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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진을 사랑하는 모든 이와 4명 사진가의 아지트

2013-02-22


서울 지하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왼편에 끼고 곧장 걷다보면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려온다. 용접을 하느라 대낮에도 번쩍번쩍 별 파편이 흩날리는 이곳은 도심 속 빌딩과 아파트단지와는 사뭇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이다. 이곳은 쇠를 깎고 붙여 가장 강하고 튼튼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지만 정작 재개발의 등살에 밀려 한없이 쇠약해져가는 문래동의 오래된 철강단지이다. 이미 문을 닫은 철공소가 띄엄띄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의 ‘빅뱅’을 꿈꾸며 요란스럽게 기계가 돌아가는 중이다.

글│현정아 기자
기사 제공│월간사진

문래동 철강단지가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각광받은 지는 꽤 오래 전의 일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몇몇 작가들이 빈 철공소를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최근 3~4년 사이에 부쩍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이 문래예술공장을 설립해 저렴한 비용과 까다롭지 않은 조건으로 시설과 공간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역의 각종 예술 행사를 지원하거나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문래동에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지트’ 공간이 새롭게 생겨났다. 케이채(34), 박준수(32), 송광찬(30), 백성규(27) 4명의 사진가가 모여 철공소 건물 2층에 ‘빛타래’라는 작은 간판을 내걸었다. 사진공간 빛타래는 이들의 사진 작업실이자 사진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이며 사진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공간이다. “사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배움과 경험의 자리를 제공하며 다른 사진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로서 꾸준히 재미난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아지트를 찾았다.

‘뱅뱅클럽’의 문래동 입성기
빛타래는 빛과 실타래의 합성어이다. 자신의 사진을 ‘우연의 실타래’라고 표현한 윌리 로니스(Willy Ronis)의 에세이에서 힌트를 얻어 지은 이름이다. 빛타래는 빛의 타래로 새겨진 사진 그 자체를 의미하면서 사진을 통해 맺은 인연의 타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빛타래가 첫번째로 맺은 매듭은 케이채와 송광찬이다.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한 후 3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사진작업을 해온 케이채는 2011년 귀국과 동시에 새로운 작업실을 물색했다. 그런 그에게 문래동 예술촌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오래되고 낡은데다 연신 시끄러운 기계소리 때문에 주거지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감 어린 동네였다. 주변의 입주작가들과 이웃을 맺을 수 있다는 점과 비교적 저렴한 월세값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이야말로 사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로 제격이라는 생각에 제2의 ‘뱅뱅클럽’을 꿈꾸며 첫번째 멤버로 적외선을 이용한 사진작업과 영상을 병행하는 송광찬 작가를 영입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송광찬은 여러 사람들과 웃고 즐길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기꺼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이후 케이채의 지인인 백성규와 박준수 작가가 합류하면서 비로소 문래동의 ‘뱅뱅클럽’이 결성됐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백성규는 “혼자 작업하면서 느꼈던 여러 갈증들을 빛타래를 통해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며 “오래 전부터 케이채 작가가 이런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간이 실제로 만들어지면 꼭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진작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박준수는 공간과 문화, 환경과 인간 사이의 맥락과 상호관계를 탐구하는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철거된 동대문운동장을 기록한 사진으로 최근 ‘동대문운동장: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브레인스토어 펴냄)를 출간하기도 한 그는 빛타래 소속 작가들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현실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현실에 기반한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찍는 우리 4명은 전체 사진판 안에서 사실상 비주류인 셈이다”며 “다큐가 인디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빛타래는 서로 의지하며 우리의 사진을 특화시키고 집중시킬 수 있는 장”이라고 밝혔다.

무료 대관에서 영화상영까지
박준수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7번째 전시인 백성규의 'SYDNEYSCAPE'전을 11월11일까지 열고 있는 빛타래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전시장을 무료로 대관하고 있다. 전시를 하고 싶어도 여건상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최소 3주씩 공간을 내주며, 사진과 전시에 관한 여러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도 판매한다는 그들은 “당장 팔리고 안 팔리고는 중요하지 않다”며 “다만 사진작품을 구매하는 문화를 만들고 확산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11명의 사진가가 참여한 <사랑에 빠진 사진가> 전에 이어 서울의 숨은 진주를 공개하고 소개하는 서울오픈위크의 일환으로 10월13일에 오픈스튜디오를 개최했다. 소속 멤버 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오픈스튜디오에는 많은 이들이 찾아 빛타래 공간을 둘러보며 젊은 작가들의 시도에 관심과 응원을 보냈다.

빛타래는 문래동의 여느 작업실과 달리 열고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은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열고 월요일은 쉰다.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는 것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 대한 배려이자 약속이다. 이밖에도 멤버들의 역할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하루에 2교대씩 돌아가며 공간을 지키고, 행사가 있는 날에는 그때그때 나눠서 일을 분담한다.

사진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많다는 이들은 문래동의 다른 대안공간이나 갤러리카페와 달리 오로지 사진을 위한 공간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다양한 매체와의 소통을 통해 사진을 넓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에는 빛타래에서 처음으로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앞으로도 150인치의 대형 스크린을 이용해 사진에 관련되거나 도움을 주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상영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빛타래는 몇가지 테마로 워크숍도 기획하는 중이다. 작년과 올해 초에 매그넘 포토스가 주최하는 워크숍에 다녀온 후 사진가들의 연대와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절감한 박준수는 “주로 혼자 작업하고 고민하다가 그곳에서 여러 사진가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다들 비슷한 고민과 갈증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풀어가는 장으로 워크숍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케이채 역시 “단순히 잘 찍는 법을 가르치는 워크숍이 아닌 사진을 찍는 마음가짐 등 사진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워크숍을 열고 싶다”고 밝혔다.

매력 만점 ‘문래동 라이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 용접하는 아래층 사장님과 맥주 한잔 걸치며 여름을 나고, 3개에 천원 하는 삶은 달걀로 대낮의 ‘달맥파티’를 즐기는 문래동 아티스트들. 그들의 진정한 문래동 라이프는 철공소 직원들이 퇴근하고 모든 기계들이 멈추는 저녁 6시 이후부터 시작된다. 기계소리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곱절은 시끄러웠던 낮 시간에 비해 문래동의 밤은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고요 그 자체이다. 케이채는 “이곳은 다 같이 있기도 좋은 곳이고, 혼자 있기도 좋은 곳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서 혼자 사색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만한 곳은 없다”며 “이곳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여러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 나이도 성격도 작업 스타일도 다른 4명의 사진가가 모인 빛타래가 앞으로 어떤 개성으로 문래동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할지 기대를 모은다. 그들은 현재 문래동과 문래동 사람들을 담아내는 공동 사진 작업을 기획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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