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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은빛 꽁치의 사랑이 가득한 스튜디오, 정혜진

2006-07-31


쉴 새 없이 셔터소리와 함께 펑~ 하는 스트로보의 파열음이 들려온다. 또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든다. 렌즈를 향해 앉아 있는 모델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의 손님을 위해서이다. 스튜디오 내에 쾌활한 웃음과 미소가 번지자 그제서야 굳어 있던 초보 모델의 굳은 표정이 풀리고 자세도 제법 갖춰진다. 애플 스튜디오. 그녀가 카메라와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이번 호에서는 인터넷에서 은빛 꽁치로 유명한 애플 포토 스튜디오의 정혜진(27) 님을 만나보았다.

글, 사진ㅣ 함영민

분당에 위치한 그녀의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커다란 유리 창가로 초여름의 밝은 햇살이 내리쬔다. 말 그대로 삼삼한 자연광이다. 사진 촬영하기에 가장 좋을법한 한 톤 걸러낸 맑은 빛이 들어오는 창가는 자연스러운 포토 스튜디오의 조명이자 배경이 되었다. 귓가로 기분 좋은 음악이 흐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다.
나는 처음 그녀를 대하고 모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알아챘는지 그녀가 한마디를 거든다. “지금 머리, 가발이에요”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에 벽에 걸려있는 그녀의 삭발 사진이 들어왔다. 그 사진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올해 후지필름 창작사진대전 은상 작품이다. 독특한 느낌의 그 사진은 그녀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을 가진듯한 그 녀, 이 포토스튜디오의 대표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당일은 기운이 빠져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감기몸살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다고. 얘기를 듣다가 흠칫 놀랐다. 그녀의 사진은 내가 썼던 기사에도 실렸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콘테스트 사진을 주제로 한 본지 기사에서 그녀의 셀프 사진이 실렸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재미있는 인연이 맺어졌다.

그녀는 실내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웹디자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오던 미지의 것들을 차례차례 정복해나갔다. 홍대 씬에서는 그룹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주친 것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니콘의 쿨픽스 990이다. 골동품 카메라를 모아오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은근히 영향을 미쳤다. 자질구레한 작은 소녀의 엉뚱하고 사소한 질문에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주었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덕분에 카메라는 어렸을 때부터 죽 그 녀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의 영향일까. 디자인 공부를 위해 카메라를 든 그녀에게 낯설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그 녀는 이야기 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전화를 하는 것보다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있을 때도 쉴 새 없이 글을 끄적인다. 하루 있었던 일과를 글로 쓰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일도, 디자인을 하는 일도 그녀에게는 글과 같다. 인터넷이라는 특성은 그녀의 전공이었던 디자인을 사진과 연결시켜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떠오른 구상들을 글로 정리하고 사진이란 도구로 디자인하며 마무리한다.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리우는 사진이라는 도구는 그녀의 머릿속에 떠돌던 많은 의구심들을 정답으로 만들어주는 똑똑한 존재였다.

APPLE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일요일, 촬영 차 드라이브를 가던 길이었다.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라디오를 틀었다. 평소같이 일요일 지루한 방송. 그 중 apple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영어사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가장 쉬운 단어이며, MAC으로 유명한 애플이란 이미지가 어떻게 지금의 이미지처럼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한참 동안을 그녀의 머릿속에 그 이야기들이 맴돌았고,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일을 시작하게 되면 꼭 한번 사용해보리라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그녀의 스튜디오가 완성되었다. 이름은 고민하지 않았다. 사랑 애(愛)에 가득찬 FULL. 사랑이 넘치는 스튜디오. 그래서 애플이라나. 믿거나 혹은 말거나 이다.

평상시 프로가 촬영하는 사진만큼 일반인들도 촬영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에 시작하였던 것이 스튜디오까지 발전했다. 어린 나이에 스튜디오를 시작하고 잘 진행되고 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수치에는 아직 못 미친다. 그녀에게 작은 꿈이 있다.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사진촬영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다. 취미 때와 다르게 일로 시작한 사진은 부담감이 있다고 한다.

“일을 시작하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보니 수익적인 부분도 무시 못 하겠더라구요.”솔직한 그녀. 정형화 된 사진 속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자신의 사진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단다. 가끔씩은 의뢰인을 위해 촬영해 주는 사진들이 진정 자신이 원했던 사진들이고 자신의 사진인가 마음속으로 반문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그 것은 앞으로의 목표이자 숙제가 될 것이다.

SEMI NUDE
세상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남성들은 보수적이다. 많은 커플들이 와서 사진촬영을 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사진을 요구하지만 막상 세미누드를 제안하면 이에 대한 반응은 남녀 차이가 있다. 여성들은 대체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지만 그때 남성들은 바로 옆에서 찬물을 끼얹는다. “누구 보여줄라구, 벗어?”
여성들은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몸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딱 잘라서 얘기한다.“내 여자는 안 돼”라고 말이다. 보수적이고, 또 보수적이다. 그 녀는 직접 자신이 모델이 되어 세미누드도 촬영하곤 한다. 모델이 되어 보아야 모델들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녀 자신의 파인아트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는 삭발을 하며 세미누드를 촬영했는데 머리를 깎은 이후로 대다수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병에 걸린 아픈 여자일까? 무서운 아버지를 둔 철없는 딸일까? 삭발하고 나서 그 녀는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알았다.

2006 대한민국의 진한 색안경
몇 해 전에 있었던 일본 프로페셔널 여성사진작가의 등단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고 다니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아놓았던 그녀의 스스럼없는 사진들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죽어가는 일본 사진계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도 받는다. 기성 사진작가들이‘끌끌’혀를 찰만한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감성을 가진 사진들이 오히려 대중에게 어필한 것이다. 나는 기존의 사진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 그 사진들이 굳이 여성의 섬세함이나 잠재의식 같은 것들을 끌어 들여 특별한 존재로 취급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 작가가 본 세상 일뿐,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이 시대의 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시대유감, 그 자체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진만큼은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의 벽과 남녀차이의 굴레 없이 보여지고 평가되어야 함에도 2006년의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는 색안경을 쓴 이들이 너무 많다. 은빛 꽁치 정혜진. 그녀가 너무 깊어 속이 보이지 않는 색안경의 심해(深海)속,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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