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6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 있다면 사진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첫 번째 카메라가 있다. 그들을 사진의 세계에 빠지게 한 카메라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고, 그들이 답해왔다.
기사제공 ㅣ 월간 사진
Questions
1 First Camera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2 First Camera의 장, 단점을 꼽는다면?
3 아날로그 카메라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4 First Camera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5 First Camera를 이용해 가장 마지막으로 한 촬영은?
6 First Camera로 찍은 소중한 사진을 소개해 달라.
타치하라 FILE STAND 4X5
박홍순(다큐 사진가)
1 대학원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대동여지도 계획’의 첫 작업이 ‘백두대간’ 촬영이었다. 그 때 당시 4X5 카메라가 필요했고, 마침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던 선배가 자신의 카메라를 싼 가격에 넘겨주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타치하라가 나의 첫 번째 카메라다.
2 클래식한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언뜻 보기엔 무거워 보이지만 의외로 가볍고 성능도 좋다. 당시에는 백두대간 촬영을 위해 매번 산에 올라야 했기에 가벼운 무게가 큰 도움을 주었다.
3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 아날로그 카메라는 촬영할 때 저절로 신중하게 만든다. 4X5 흑백 필름을 홀더에 조심스럽게 담아 비닐 지퍼백에 넣고, 현장에서 필름을 다 쓰면 그날 밤 여관 목욕탕에서 필름을 바꿔 넣어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화할 때의 흥분감은 디지털 카메라와 비할 바가 아니다. 붉으스름한 암실의 적막함 속에서 확대기의 빛을 받은 인화지가 현상액속에 담겨 은입자의 상이 서서히 드러날 때의 그 가슴 벅참은 나로 하여금 아날로그 작업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4 ‘백두대간’촬영을 위해 이화령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일이다. 반대편 중턱의 초소에서 군사시설이니 촬영하지 말라는 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촬영을 계속했다. 그런데 설마 그 군인이 부대장을 이끌고 진짜 나타날 줄이야. 하지만 먼 길을 온 그들도 나를 어찌할 순 없었다.
5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은 ‘한강’ 작업 때인데 정확한 일시는 모르겠다.
라이카 M3
김용호(패션 사진가)
1 운 좋게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던 카메라가 라이카 M3다. 당시 카메라를 처음 접했으면서도 전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카메라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2 사진이라는 신세계에 눈뜨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그러니 장, 단점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3 아날로그 카메라는 필름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촬영에 필요한 컷을 미리 계산해놓고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촬영하는 대상과 그 시간 만큼은 어느 순간보다 더 진지했던 것 같다. 마음대로 찍고 너무나도 손쉽게 지울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4 카메라에 필름을 넣지 않고 촬영을 한 후 ‘아차’하고 그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의 황당함이란... 이런 실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5 1995년, 1996년 캘린더 작업을 위해 사용했던 게 마지막이다. 이번에
<월간사진>
에 공개한 컷이 바로 그 때 한 작업 중 하나다.
니콘 FM
윤현선(사진가)
월간사진>
1 아버지 친구가 일본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아버지에게 선물로 준 것이 니콘 FM 이었다. 어렸을 적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되면서 집에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그 것이 내 생애 첫번째 카메라가 되었다.
2 렌즈의 성능이 뛰어나다.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셔터 소리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3 필름 카메라는 실수로 인해 오히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간혹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물이 더 신선하게 느껴질 때 희열을 느낀다. 찍은 즉시 확인하는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4 사진을 배울 때 친구들과 새벽 물안개를 찍으러 북한강에 간 적이 있다. 친구들과 차에서 쪽잠을 자다가 늦잠을 자버려 물안개를 놓친 웃지 못할 추억이 있다. 당시에는 황당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5 3년 전 즈음으로 기억한다. 남아 있는 35mm필름이 아까워서 평소에 갖고 다니며 열심히 찍었는데, 당시 현상비가 너무 많이 올라서 20롤 정도 찍고 내려놓았던 적이 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카메라와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핫셀블라드 503cx
조상민(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 교수)
1 핫셀블라드503cx가 나의 첫 번째 중형카메라다. 일본 유학 시절 핫셀블라드로 촬영한 거장들의 걸작들을 보고 그 감동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핫셀블라드로 꼭 촬영해보고 싶었고, 대학교 3학년 되던 1995년, 내생일을 기념해 12개월 할부로 마침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구도를 결정하고, 노출을 계산해 셔터를 누를 때까지 흐르는 긴장감은 ‘철컥’하는 핫셀 특유의 셔터막이 닫힐 때까지 계속 유지된다. 심플한 구조, 단순한 촬영원리, 튼튼한 내구성 그리고 유행을 타지 않는 멋진 디자인 또한 매력적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명불허전의 칼 짜이스(Carl Zeiss)렌즈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3 프레이밍에서 노출계산, 조리개, 셔터 세팅, 촬영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진행해야만 하는 과정이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지 않을까.
4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장 처음으로 들어온 해외 패션브랜드의 카탈로그 촬영을 핫셀블래드503cx과 함께 했다. 1컷을 촬영하고 필름을 감고 다시 필름매거진을 분리한 후 장착해야 하는 다중촬영이 컨셉이었는데, 그 번거로운 과정을 모든 관계자가 기다리며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5 최근에도 흑백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계속 사용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