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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진은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 창’

2013-10-01


올해 초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플레이보이 소속 사진가 니코는 자신의 고향에서 누드 사진전을 열었다. 이슬람 신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 공공장소의 신체 노출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주제 선택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제도에 저항한 전시는 입장 연령층을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작가가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기사제공 ㅣ 월간사진

“문제는 작가 본인이 그 종교를 믿지 않아도 제약을 받게 되어 억압으로 느껴진다는 거예요. 작업이나 전시 과정에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아요.”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NTU, 난양공대)의 사진 및 디지털이미지학과의 한국인 교수인 오순화(44)는 종교나 문화적인 제약으로 인해 작가들의 자기검열이 심하다고 동남아 사진을 설명했다. 최근 들어 국제교류전이나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내에서 동남아 사진을 접할 기회가 늘면서 관객들의 궁금증도 늘어간다. 오교수는 8년째 난양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편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국의 사진과 작가들을 연구해오고 있다. 조각이나 회화에 비해 이제 걸음마 단계인 동남아 현대사진은 사회적인 제약을 은유적인 표현과 풍자로 비틀면서 성장하는 중이다. 오교수는 사진이야말로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며, 동남아 사진을 알리고 외부세계와 격차를 좁히는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6월말, 한국사진학회가 주최한 2013년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한 오교수는 동남아 현대사진을 소개하는 주제발표를 가졌다. 지난 19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콜롬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오교수는 2005년 난양공대 사진학과의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난양공대 사진학과를 소개해달라.

싱가포르 서부 난양에 있는 난양공대는 60년 전통을 가진 공과대학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싱가포르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예술대학을 설립하게 되었고, 지난 2005년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싱가포르의 4년제 대학 내에 만들어진 첫 예술대학이다. 난양공대 예술대학에는 사진학과를 비롯해 영화, 애니메이션, 미디어, 디자인, 미술사 등 모두 6개 학과가 있고, 35명의 교수진에 학생은 800명 정도다. 이중 사진학과는 한 학년에 20명씩 모두 80명의 학생과 3명의 교수 및 5~7명의 외래강사로 구성되었다. 교수진은 미국과 브라질, 유럽과 동남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왔으며, 학생들 역시 싱가포르 출신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 출신 등 매우 다양하다.

사진학과 커리큘럼은 어떤가?

학제간 교육에 비중을 둬 예술대학 학생도 인문자연과학대와 경영대학 수업을 40퍼센트 수강해야 한다. 처음 사진학과가 만들어졌을 때는 아무래도 학생들의 관심이 상업사진이나 저널리즘에 몰렸는데 지금은 이미지의 이해나 연구, 공대와 협력한 테크놀로지 개발 연구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요즘은 카메라가 좋아져서 사진을 잘 찍어서 사진가가 되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진이 무엇을 표현하는가, 어떻게 시대성에 맞게 보여주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변화가 절실하며, 다음 학기부터는 비디오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할 생각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싱가포르라는 다른 문화권에서 사진을 가르치는데, 처음에 문화의 차이가 컸을 듯하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싱가포르 역시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가진 국민들로 구성된다. 중국인이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종교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이 90퍼센트에 가깝다. 머리와 몸, 발을 가려야 하는 이슬람 사회에선 누드 드로잉이나 페인팅 자체가 금지되며, 누드 사진을 찍거나 공공장소에서 전시하는 것도 당연히 금지된다. 그러나 젊은이들 사이에선 긴팔 옷과 스타킹을 신어 몸을 가리는 대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어 규율을 무색하게 만드는 등 종교적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처음 부임해서는 줄곧 공부해왔던 미국의 사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모두 남의 이야기며 문화적 이질감만 줄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슬림 남학생에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봐라. 페미니즘의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이들의 사고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서 문화와 종교를 배웠고, 그러면서 거부감보다는 재밌는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학생들이 예술을 통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동남아를 더 잘 알 필요가 있었다.

동남아 사진의 전통은 어떤가?

여전히 살롱사진이 강하다. 몇몇 파인아트 장르에선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작가들이 여럿 배출되었지만 현대사진은 이제 태동기라고 봐야 할 듯하다. 사진을 하나의 표현언어로 삼아 작업하는 작가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사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듯 사진의 디지털화가 동남아 사진의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사진가들이 사용하는 재료는 사진기와 포토샵이다. 페인팅이나 조소처럼 지역에 따른 재료적인 특성을 사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디지털은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포토샵이나 후보정을 통해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동남아는 표현의 제약이나 작가들의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어서 메시지를 은유적인 표현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디지털은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비용이 덜 들어 사진을 하려는 이들도 늘어나는 등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동남아 사진의 기초를 넓히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동남아 사진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역사적, 종교적, 개인적 이슈를 작업 중인 여러 사진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가그룹으로는 인도네시아의 ‘MES 56’이 있다. 2002년에 설립되어 작가 레지던시와 대안공간을 운영 중이며, 동남아 현대사진의 담론과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이는 곳이다. MES 56의 설립자 겸 리더인 앙키 푸르반도노(Angki Purbandono)는 카메라 없이 스캐너로 실제 사물을 직접 스캐닝하거나 거리에서 수집한 오브제를 재가공해 도시문화의 변화를 기록하는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짐보 알렌 아벨(Jimbo Allen Abel)은 개인보다 집단이 우선시되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유니폼을 주제로 작업한다. 담배꽁초, 꽃, 깃털 등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 권력을 상징하는 다양한 유니폼을 입고 서있다. 아간 하라합(Agan Harahap)은 ‘슈퍼 히어로’(Super Hero) 시리즈로 대구사진비엔날레와 한아세안 사진전 등 한국의 몇몇 전시에서 소개된 바 있는 작가다. 그는 20세기 초에 벌어진 실제 전쟁사진 속에 슈퍼맨, 배트맨, 헐크 등을 합성해 넣어 미디어에 의해 가공된 전쟁과 영웅의 이미지를 실제라고 믿는 젊은 세대의 인식을 꼬집는다.

동남아 사진을 연구하고, 외부에 소개하는 교류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기대하는 바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동남아는 급격히 성장하는 지역이지만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은 우리와 다른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도구이다. 수업 중에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며 한국에 대한 문화사회적 이해를 돕는데, 마찬가지로 동남아 사진을 보면서 동남아에 관해 몰랐거나 오해했던 부분을 바로 잡고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처음 부임해서부터 학생들과 함께 지역 사진가들에 대한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조각, 회화에 비해 사진은 전혀 새로운 분야여서 자료 자체가 부족했고, 동남아의 특수한 종교문화적인 환경을 고려한 연구가 필요했었다. 이 결과물이 곧 책 ‘미러 오브 더 타임’으로 싱가포르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또 여성을 찍은 사진 이미지에 대한 연구도 준비하는 중이다.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의 사진은 찍기도 어렵지만 찍힌 여성도 해를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성이 등장하는 사진작업들이 꾸준히 존재한다. 작가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준비해 여성 이미지를 공론화해볼 생각이다. 2006년부터 시작되어 격년제로 열리는 싱가포르국제사진축제는 다양한 동남아 사진을 소개하고, 해외 사진을 접하는 창구이다. 초창기부터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2010년에는 한국 사진을 초대한 적도 있다. 한국의 한아세안 사진전, 프랑스 파리의 포토케, 네덜란드의 노르드릭 사진전 등 해외에서 동남아 사진을 소개하는 전시도 점차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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