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단풍잎이 낙엽되어 떨어지는 만추의 계절. 산과 계곡을 채우던 행락객의 발길도 잦아들어 자연은 동면을 앞둔 것처럼 고요하다. 눈보다는 가슴으로 자연을 만나고 싶어하는 여행객들에게도,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는 출사객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은 그 곳.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우포늪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경남 창녕(昌寧)은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는 고장이다. 지금은 곳곳에 제방을 쌓아 전처럼 읍내 공설 운동장까지 물이 차오른다든가 하는 일은 없지만 농민들은 장마 때 마다 수해가 유달리 걱정스럽기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창녕읍이 기대고 있는 진산의 이름은 화왕산인데, 이 산의 이름을 불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의 화왕으로 지은 이유도 이렇듯 유난스런 이 지방의 물기운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창녕지방이 이렇듯 유난히 수해가 심한 것은 낙동강 하류변의 저지대여서 곳곳에 수많은 늪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창녕은 늪지대가 가장 많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우포는 한국 최대의 늪지로 유명하다. 물이 가득하게 들어차 있는 호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맨 땅도 아니다. 땅과 호수의 중간 형태이다. 푹 젖은 땅이다.
우포에 가고자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어줍지 않게도 수면 위를 깨알 같이 덮고 있던 녹색 부평초와, 그것을 가르며 지나는 어느 소박한 나룻배의 차분함 때문이었다. 아니, 나룻배의 차분함 보다는 늪의 적막함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적막감은 왠지 모를 신비감과 경외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좋고 아름다운 것은 누구나가 쉽게 알 수 있듯이 원인 모를 이런 느낌들은 다 이유가 있는 것. 인류가 존재하기도 전인 1억 4천만 년 전, 공룡의 시대에 형성된 우포는 아직도 그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인 우포는 그 안에 1,000여 종의 생물들을 품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생물들을 변함없이 품고 있는 우포에 어찌 비밀이 없고 놀라운 일들이 없으리. 처음에 먹은 마음으로 우포에 도착하면 우포 가장자리를 둘러싼 왕버들 잎이 바람에 부서지는 소리에 이곳까지 오게 했던 그 작은 동기는 오간 데 없어진다. 혹시 아마존 밀림 같은 늪지대를 상상하고 가셨다가 실망한 채 돌아가진 않을까 모르겠다. 언뜻 보면 저수지 같아 보이는 평범한 그 모습이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포늪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다. 실제로 4개의 늪으로 구분되는데 크기순으로 보면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늪 〉쪽지벌로 나누어진다. 늪 주변을 걸어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만 하루가 꼬박 걸릴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으레 ‘우포늪’하면 새벽 물안개와 어부를 떠올리게 한다. 새벽쯤 피어올라 물위를 떠다니는 물안개. 작은 나룻배와 삿대질로 그물질하는 어부. 그 몽환적인 배경으로 노를 젓는 어부의 실루엣. 사진 사이트에서 이른바 "Cool Gallery"에 오른 사진들은 대부분 목포와 사지포가 연결되어 있는 우포의 북쪽이다. 더 자세한 것은 SLR 클럽 공동포럼의 추천 촬영지를 검색해 보라. 지도와 함께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곳은 일출과 일몰의 햇살마저도 특별하다. 만약 여러분이 로맨틱한 해질 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늪 가 멀리 앉은 산 뒤로 넘어가는 해가, 연붉게 물들이는 하늘에 빠져보기를 권한다.
해가 지기만을 기다려 연방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가들이 이곳저곳에서 카메라를 들이댄다. 가을하늘은 투명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선명한 노을을 기대해도 좋다. 그 위에 붓자국처럼 흩어져 있는 구름과, 늪과 하늘 사이를 수놓는 잠자리들이 벌이는 사랑의 행각(?)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봄에는 수면을 뒤덮은 연푸른 수초를, 여름에는 청아한 가시연꽃을 구경하러 가도 좋고 겨울에는 철새를 만나러 가도 좋다. 어느 때이건 우포는 우리를 실망시키는 적이 없다.
지금까지 우포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면 또는 우포에 대해 지금 처음 알았다면 이 가을, 우포를 마음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가장 자연스러운 곳에서 만나는 것들로 인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가슴에 따뜻한 것을 담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따뜻해진 마음으로 겨울을 준비할 수도 있다. 우포늪은 우리에게 생명의 경이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수면같이 평평한 드넓은 땅.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평화롭다. 바라보면서 세월을 생각한다. 1억 년의 평화. 저 자연을 인간이 어찌 범접하겠는가?
우포로 가는 길
경부고속국도 창녕 I.C로 빠져나와 창녕읍 쪽으로 들어가다 첫 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
1km 정도 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보면 ‘우포늪’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