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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조작된 풍경을 향한 두 개의 시선

월간사진 | 2015-06-09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익숙한 이미지를 만드는 김재범 사진가와 콜라주 형식을 통해 있을법한 이미지를 만드는 배준현 사진가. 익숙한 풍경을 탄생시키는 이들은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보았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요소와 거대한 축을 통해 ‘안다’는 것과 진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재범, 배준현 사진가와 나눈 이야기.

기사제공 ㅣ 월간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재범: 이탈리아 배낭여행 때였다.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 바티칸 미술관의 작품 앞에서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 중 피에타 상 앞에서 작품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는 그에 대한 해석과 감흥이 전혀 달라졌다. 이때부터 ‘안다는 것’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그것을 계기로 첫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배준현: 사회 속의 권력과 희생자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맞춰 회화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주체와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직접 가상의 권력자로 분해 개인들을 소외시키는 목적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작업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김재범: 나의 이미지들은 모두 연출된 상황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조사되고 처벌되는 모든 과정의 자료를 모으는 데 보통 3~4개월씩 걸린다. 그렇게 사건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생성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장소와 모델을 섭외한다. 장소는 가급적 실제 현장으로 정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면 비슷한 장소를 찾아 촬영과 합성을 병행한다. 모델은 비슷한 이미지의 지인 중에서 선택한다.

배준현: 콜라주에 이용되는 이미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사용한다. 마치 배우를 섭외하듯 잡지에서 사진들을 오려내고,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나 상황을 보도사진을 참고해 드로잉한 후, 퍼즐을 맞추듯 이미지를 구성해 간다. 조합을 완성한 이미지는 다시 10여 장의 아크릴판으로 나눠 붙인 다음 이미지마다 틈을 주어 원근감이 느껴지도록 옮긴다.

어떤 사건을 주로 재구성하는가?

김재범: 최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 중에서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악랄한 사건들을 주로 다룬다. 버지니아 공립대에서 벌어진 조승희의 총격 사건을 다뤘던 ‘Ismael Ax’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직접적인 폭력의 이미지를 제거하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배준현: 주로 미디어를 통해 보도될 만한 사건들이다. 자극적이고 눈길을 끌 만한 사건들은 한 순간 시선을 빼앗지만, 언젠가는 잊힌다. 권력은 사건을 이용하고, 나 역시 권력이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방해서 자극적인 사건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언뜻 보도사진처럼 보이지만 실은 작가가 개입하고 통제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의도적인 장면인 것이다.

가장 신경 써서 작업하는 부분이 있다면?

김재범: ‘리얼리티’. 내 사진들은 명백하게 연출된 장면이지만 거기엔 의구심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혹시 이거 진짜?’ 라는 이상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애매한 장면을 만드는 데 가장 신경을 쓴다.

배준현: 계획한 상황의 각 부분에 크기, 자세, 방향이 맞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포토샵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제작 과정의 특성상 정확히 일치하는 이미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재구성된 이미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김재범: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들을 이해할 때 이미 존재하는 기준들(혹은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도 같다. 나의 작업을 통해 자기 결정이나 행동이 정말 스스로의 주체 안에서 나온 것인지 한번쯤 의심해 보았으면 한다.

배준현: 결과물 속 이미지만으로는 어떤 메시지도 읽을 수 없다.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대신 결과물의 허술한 틈을 통해 이 거짓 이미지를 만든 생산자(권력자)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재범: 작년 여름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남아 3개 도시(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베트남)를 다녀왔는데 그와 관련된 책을 만드는 중이다. 그리고 여름에는 송은문화재단의 도움으로 런던의 델피나 재단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참가해 사회(주의)적 활동가들과 만나 작업을 할 예정이며, 8월과 11월에 기획전을 계획하고 있다.

배준현: 최근에 공간291의 신진작가 공모에 선정되어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음 작업을 위한 재료를 수집하고 있다.



김재범 Kim Jae Bum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2009년부터 다수의 그룹전과 작년까지 4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올해, 송은문화재단과 델피나 재단의 협력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첫 번째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배준현 Bae Jun Hyun 2009년부터 <내일을 향해 쏴라>, <안녕의 날들을 위하여>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올해 부암동에 위치한 사진전문갤러리 공간291의 상반기 신인작가로 선정되어 4월 5일까지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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