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진 | 2015-04-27
길 위의 흔한 쑥으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진가 미연. 그녀는 작은 ‘존재’를 통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우리의 인생을 보았다.
기사제공 ㅣ 월간사진
보통의 풍경, 삶의 순환
거리 위를 지나는 자동차와 학생들, 그리고 아스팔트와 파란 하늘… 흔한 일상의 풍경이다. 같은 장소를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들이지만 각각의 사진이 결코 같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아스팔트 위의 작은 풀, 쑥(히메무카시요모기: 쑥과의 일종)의 모습에 그 답이 있다. 미연 사진가의 <쑥 이야기-당신은 누구입니까?>는 그 보통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미연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를 사진가의 길로 이끈 것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었다. 지붕을 찍은 흑백 사진으로, 작가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할 것 없었지만, 흑백의 강렬한 음영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1988년, 프랑스의 이카르 사진학교(ICART PHOTO)로의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 정착해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줄곧 미연이 작업의 주제로 삼았던 것은 ‘존재’였다. 하늘, 바다와 같은 평온한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던 첫 번째 사진집
그녀의 작업이 일상의 풍경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의 작업을 10년 이상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입자와 강한 콘트라스트를 위한 아날로그 작업
두 번째 사진집 <쑥 이야기-당신은 누구입니까?> 역시 존재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사진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쑥이 특히나 눈길을 끈다. 너무나 흔하기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도시의 풀을 작업의 주제로 삼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는 “13년 전, 딸아이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이 쑥(히메무카시요모기)을 발견했다. 한번 눈에 들어오니 매번 지날 때마다 살피게 되었고, 나날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고 작업의 계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쑥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핫셀블라드 카메라를 들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쑥과 풍경을 기록했다. 키가 자라고 시들어 사라질 때까지, 그 풍경도 매일 변했다. 5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짧고도 길었던 쑥의 일생을 통해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쑥의 일생을 보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쑥이 시들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듯 말이다.” 그녀가 작은 존재로부터 발견한 삶의 풍경이었다. 그 이후 작년까지도 길 위의 풀들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았고, 쑥의 일생과 함께 사진집으로 묶었다. 그녀의 사진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촬영부터 현상, 인화까지 직접 한다는 것이다. 강한 콘트라스트와 거친 입자의 사진을 만들기 위해 현상액을 끓여서 사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현재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는 컬러로 작업하고 있는 것. 한창 사진집 제작에 몰두해 있는 그녀는 일본에서 ‘손으로 만든 사진집’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도 밝혔다. 그녀의 작업이 더 궁금하다면 오는 9월을 기다리시라. 국내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미연 (Mi Yeon)
한국 서울 출생. 1988년 파리의 사진학교 이카르 포토(Icart Photo)에서 사진을 배우고 1991년 일본 도쿄에 정착했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도쿄에서의 여섯 차례의 개인전과 시, 수필, 사진집 등의 출판물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확실함과 불확실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집
▼ 사진가 미연의 또 다른 대표작들
<
Alone Together>
흑백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 고요한 듯 보이지만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쑥 이야기-당신은 누구입니까?>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이 작업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나’와 같다고 인식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개개인의 작은 ‘나’가 모여 전체를 이룬 모든 존재 역시 하나의 큰 ‘나’와 같다는 것. 길을 걷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발견하게 된다.
<I and Thou(나와 너)>
흑백 작업만을 해오다 새롭게 도전한 최근작인 컬러 작업이다. 모든 작업마다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늘 다르다. 불특정 다수의 모습과 일상적인 풍경이 오묘한 컬러와 만나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녀는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컬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