처음 그의 작업을 보았을 때, 젊은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꿈을 이뤄주는 컨셉의 사진으로 몇 년 전 이름을 알린 국내 작가, 정연두의 작업이 생각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연배가 비슷하고 사진을 정규 교육 과정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과 컨셉이 중심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정연두의 작업은 그가 만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표현의 방식도 독일 사진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유형학적 사진과 신표현주의의 느낌이 난다. 반면 창신의 작업은 중국적인 어색함이 느껴지지만 일관성이 있고, 지나친 것 같지만 넘침이 없는 그런 여유가 있다. 오히려 중국적인 그리고 동양적인 정서를 강조함으로써, 사진에서 정체성을 찾기가 보다 수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